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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바라본다…외국인에게 ‘핫한’ 서울 명소들 [E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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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패션 브랜드 샤넬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2015·2016 크루즈 패션쇼’를 열었을 때, 의아해한 한국인이 많았다. 왜 서울인가. 크루즈쇼는 샤넬이 ‘추운 겨울에 따스한 여행지로 떠나는 여행자들을 위한 패션’이라는 콘셉트로 2000년부터 매년 연 글로벌 행사다. 그해 가장 ‘힙한 도시’에서 열리는 게 정석이다.



쇼는 세계 문화 트렌드를 주도하는 도시가 어디인지를 확인시켜준다. 그동안 패션쇼가 열렸던 도시만 봐도 짐작이 간다. 파리, 베네치아, 두바이, 싱가포르, 뉴욕 등에서 열렸다. 하지만 샤넬의 이유 있는 선택에도 우린 물음표를 달았다. 샤넬의 선견지명을 얕본 셈이다. 지금은 어떠한가. 케이(K) 콘텐츠가 날개를 단 나라 한국의 수도 서울의 문화 역량을 의심하는 이는 적다. 이를 반영하듯, 매년 서울을 찾는 외국인 여행객 수가 늘고 있다. 서울관광재단 자료를 보면,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서울 외국인 여행객 수는 618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355만명에 견줘 거의 두배다. 지난해 방한한 외국인 관광객의 80.3%가 서울을 다녀갔다. 외국인이 열광하는 서울 여행지는 어디일까. 서울의 숨은 서쪽 여행지를 다녀왔다. ‘서울 여행’ 1탄이다.





입장권 없이 더위 날려버리는 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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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지하철 홍제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서대문 홍제폭포’에는 유난히 외국인 여행객이 많았다. 본래 ‘홍제천 폭포’, ‘홍제동 폭포’, ‘홍제천 인공폭포’ 등으로 불렸던 폭포는 지난해가 되어서야 서대문구가 정한 공식 명칭이 생겼다. 13년 전에 조성된 높이 25m, 폭 60m 폭포가 이제야 제대로 된 이름을 갖게 된 데는 최근 몇 년간 이곳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 수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서울 여행의 명소로 등극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왔어요. 자연 풍광을 보는 걸 좋아하는데, 여기 마음에 듭니다.” 헝가리에서 왔다는 안나는 폭포 여행의 매력을 한껏 늘어놨다. 친구 3명과 이곳을 찾은 그는 국립남도국악원 개원 20돌 맞이 공연 ‘한국을 가슴에 품다’를 관람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 공연은 국립남도국악원이 2006년부터 진행해온 ‘해외동포 및 국악단체 초청 연수’에 참가했던 85개 단체 중 5군데를 초청해 지난 21일과 24일, 오는 28일 3일간 서울, 진도, 부산 등에서 진행하는 행사다. 미국, 에스토니아 등에서 온 단체들 중에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활동하는 ‘민들레’도 있다. 헝가리 아마추어 예술가들로 구성된 이 단체는 우리네 가야금 연주를 한다. ‘한국사랑’을 국악 연주로 실천하는 외국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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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홍제폭포 맞은편엔 나무 데크로 짠 너른 공간이 있다. 거기엔 알록달록한 소파와 의자들이 비치돼 있는데, 그야말로 ‘물멍’ ‘폭포멍’ 하기 좋다. 이날도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동, 일본, 유럽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이 차르륵 폭포물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주범 폭염을 쫓아내고 있었다. 이날 서울 낮 최고 기온은 35도. 더위를 단박에 날리는 폭포의 신묘한 재주에 여행객들은 감탄했다. 폭포 입장권 같은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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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데크 한쪽에 들어선 2300㎡(약 700평) 규모의 ‘카페 폭포’(연희로 262-24)도 인기다. 각종 소셜미디어(SNS)에 오른 영상 조회 수만도 2천만 회(지난 5월23일 기준)가 넘는다. 서대문구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카페를 찾은 외국인 233명의 국적은 31개국이나 될만큼 다양했다. 그야말로 ‘글로벌한 여행지’가 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얼음 찰랑거리는 커피 한 잔 들고 카페 테라스에 앉아 맞은편 폭포 물줄기를 하염없이 바라다보다 보면 이보다 더 시원한 한여름 망중한이 없다. 카페 옆에 지난해 연 ‘폭포책방 아름인 도서관’도 여행객을 비롯해 지역민의 명소로 자리 잡았다. 카페 별관을 리모델링했다. 공휴일을 뺀 매주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운영한다.