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존 레넌을 지금 만나야 하는 이유
내년 3월10일까지 ‘이매진-존 레논전’
1970년 이후 솔로 활동 시기 집중 조명
존 레넌 제작 판화·사진·기타 등 출품
오노 요코와 함께한 평화·사회운동 부각
비틀스는 전설이다. 멤버 중 폴 매카트니는 ‘살아있는 전설’이 되어 지금도 공연을 하고 있지만, ‘전설 중 전설’을 꼽으라면 열에 아홉은 존 레넌을 떠올릴 것이다. 존 레넌은 음악적 성취뿐 아니라 사회운동가·평화주의자로서 세계인들의 철학과 사상에도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이런 존 레넌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회가 찾아왔다. 지난 6일부터 내년 3월10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매진-존 레논 전’이다.
전시회는 1970년 비틀스 해체 이후 솔로 활동 시절의 존 레넌에 집중한다. 미국 뉴욕에 머물던 존 레넌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과 그의 생각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들, 한때 미대에 다녔던 그가 남긴 판화 작품 등을 다채롭게 펼쳐놓았다. 뉴욕 거주 시절 친구처럼 지내며 존 레넌의 상징적 이미지를 담은 사진을 찍은 사진가 밥 그룬, 존 레넌이 1980년 12월8일 극성 팬으로부터 총격을 당해 죽기 얼마 전까지의 모습을 담은 사진가 앨런 타넨바움, 존 레넌의 판화 작품, 기타, 트로피, 옷 등 여러 물품들을 모아온 수집가 미하엘 안드레아스가 이번 전시회를 위해 힘을 보탰다.
존 레넌은 1940년 영국 리버풀의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하면서 이모와 살아야 했다. 시와 그림, 사색을 좋아하던 그는 리버풀 예술대학에 진학해 미술을 공부했지만, 2년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음악에 몰두했다. 1960년 비틀스를 결성하면서 인생의 첫번째 전환점을 맞는다. 인생 두번째 전환점은 1966년 전위예술가 오노 요코와의 만남이다. 오노 요코는 존 레넌이 사상가이자 운동가로 변화하는 데 있어 동반자가 되어주었다.
1969년 결혼 직후 떠난 신혼여행부터 상징적이다. 둘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호텔에 가서 ‘침대 평화 시위’를 벌였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1주일간 오전 10시부터 밤 10시까지 흰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누운 채 기자들을 맞이해 반전과 평화의 메시지를 세계에 전했다. 전시장에 가면 당시 모습을 담은 사진과 함께 침대 평화 시위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두었다.
둘은 편견과 고정관념을 풍자하는 평화 운동 ‘배기즘’도 펼쳤다. 어머니의 자궁을 상징하는 자루에 들어감으로써 인종, 성별, 외모, 나이 등 외적 요소를 배제하고 상대방과 편견 없이 대화하자는 뜻을 담았다. 전시 주최 쪽은 존 레넌과 오노 요코처럼 커다란 자루에 들어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배기즘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했다.
비틀스 다른 멤버들은 오노 요코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과 오노 요코의 불화가 밴드 해체를 앞당겼다는 말까지 돌았다. 비틀스 해체 이후 존 레넌·오노 요코 부부는 팬들의 광적인 관심과 비난을 피해 1971년 뉴욕으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곳에서 반전 평화 시위에 참여하고 솔로 대표곡 ‘이매진’을 발표하는 등 ‘사랑과 평화’를 주창했다.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위기에 처한 닉슨 정부에게 존 레넌은 눈엣가시였다. 닉슨 정부는 존 레넌에게 추방령을 내렸고, 그는 거세게 저항했다. 닉슨 대통령이 끝내 사임하면서 추방령은 취소됐다.
이후 몇년 간 존 레넌은 가정에 은둔하며 육아와 집안일에 전념했다. 스스로를 ‘하우스 와이프’의 반대 개념인 ‘하우스 허즈번드’로 지칭하며 바깥일은 오노 요코에게 맡겼다. 페미니즘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그는 앞서 1972년 발표한 ‘우먼 이즈 더 니거 오브 더 월드’라는 곡을 통해 “여성은 세계의 노예”라는 메시지를 외치기도 했다. 육아에 전념하는 존 레넌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도 전시회에서 만날 수 있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지금 국내에 퀸 열풍이 거세게 불고 있지만, 음악가 중 꼭 알아야 할 한 사람을 꼽자면 바로 존 레넌이다. 1970년대에 그가 꿈꾼 이상향은 2018년인 지금도 아직 요원하다. 전쟁 위기, 불평등, 갑질, 미투 등으로 얼룩진 우리 사회에 사랑과 평화, 평등, 페미니즘을 강조한 존 레넌이 시사하는 바는 특히 크다. 우리가 이 전시를 봐야 할 이유다”라고 말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