검색

[ESC] 두 바퀴로 가는 섬마을 여행

자전거 동호인 카페, 봄바람 일렁일렁


초보자가 갈 만한 자전거 길 없을까


자전거 빌려 타고 물 빠진 노둣길 건너


색깔 있는 전남 신안 자전거 여행

한겨레

지난 5일 전남 신안군 박지도(안좌면 박지리)에서 반월도(안좌면 반월리)를 잇는 자주색 다리 ‘퍼플교’. 김선식 기자

한겨레

자전거 동호인 인터넷 카페엔 일찌감치 봄바람이 일렁인다. 이맘때면 기대와 결의로 들뜬 글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3~4월 자전거 여행을 함께할 동행을 찾는 글이다. 고수들은 종주를 좋아한다. 대수롭지 않게 제주도, 동해안, 백두대간, 국토 종주를 제안한다. 색다른 여행을 꿈꾸는 자들은 공공자전거(저렴한 비용에 지자체가 대여해주는 자전거) 여행을 기획하기도 한다. 전남 순천 공공자전거 ‘온누리’를 빌려 타고 순천만 국가 정원 주변을 달리고, 대전 공공자전거 ‘타슈’와 한몸이 되어 갑천, 유등천변을 누비는 상상에 빠진다. 자전거도 없고 끌리는 곳도 없을 땐 스마트폰 앱을 뒤적인다. 앱 ‘라이클’에서 지역별 자전거 단기·장기 대여점 정보를 확인하곤 주변 풍광 좋은 곳을 물색한다.

한겨레

지난 3일 전남 신안 소악도(증도면 병풍리)에 있는 작은 예배당 겸 쉼터 ‘시몬의 집’. 김선식 기자

자전거도 없고 자전거 여행도 처음이라면? 지자체가 만든 자전거 길과 대여소를 찾아볼 만하다. 이른 봄부터 따뜻한 바람 부는 전남 신안군은 자전거 여행지로 이름난 곳 중 하나다. 군청 소재지 압해도부터 외딴 섬 흑산도까지 8개 자전거 여행 코스(각 25~98㎞, 총연장 514㎞)를 개발·정비했다. 압해도와 기점·소악도(1코스), 증도(2코스), 임자도(3코스), 암태도와 자은도(4코스), 안좌도와 팔금도(5코스), 비금도와 도초도(6코스), 흑산도(7코스), 하의도와 신의도(8코스) 자전거 길이다.

한겨레

반월도 ‘노루섬’으로 가는 노둣길. 김선식 기자

그중 자전거 대여소는 기점·소악도(1코스 일부)와 박지·반월도(5코스 일부)에 있다.(17일 기준) 두 곳 모두 짧고 평탄한 길이다. 초보자들도 쉽게 여행할 수 있다. 기점·소악도는 신안 북부 권역 증도면에 딸린 섬들이다. 지난 1년간 ‘순례자의 섬’ 또는 ‘섬티아고’(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따온 이름)로 불리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루 2차례 간조 즈음에만 노둣길(갯벌에 바위를 쌓아 섬과 섬을 이은 길)과 백사장이 열려 5개 작은 섬을 건널 수 있다. 섬 곳곳엔 예수의 제자 12사도 이름을 붙인 12개 예배당 겸 쉼터를 지었다. 박지·반월도는 신안 중부 권역 안좌도와 자주색 다리(퍼플교)로 이어진 작은 두 섬이다. 마을 지붕부터 식기류까지 자주색으로 맞춰 ‘퍼플섬’으로 부른다. 기점·소악도 예배당과 박지·반월도 퍼플교는 지난해 봄과 여름 각각 완공했다.

한겨레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한겨레

소기점도와 소악도(증도면 병풍리) 사이 갯벌 위에 지은 작은 예배당 겸 쉼터 ‘마태오의 집’.

지난 3일 정오께 기점·소악도 검은 갯벌에 허연 노둣길이 드러났다. 달의 인력과 지구의 원심력이 바닷물을 힘껏 끌어당기면 지구 다른 한쪽에선 물이 빠져 노둣길이 열린다. 두 발로 페달을 휘저어 섬과 섬 사이를 건넜다. 몸이 자전거를, 자전거가 몸을 이끌었다. 민낯 드러낸 바다엔 배 대신 사람이 들어간다. 양동이 한가득 굴을 따서 나오는 나이 든 섬사람은 마을길도 갯벌처럼 느릿느릿 걸었다. 바퀴가 섬 구석구석 궤적을 그렸다. 체력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곱고 앙증맞은 12개 건축물 앞에서 긴 숨을 토하고 다시 길에 오를 힘을 얻었다. 섬 자전거 여행이 끝날 무렵 바닷물도 어느새 차올랐다.