(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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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홍제폭포 여행엔 팥빵 앙금처럼 맛난 게 또 있다. 폭포 옆엔 좁고 아담한 길이 나 있는데, 거기에 발을 들여 놓으면 우리네 선조들이 사용한 각종 농기구를 전시한 초가를 만난다. 초가에서 ‘과거’와 인사 나누고 돌아서면 돌계단이 보인다. 안산 자락길로 이어지는 숲길이다. 아치처럼 울창하게 하늘을 가린 숲은 식물만이 선사할 수 있는 옅은 바람에 안온한 위안을 실어 여행객을 맞는다. 갈림길이 곧 나타나는데, 나무다리가 놓인 오른쪽 길은 ‘오름카페’로 이어지는 길이다. 왼쪽 길은 ‘허브원’에 닿는다. 이 길에서 20대 외국인 여성 여행객을 만났다. 몇 마디 말 붙이기도 전에 바삐 사라져버린 그의 뒷모습을 보며 허브원으로 향했다. 맥문동이 화려하게 핀 허브원. 타박하는 듯 흔들거리고 있었다. ‘여긴 가을에 더 아름다운데, 한여름에 왜 왔냐’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상상도 무색하게 하는 들쩍지근한 숲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을 이고 걷는 외국인 중년여성 두 명을 만나자 호기심이 앞섰다. 무슨 사연으로 우리조차 잘 찾지 않는 숲에 온 걸까. 독일에서 온 산드라와 마라였다. 서울을 여러 번 방문한 적 있다는 마라는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의 직원이라고 했다. 산드라는 마라를 따라 서울에 처음 왔다고 했다. 마라는 서울 여행의 장점을 한마디로 꼽았다. “여성들이 여행하기에 더없이 안전한 곳”이라는 것이다. 그는 “즐거운 서울 여행을 계속할 것”이라고도 했다. 달군 쇠처럼 보기만 해도 공포가 이는 더위를 홍제천이 순환하며 떨어지는 폭포 물줄기와 숲이 쫓아내며 그들과 우리를 하나로 만들었다. 수천번, 수억번의 인연의 고리가 스친 만남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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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석유탱크가 문화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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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엔 놓치면 아까운 덤이 하나 더 있다. 폭포에서 홍제천을 따라 유진상가까지 15~20여분 걸어가면 ‘홍제유연’을 만난다. 4년 전 설치미술 전시장으로 탈바꿈한 유진상가 아래 지하 250m 구간이다. 1970년에 지은 유진상가는 홍제천 일부를 복개해 만든 주상복합 건물이지만, 실제 쓰임새는 전쟁 대비용 대전차 방호기지였다. 철저하게 통제되었던 이 건물 지하가 서울시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거듭난 것이다. 건물을 받치는 100여개 기둥과 그 아래에 흐르는 물길에 조명을 활용한 환상적인 예술작품이 매일 12시간 여행객을 놀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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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 앞엔 ‘문화비축기지’(이하 기지)가 있다. 지난 14일 오후께 도착한 기지의 너른 광장 너머로 생경한 구조물 여러 개가 보였다. 언뜻 보면 일론 머스크가 꿈꾸는 화성 우주기지 같은데, 본래 이 구조물의 쓰임은 석유 가격 폭등 대비용이다. 1973~74년에 발발한 중동전쟁으로 당시 석유 가격이 폭등하자 세계 경제는 혼란에 빠졌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울시는 반복될지 모르는 혼란에 대비해 1976년 석유 비축 탱크 건설공사를 시작해 1978년 완공했다. 지름 15~38m, 높이 15m인 탱크 5개엔 6907만 리터의 석유가 채워졌다. 당시 서울 시민이 한달간 소비할 수 있는 규모이자, 자동차 400만대에 주유할 수 있는 양이었다. 1급 보안시설로 분류된 탱크는 시민들이 접근할 수 없는 통제 구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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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2002년 한일월드컵 개최로 짓기 시작한 서울월드컵경기장 때문에 기지는 전환점을 맞는다. 경기장에서 불과 500m 거리에 있는 탱크는 골칫거리 위험 시설이었던 것이다. 결국 석유는 다른 시설로 옮겨지고 2000년 12월 기지는 폐쇄됐다. 하지만 장대비가 오는 날이면 웅웅 기괴한 소리가 들릴 정도로 을씨년스러웠던 탱크는 월드컵이 끝난 후에도 골칫거리였다. 2013년 두번째 전기가 마련됐는데, 시민들이 참여한 탱크 활용 공모전이 그것이다. 많은 시민이 참여한 공모전은 지금의 꼴을 갖추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15년부터 2년에 걸쳐 완공된 기지는 지금 더없이 독특한 예술 휴식 공간으로 변신했다. 기존 탱크 5개(T1~5)는 문화공간으로 새 옷을 입었고, 해체된 철판이 재료가 된 커뮤니티센터(T6)도 들어섰다. 산업화시대 상징이 공연, 축제, 지역 장터가 열리는 친환경 생태문화공원으로 거듭난 것이다. 입장료는 없다. 주차료(승용차 5분당 150원, 중형차 5분당 300원)는 있다. 두 자녀 차량은 30%, 세 자녀 차량은 50% 할인된다. 해설사가 동행하는 투어 프로그램이 매주 화·목·토요일 운영된다.(오전 10시, 오후 4시. 가을엔 오전 10시, 오후 2시 예정)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을 통해 사전 접수를 받는다.