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도 식사도 않는 장거리 자율주행트럭, 운송시간 40% 줄였다
미국서 1530km 구간 신선식품 시험운송
사람이 24시간 걸리던 걸 14시간에 마쳐
휴식·수면 없이 연속 운행이 가능한 덕분
투심플의 자율주행 트럭. 투심플 제공 |
자율주행차는 운전 부담으로부터 사람을 해방시켜줄 기술로 주목받고 있지만, 10년이 넘는 업체들의 기술 개발 노력에도 여전히 출시 시기는 미정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르고 분석에 능한 인공지능 시스템이라지만 사람과 자동차가 뒤얽혀 복잡할 뿐 아니라 시시각각 변하는 도로 교통 사정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상황 변수가 많은 시내도로를 이용하는 승용차쪽보다는 자동차 전용 고속도로를 주로 이용하는 화물트럭쪽에서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향한 발걸음이 더 활발하다.
최근 미국에서 자율주행 트럭이 상용화할 경우 화물 운송에 미칠 영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시험운행이 이뤄졌다.
미국의 자율주행트럭 개발 업체 투심플(TuSimple)은 5월 초 자율주행트럭으로 애리조나주의 노게일스에서 오클라호마주의 오클라호마시티까지 수박을 시범 운송했다.
이날 멕시코 국경 근처 노게일스에 있는 농산물 생산유통업체 지마라의 저장창고에서 수박을 가득 싣고 출발한 트럭은 4개 주를 통과해 오클라호마시티에 있는 도매협동조합 AWG의 물류센터에 도착했다.
총 운행 거리는 951마일(1530km), 운행 시간은 14시간6분이었다. 전체 구간을 평균 시속 109km로 달린 셈이다. 투심플은 평소 사람이 운전할 경우 24시간6분 걸리던 것이 10시간(42%)이나 단축됐다고 밝혔다.
투심플의 자율주행트럭의 자동 운행 구간(파란색).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전체 구간의 95%를 자율주행...식품 쓰레기 줄이는 효과도
운행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뭐였을까? 자율주행트럭은 수면이나 휴식 시간 없이 달릴 수 있다. 미국의 경우 트럭 운전자는 14시간 연속해서 도로상에 있을 수 없다. 또 그 범위 안에서 최대 11시간까지만 운전할 수 있다. 운전하기 전 최소 10시간은 휴식을 취해야 한다.
운행 경로가 복잡하지 않은 것도 운행시간 감소에 역할을 했다. 전체 경로 중 중간에 딱 두 곳에서만 갈림길이 있을 뿐이다.
물론 모든 것이 자동으로 처리된 건 아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탑승한 운전자가 운송의 시작구간과 최종구간에서는 직접 나서서 운전대를 잡고 화물 인수와 인도 작업까지 마쳤다. 그러나 전체 운행 구간의 태반을 차지하는 애리조나 투싼에서 텍사스 댈러스에 이르는 장거리 운행구간에서는 트럭이 운전자의 개입 없이 자율주행했다. 투심플은 트럭이 전체의 95%인 900마일을 자율주행했다고 밝혔다.
투심플 대변인은 안전 운전자가 탑승한 것은 도로교통법에 따른 것이며, 2024년 말까지는 안전 운전자 없이 완전자동 운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럭업계는 자율주행에서 시간과 비용 절감을 기대한다. 지마라 최고경영자 팀 라일리는 투심플이 낸 보도자료를 통해 “자율주행 트럭기술은 우리로선 진정한 게임체인저”라고 말했다. 시간과 비용 효율화로 외딴지역에 지금보다 더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공급할 수 있다는 걸 그 이유로 들었다. 예컨대 자율주행트럭은 뉴욕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5일에서 2일로 줄일 수 있다. 자동화 시스템을 통한 정속 주행은 연료 효율도 높여준다.
빠른 운송은 식품 쓰레기를 줄이는 효과도 있다. 신선도가 저하돼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걸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투심플의 관리담당이사 짐 멀린은 “신선도를 중시하는 식품 산업은 자율주행 트럭 기술에서 가장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산업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자율주행트럭 시대의 운전자는 운전보다 운송과정 관리에 더 집중한다. 투심플 제공 |
업계 “일자리 박탈 아닌 업무 성격 바뀔 것”
자율주행차트럭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기술적 어려움보다는 기술 도입이 초래할 트럭운전기사의 일자리 상실 우려다. 미국에는 현재 350만명이 넘는 트럭 운전기사가 있다.
그러나 미국 트럭업계는 현실적으로는 일자리 박탈보다 노동력 부족 문제가 오히려 더 크다고 주장한다. 장거리 운전은 매우 고된 노동이어서 초기 이직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구글의 자율주행기술 업체 웨이모의 사업개발담당 존 버든은 ‘비비시’ 인터뷰에서 “미국 트럭업계의 인력 부족 규모는 6만명에 이르며 이대로 놔둘 경우 10년 후에는 16만명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럭업계는 또 자율주행기술을 도입한다고 인간 운전자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며, 직접 운전하는 것을 넘어 전체 화물 운송 과정을 관리하는 쪽으로 일의 성격이 바뀔 뿐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노동 조건이 개선되는 측면이 있다는 얘기다. 장거리 여객기는 순항 구간에서 자동항법장치를 사용하지만 여전히 조종사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자율주행트럭은 최장 운행 거리가 400km 정도인 한국의 화물트럭업계 입장에서는 미국보다 시급성이 덜할 것이다. 하지만 과로에 시달리는 운전기사의 노동조건 개선과 이에 따른 사고율 감소란 측면에서 보면 적극적으로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어 보인다.
2015년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서 출범한 투심플은 장거리 대형트럭의 완전자율주행(레벨4)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7개 노선에 자율주행트럭을 투입해 시범운행하고 있다. 지난 4월 자율주행업계에서는 처음으로 뉴욕 증시에 상장했으며, 기업공모를 통해 10억달러 이상을 확보했다. 투심플에 따르면 세계 화물트럭 시장은 연간 4조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에서는 현재 전 세계에서 10여개 회사가 자율주행트럭을 개발하고 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