신안(전남)/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SC] 마태오의 집 지붕은 양파! 위트 넘치는 ‘순례자의 섬’

이국적인 12개 예배당, 볼 거리 차고 넘쳐


자줏빛 군락지, 퍼플섬은 신기하고 황홀해


기점·소악도와 박지·반월도 자전거 여행

한겨레

마태오의 집. 김선식 기자

기점·소악도는 전남 신안군 증도면 병풍리 일대 섬 중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을 뭉뚱그려 부르는 이름이다. ‘기점’은 한자 그대로 풀면 기이한 점이란 뜻이다. 지도를 보면 신안 북부 권역 증도 옆에 소금처럼 흩뿌려져 있다. 5개 섬 면적은 1.35㎢, 주민 100명가량이 거주한다. 마을 사람들은 오랫동안 작은 농토와 섬 30배에 이르는 갯벌(31.3㎢)에 의지해 살아왔다.

한겨레

소악도 ‘작은 야고보의 집’ 안에서 본 풍경. 김선식 기자

최근 1년여간 기점·소악도는 큰 변화를 맞았다. 섬은 ‘순례자의 섬’이란 이름을 얻었다. ‘순례자의 섬’이 된 데는 섬과 섬을 잇는 노둣길이 한몫했다. 주민들이 섬과 섬을 건너려고 갯벌에 던져 쌓은 바위(노두) 길은 보통 바다가 허락한 시간(간조)에만 열린다. 대략 하루 두 번 열리는 노둣길을 ‘기적의 순례길’로 부른 게 모티브가 됐다. 마침 지역 주민 80% 이상이 기독교 신자였다. 국내외 화가, 설치작가, 사진가 등 예술가 10명이 전라남도 사업 ‘가고 싶은 섬’에 참여해 2019년 5월부터 1년간 섬 곳곳에 예수의 제자 12사도 이름으로 12개 작은 예배당을 세웠다.

한겨레

어른 4명 들어가면 실내가 꽉 찰 만큼 작지만, 저마다 주제와 이야기를 담았다. 여행객들은 종교와는 무관하게 도보·자전거 여행지로 이곳을 찾는다. 그 전까지만 해도 여행지로선 무명에 가까웠던 섬이 거듭난 것이다.


지난 3일, 섬에 닿자마자 전기자전거를 빌렸다. 12개 예배당을 모두 여유롭게 돌아볼 참이었다. 12개 예배당을 모두 도는 데 약 12㎞(예배당 간격은 약 300m~1.4㎞)다. 하루 편도 4~5차례 배편과 물때(간조와 만조 시간대)도 맞춰야 한다. 만조에 가까워지면 5개 섬을 잇는 노둣길(각 217~373m)과 백사장이 잠긴다. 섬과 섬 사이를 건널 수 없다. 김철수(62) 대기점도 이장은 “보통 사리 물때를 기준으로 노둣길은 만조시각 1시간30분~2시간 전, (딴섬으로 가는) 백사장은 3시간 전엔 건너야 한다”고 말했다. 예전 같으면 1박2일 기점·소악도에 묵을 수 있었지만, 코로나 19 여파로 섬마을 민박과 게스트하우스는 운영을 중지했다.(17일 기준)

한겨레

소악도 딴섬 ‘가룟 유다의 집’으로 가는 백사장 길. 간조 즈음 길이 열린다. 김선식 기자

Tip!

이 쯤에서, 여행지가 더 궁금해졌다면?!

호텔 예약은 호텔스컴바인에서! 

자전거를 타자마자 마지막 예배당인 12번 ‘가룟 유다의 집’으로 달렸다. 소악도에 딸린 ‘딴섬’에 홀로 위치한 예배당이다. 백사장을 건너 들어갈 수 있다. 만조에 가까워지면 백사장은 다른 노둣길보다 먼저 잠긴다. 이날 간조시각은 오전 11시19분, 만조시각은 오후 6시34분이었다. 간조에 가까운 시점에 먼저 돌아야 했다. 꼬부랑길과 숲길을 지나 소악도 진섬에서 백사장을 건넜다. 뾰족지붕을 높이 올린 붉은 벽돌 예배당이 눈에 들어 왔다. 딴섬 언덕에 홀로 우뚝 선 예배당은 차라리 유배지처럼 보였다. 가룟 유다는 예수를 배반하고 뒤늦게 후회한 제자로 전해진다. 예배당 옆에 빨간 벽돌을 비틀어 쌓아 기둥을 만들고, 비석에 ‘지혜의 집’이라고 썼다. 끝내 후회하고만 그를 반면교사 삼아 지혜를 구하란 뜻일까. 생경한 건축물 앞에서 상상이 꼬리를 문다.