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손으로 보는 건축투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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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뷰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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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언덕을 올라 ‘티(T)5’에 도착하자, 들머리에 각각 노란색, 빨강, 초록색으로 무장한 레고 인형이 보였다. 오는 9월1일까지 열리는 ‘8인8색 브릭아트’ 전시 안내 조형물이다. 밖에서 보면 기역(ㄱ)자 모양인 탱크는 들어서면 별천지다. 기하학적 구조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2층 전시 공간에선 고양이, 해골 등의 모양으로 조립된 레고가 어둠 사이에서 빛난다. 1층 전시장에 들어서면 거대한 화면에 펼쳐지는 영상에 압도당한다. 그물로 만든 너른 의자에 누워 영상 따라 흐르는 시간을 느껴보려는 이도 있다. 나무와 이끼로 둘러싸인 ‘티4’는 영화 ‘듄’ 시리즈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 제목의 뜻인 ‘사구’(모래언덕)에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는 삭막한 황토색과 인간이 빚을 수 없는 능선, 심장까지 까끌까끌하게 할 모래다. 낯선 풍경이다. ‘티4’에선 주인공 티모시 샬라메가 금방 튀어나올 듯했다. 1층 전시장에 차려진 웅장한 설치미술은 인간 세상의 초라함을 확인시켜준다. ‘파빌리온’이라 명명된 ‘티1’은 철판을 해체하고 대신 벽과 지붕을 유리로 만든 탱크다. 해가 지고, 구름이 흘러가는 자연의 모든 전시를 볼 수 있다. 각각의 탱크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초콜릿 박스 안 초콜릿처럼 맛이 다 다르다. 모두 둘러보는 데 족히 40~50분은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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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지 여행에 보너스는 기지를 감싼 매봉산숲길 걷기다. 흙길과 나무 데크 길로 이어지는 산책길은 1.3㎞ 정도로, 다 도는 데 약 30분 걸린다. 매봉산은 그다지 높지 않아 남녀노소, 어린이들까지 등반에 별 어려움이 없다. 정상 인근 전망대에선 월드컵경기장을 비롯해 일대 서울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폭염의 기세가 아무리 매서워도 숲이 부린 마술로 생긴 바람을 이겨낼 재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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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쪽 ‘풍경 맛집’에 매봉산 전망대만 있는 건 아니다. 지난해 국회의사당 건물 오른쪽에 마련된 북카페 ‘강변서재’다. 1975년 완공된 국회는 의원들의 의정활동만 이뤄지는 곳이 아니다. 1993년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국회는 이후 도심 속 휴식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의원동산에 들어선 한옥 ‘사랑채’ 등 볼거리도 많다. 바로 옆에 들어선 ‘강변서재’에 들어가면, 한쪽이 통창으로 되어 있어 한강을 바라보며 책 읽기 좋다. 카페 마당을 둘러보고 옥상에 오르면 광장처럼 넓은 공간이 나타나는데, 이곳에선 서울의 젖줄 한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뷰 맛집’으로 불리는 이유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서울, 하지만 돌아보면 낯설고 생경한 도시. 외국인 따라 우리도 여행 떠나볼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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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양식 사랑하는 외국인 여행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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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여행객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뭘까. 한식이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요즘, 서울 노포마다 외국인 관광객이 가득하다. 특히 다른 나라엔 없는 ‘복날 보양식’에 환호하는 외국인이 많다. ‘파크 하얏트 서울’ 24층에 있는 ‘더 라운지’에서 오는 9월8일까지 선보일 ‘여름 보양식 심포니 디너 코스’를 짠 정상협 셰프와 이지명 셰프는 이구동성으로 외국인의 한식 사랑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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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셰프는 “이번 메뉴는 삼계탕과 유사한 ‘삼계 만두’나 구운 민어, 오징어 등으로 짠 코스인데 외국인들이 매우 좋아한다”고 귀띔했다. 이런 이유로 이지명 페이스트리 셰프가 만든 디저트도 한식 기반이다. 고문헌에 등장하는 제호탕을 연구해 신선한 체리 등과 함께 만들었다. 제호탕은 백단향, 초가 등을 곱게 갈아 꿀과 버무려 우려낸 우리네 전통 음료다. 선조들이 주로 더운 날 갈증 해소를 위해 마셨다.



글·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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