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샛별이’ 시작부터 노골적인 ‘남성 판타지’
황진미의 TV 톡톡
에스비에스 드라마 <편의점 샛별이> 가 오피스텔 성매매를 암시한 모습을 코믹 설정으로 활용하는 등 젠더 감수성이 떨어지는 전개로 논란을 빚고 있다. 프로그램 갈무리 |
<편의점 샛별이>(에스비에스)는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 로맨틱 코미디다. 최강 미모를 뽐내는 김유정, 지창욱 주연에, 김선영, 음문석 등 명품 조연에, 시청률도 꽤 높아 성공적이다. 그런데 시청자 게시판엔 폐지 청원이 빗발치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인가.
<…샛별이>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와라! 편의점> 같은 명랑 웹툰이겠거니 생각하면 오산이다. 성인 남성향 웹툰을 주로 취급하는 웹사이트 ‘탑툰’에 연재되었던 성인 웹툰으로, 한 차례 전 연령 웹툰으로 리메이크되었지만 여전히 선정적이다. 첫 화부터 성인 남성이 여고생들에게 “미래의 룸망주(룸살롱 유망주)”라고 뇌까리며 담배 심부름을 해주고 키스를 받으니 알 만하다. 이를 원작으로 15세 시청가 드라마를 만든다니, 우려가 일었다. 하지만 이명우 피디는 “원작에서 우려하는 지점과는 거리가 먼 가족 드라마이며, 원작이 어떤 형태든 원작 캐릭터의 힘이나 긍정적인 요소를 잘 따서 많은 시청자가 즐길 수 있는 드라마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시청자의 항의는 원작에 대한 선입견에서 비롯된 공연한 시비일까. 그렇지 않다.
남녀 주인공의 첫 만남을 살펴보자. 여고생이 성인 남성에게 담배 심부름을 시키고 답례로 키스를 하고 남자의 전화번호를 얻는 장면이 원작과 같다. 달라진 점은 담배를 사다 준 원작과 달리 은단을 사다 준 남자에게 “나 걱정한 것이냐”며 입 맞춘 것과, 여고생이 이보다 앞서 먼발치로 남자를 보았다는 것뿐이다. 이런 각색은 ‘남자의 선량함’과 ‘여고생의 자발성’(먼저 호감을 품었음)을 강조한다. 여고생이 남자의 전화번호를 얻으며 은근히 압박하는 장면은 김유정의 미모로 인해 원작보다 긴장이 고조된다. 여고생이 미성년의 신분과 성적 매력을 무기 삼아 선량한 성인 남성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위험이 한껏 부각된다. 드라마가 여고생에 대해 어떤 욕망과 판타지를 투사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인데, 이는 노래방 장면을 통해 더 확실해진다.
드라마에는 노래방에서 섹시 군무를 추는 여고생들을 올려 찍은 장면이 나온다. 이는 여고생들이 자기들끼리 노는 모습을 찍었다기보다 쇼 무대처럼 연출된 장면이다. 즉 그 자리에 초대된 상상의 관객으로 관음하고픈 장면을 재현한 것이다. 이 드라마가 활용하는 여고생의 모습은 예능 <아는 형님>의 설정을 연상시킨다. <아는 형님>은 성인 여자에게 교복을 입혀서 등장시키고, 역시 교복을 입은 남성 진행자들이 낄낄대며 짓궂게 담배 농담을 던진다. 여기서 여성 출연자가 쩔쩔매면 놀림이 성공한 셈이고, 받아치면 되바라진 여고생의 도발성을 음미하는 꼴이 되는 이중플레이를 구사한다. <…샛별이>는 후자의 성적 판타지를 극대화한 것이다.
심지어 드라마에는 오피스텔 성매매를 암시한 장면이 나온다. 대현(지창욱)이 샛별(김유정)의 집을 잘못 알고 벨을 누르자, 단속 나온 경찰이 대현을 결박하는 중에 방 안에서 성매매가 이루어지고 있었음이 제법 상세하게 묘사된다. 왜 꼭 이 장면이 있어야 할까. 상호 오해로 빚어진 우연한 일화니 서사에 꼭 필요한 장면도 아니다. 그 장면은 드라마가 전제로 삼은 세계관과 정서를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하다. 즉 세상에는 자발적으로 성매매하는 젊은 여성이 널려 있고, 성매매의 욕망이 도시 구석구석에서 들끓고 있으나, ‘성 구매 남성으로 오해받은 나는 억울하다’(일반화하지 말라!)는 뻔뻔한 피해의식을 내비친다.
벗은 만화가(음문석)가 음란 만화를 그리며 “작가가 흥분해야 독자가 흥분한다”는 도그마를 신음처럼 내뱉는 장면도 의미심장하다. 그는 대현의 친구이자, 건너편 건물 2층에서 편의점을 ‘내려다보며’ 가끔 내려와 샛별과 대현 사이에 개입한다. 흔히 텍스트 안에 작가가 등장하면 관찰자나 서술자가 되거나, 아예 <멜로가 체질>에서처럼 그 텍스트의 작가가 되는 메타성을 띠기도 한다. 이를 참작하면, 그는 원작 웹툰 작가의 표상으로 읽힌다. 즉 명화 안에 삽입된 화가의 자기 모습 같은 건데, <…샛별이>가 어떤 마음으로 만들어진 작품인지 ‘작의’를 잘 알겠다.
드라마가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남성 판타지는 이런 것이다. ‘평범하고 선량한 나’를 되바라진 여고생이 자발적으로 사랑하고 완벽한 아르바이트생이 되어 나를 돕는다. 나에겐 심지어 부자에다 잘난 여자친구도 있지만, 나를 ‘점장님’이라 부르는 젊고 싹싹한 아가씨가 좋다. 얼쑤! 여고생과 성인 남성의 로맨스는 <도깨비>에서도 논란이 된 바 있다. 하지만 <도깨비>는 구백년 세월에 운명 등 온갖 판타지 요소를 동원해가며 음험함을 감추기 위해 노력했다. <…샛별이>는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듯, 대놓고 헐벗은 남성의 소망 충족 판타지를 전시 중이다.
항의하는 시청자들이 조기 종영까지 요구하는 이유는 이런 판타지가 실제로 해악을 끼치기 때문이다. 편의점은 누구나 이용하는 일상 공간이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젊은 여성들이 점주와 손님에게 성희롱을 당하기 일쑤인 취약한 일자리다. 젊고 예쁜 아르바이트생이 살갑게 점주와 손님을 대한다는 같잖은 판타지가 실제로 얼마나 많은 아르바이트생에게 부당한 요구와 성희롱으로 돌아올지 생각만 해도 토악질이 난다. 영화 <미성년>에서 현실감 돋는 청소년 아르바이트생이 희롱하는 취객을 시시티브이(CCTV)로 협박해 내쫓는 장면을 보며 입가심이나 해야겠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