한겨레

소악도 딴섬 ‘가룟 유다의 집’ 안에서 바라본 풍경.

이곳 전기자전거 타는 법은 일반적인 자전거 타기와 같다. 페달을 밟아 바퀴를 굴려야 앞으로 나아간다. 다만 버튼을 1~5단계로 조절해 가속력을 높일 수 있다. 평지나 내리막길은 낮은 단계로, 오르막길은 높은 단계로 놓으면 된다.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오직 자신의 힘으로만 전진할 수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페달을 저어 앞으로 나아갔다.

한겨레

소악도 ‘작은 야고보의 집’. 김선식 기자

9번 ‘작은 야고보의 집’은 ‘어부의 오두막’처럼 지었다. 정면 외벽을 물고기 모양 통나무와 스테인드글라스로 꾸몄다. 지붕엔 작은 닻을 매달고, 실내는 배를 정박할 때 쓰는 밧줄로 장식했다. 섬사람들 풍요와 안식을 기원한 걸까. 예수의 제자 이름으로 지은 집들이지만 섬의 향기가 느껴진다.

한겨레

소기점도 작은 호수 위에 지은 ‘바르톨로메오의 집’. 김선식 기자

소악도와 소기점도를 잇는 노둣길 옆 갯벌에 세운 8번 ‘마태오의 집’은 금빛 계단과 지붕이 반짝인다. 직업이 세리였던 마태오의 부를 상징하는 거로 보였다. 공교롭게도 지붕은 기점·소악도 특산품인 양파 모양이다. 소기점도에서 대기점도 가는 노둣길 끝에 있는 5번 ‘필립의 집’은 지붕이 날카롭게 휘어져 하늘로 치솟는다. 그 지붕 끝에 물고기 한 마리가 매달려 있다. 붉은 벽돌 예배당은 적삼목을 촘촘히 덧대 지붕을 꾸몄다. 마치 물고기 비늘을 연상케 한다. 그 뒤로 은빛 갯벌과 갯골이 펼쳐진다.

한겨레

대기점도 ‘필립의 집’. 김선식 기자

어느덧 작품(예배당) 번호에 구애받지 않고 표지판 보이는 대로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를 타고 보물찾기라도 하듯 섬을 이리저리 오갔다. 3번 ‘야고보의 집’은 대기점도 마을 길가에서 벗어나 숲속에 외따로 떨어져 있다. ‘그리움의 집’이라 이름 지은 이곳은 허전한 집 안으로 바깥 풍광을 끌어들인다. 정문에 달린 거울엔 풍경을 담고, 내벽 5개 사각 구멍으론 붉은빛을 들인다. 외벽에 칠한 붉은 페인트 빛이 반사돼 안으로 향하도록 설계한 것처럼 보였다. 예배당 앞에 자전거를 세울 때마다 실내 모습이 궁금하다. 2번 ‘안드레아의 집’에선 깨진 벽에 숨겨진 십자가와, 천장의 해와 달 모양 스테인드글라스를 1번 ‘베드로의 집’에선 흰 내벽에 그린 꽃을 보았다.

한겨레

대기점도 ‘야고보의 집’. 김선식 기자

한겨레

안드레아의 집. 김선식 기자

한겨레

베드로의 집. 김선식 기자

신안 중부권 안좌도에 딸린 작은 섬, 박지도와 반월도도 자전거 타기 좋은 색깔 있는 섬이다. 두 섬은 2019년께부터 마을 전체가 자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과 군청이 박지·반월도에 나는 ‘꿀풀’, 도라지 꽃, 콜라비의 자주색에 착안해 두 섬을 ‘퍼플섬’으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자목련, 라벤더, 맥문동, 아스타국화 등 봄부터 가을까지 꽃 피울 ‘자줏빛 군락지’를 조성했다. 마을 지붕부터, 창문틀, 식당 식기류, 심지어 대형 쓰레기 수거함까지 자주색으로 맞췄다. 안좌도~박지도~반월도를 잇는 3개의 다리(총 1462m, 폭 2m)도 같은 색으로 단장해 증축·완공했다. 퍼플섬은 지난 8월 정식 개장했다.

한겨레

전남 신안군 박지도(안좌면 박지리)에서 반월도(안좌면 반월리)로 가는 퍼플교. 김선식 기자

두 섬은 들머리에서 자전거를 빌려 탈 수 있다. 지난 5일, 자주색 자전거를 타고 자주색 다리를 건너 자주색 자전거 도로를 달렸다. 박지도와 반월도 둘레길(각 4.2㎞, 5.7㎞) 모두 자전거로 갈 수 있다. 봄을 기다리는 라벤더 정원, 노둣길과 섬 안의 작은 섬(노루섬), 당숲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박지도~반월도 자줏빛 다리(길이 915m)에서 페달을 밟다 보면 갯벌 한복판에서 묘기 부리는 것 같았고, 노루섬으로 가는 노둣길에 오르면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수령 200~300년 팽나무, 후박나무 등이 에워싼 당숲(과거 정월 보름날,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며 제를 지낸 곳)에선 들뜬 마음이 내려앉았다.

한겨레

반월도 당숲에 있는 후박나무. 김선식 기자

자전거를 타고 되돌아 나오는 길, 임동수(69) 전라남도 문화관광해설사가 갯벌을 보며 말했다. “갯벌에 갯골 보이죠. 물이 빠지는 길이에요. 자연이 만든 길은 직선이 없어요.” 자전거 바퀴의 궤적도 그 무늬를 닮았다. 구불구불한 길 따라 마을을 휘젓고 다니다 보니 섬과 자연에 더 가까워졌다.


신안(전남)/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한겨레

‘베드로의 집’과 대기점도 선착장 가는 길. 김선식 기자

[ESC] 순례자의 섬 & 퍼플섬 자전거 여행 수첩

교통 목포역에서 신안 압해도 송공항 항구까지 차를 타면 30분 거리다. 송공항에서 출발한 배는 소악도, 소기점도, 대기점도 순으로 정박한다. 매일 출발 시각은 오전 6시50분, 9시30분, 낮 12시30분, 오후 3시10분이다.(총 4회, 이달 28일까지 기준) 소악도까지는 약 40분, 대기점도까지는 약 1시간 소요된다. 대기점도에서 출발한 배는 소기점도, 소악도, 송공항 순으로 정박한다. 오전 7시52분, 10시32분, 오후 1시32분, 4시12분 하루 총 4회 출항한다. 송공항~대기점도 운임은 편도 성인 6000원, 승용차 1만5000원.(문의 송공항 061-261-4221)


솔섬 송도선착장에서 병풍도 보기선착장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목포역에서 송도선착장까지 차를 타면 약 1시간10분 거리다. 매일 출항시각은 오전 7시, 9시, 11시, 오후 2시, 4시30분이다.(총 5회, 내달 31일까지 기준) 병풍도에서 나가는 배는 오전 7시30분, 9시30분, 11시30분, 오후 2시30분, 4시에 있다. 편도 약 25분 소요된다. 운임은 편도 성인 3000원, 승용차 9000원. 병풍도 보기선착장에서 대기점도까지 약 3㎞ 거리다.(문의 슬로시티 2호 061-240-8394)


목포역에서 퍼플교까지 차를 타면 약 1시간10분 걸린다.


물때 간조와 만조는 하루 2차례씩 있다. 국립해양조사원 스마트 조석예보(khoa.go.kr) 또는 앱 ‘바다타임’에서 각 지역 만조, 간조 시간대를 확인할 수 있다.


자전거 대여 대기점도 선착장과 소악도 선착장 근처에 전기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대여 담당자가 자전거를 운반중일 때가 있으니 대여 장소 등을 미리 문의하는 게 낫다.(문의 010-6612-5239/1일 1만원)


퍼플교를 건너자마자 박지도와 반월도 초입에 각각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문의 박지도 061-271-3330, 반월도 061-271-5600, 1시간 5000원)


식당과 숙소 대기점도와 소악도 민박, 게스트하우스, 식당은 코로나 19 여파로 17일 현재 운영 중단 중이다. 압해도 송공항 주변에 펜션, 민박, 식당이 여럿이다. 박지도에서 마을호텔과 식당을 운영한다. (문의 061-262-3003)

Tip!

여행 계획의 시작! 호텔스컴바인에서

전 세계 최저가 숙소를 비교해보세요. 


한겨레
신안(전남)/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오늘의 실시간
BEST
hani
채널명
한겨레
소개글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