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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뒤 ‘19금 피아노학원’에선 무슨 일이?

위드피아레트, 밤 11시까지 직장인 북적

피아노·미술 배우며 친목 다져···와인 파티도

밤늦도록 북토크·독서모임, 심야책방 핏어팻

디뮤지엄에선 금요일 칼퇴근 직장인 위한 행사

퇴근 뒤 ‘19금 피아노학원’에선 무

서울 압구정동 성인전문 피아노·미술학원 위드피아레트의 휴식 공간. 커피 등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바와 그랜드피아노가 마련돼 있다.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퇴근 뒤 ‘19금 피아노학원’에선 무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퇴근 시간이 일러지고 ‘칼퇴근’ 문화가 확산되면서 퇴근 뒤 여가 생활에 관심을 갖는 직장인들이 크게 늘었다. 도심의 문화시설들도 이에 발맞춰 직장인들을 겨냥한 저녁·심야 시간대 프로그램을 다양화하는 추세다. 서울시내 칼퇴근 직장인들이 관심 가져볼 만한, 눈길 끄는 장소들을 찾아갔다. 성인용 피아노학원과 심야책방, 미술관이다. 퇴근 뒤 직장인들이 취향대로 배우고 즐기며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들이다.

성인전용 피아노·미술학원 ‘위드피아레트’

지난 9월6일 저녁 7시, 서울 압구정동의 위드피아레트의 안내실 겸 바. “어서 오세요. 뭐 드실래요? 커피 드릴까요?” 직원이 마치 카페 도우미처럼 고객을 맞는다. 방금 퇴근한 듯 말쑥한 차림의 직장인 남녀들은 인사를 나누며 커피를 주문하거나 냉장고에서 캔 음료를 꺼내들고 홀을 지나 각자의 자리로 향한다. 바에는 몇몇 남녀가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한쪽에 놓인 그랜드피아노 앞에는 한 남성이 앉아 연주 솜씨를 뽐내고 있다.


카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지만, 이곳은 성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피아노·미술학원이다. 클래식·재즈·대중가요 등 다양한 부문의 피아노 교습과 수채화·유화·팝아트·디자인 등의 미술 교습이 이뤄진다. 어린이나 입시생이 고객인 여느 곳과 달리, 어른만 드나들 수 있는 ‘19금 피아노·미술학원’이다. 퇴근 뒤 찾아오는 직장인들을 위해 매일 밤 11시까지 문을 연다.

퇴근 뒤 ‘19금 피아노학원’에선 무

위드피아레트의 화실. 임경빈(스튜디오 어댑터)

“주52시간 근무제 시행 뒤 손님이 부쩍 늘었어요.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는 24개 피아노 연습실이 꽉 찹니다.” 임지성 원장의 말이다. 고객은 초보자들도 있지만 주로 어릴 때 배우다 중단했던 피아노를, 성인이 된 뒤 제대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찾아오는 직장인들이라고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일부는 연습을 멈추고 홀에 나와 음료수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올 초 직장생활을 시작했다는 이채진(24)씨는 “초등생 때 5년간 배우고 중단했던 피아노를 한 달 전 다시 시작했다”고 했다. 이씨는 “요즘 주변에 피아노를 다시 시작한 친구들이 많다”며 “뉴에이지 음악을 자유자재로 연주하는 걸 목표로 연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11년차 직장인 최승희(36)씨는 4달째 피아노와 미술(팝아트) 교습을 받고 있다. “나도 초등생 때 클래식 피아노를 배웠지만, 나이가 좀 드니 재즈 피아노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졌다. 입시용 피아노 교습과 달리 내 마음대로 시간과 진도를 정하고, 내 방식대로 연주해볼 수 있다는 게 정말 좋다.” 최씨는 “일주일에 2~3일씩 퇴근 뒤에 피아노 치고 그림 그리고, 사귄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면 직장생활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연주와 그림 연습에 몰두하다, 휴식시간에 홀에 모여 보드게임을 즐기거나, 음악·미술 정보와 직장생활의 애환을 나누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성인 전용 학원답게 홀에서는 가끔씩 와인 파티가 벌어지기도 한다. 임 원장은 “실력이 향상된 회원이 와인 등을 가져와 함께 마시며 기쁨을 나누는 ‘미니 파티’가 일주일에 한 두 번씩은 벌어진다”고 했다. 흥이 오르면 그랜드피아노로 자신 있는 곡을 연주하거나, 서로 얼굴에 페인팅을 해주며 친목을 다진다고 한다. 직장인들을 위한 여가문화 공간이자 사교의 공간인 셈이다. 회원들을 위한 ‘프로포즈 이벤트’도 제공한다.

+팁
매일 낮 12시부터 밤 11시까지 운영(명절 연휴 제외)한다. 전국 26개 위드피아노 지점에 등록하면, 레슨은 등록 지점에서, 연습은 아무 지점에서든 시간 제한 없이 할 수 있다. 애견 동반도 가능하다.

매일 밤 11시까지 주독야독 심야책방 ‘핏어팻’

퇴근 뒤 ‘19금 피아노학원’에선 무

서울 명륜동의 심야책방 핏어팻. 이병학 선임기자

2018년은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책의 해’다. 책의 해를 맞아 전국의 동네책방 100여 곳이 매달 마지막 금요일 밤에 ‘심야책방의 날’ 행사를 펼치고 있다. 이날 책방들은 밤 자정 무렵까지 문을 열고, 작가 초청 북 토크쇼, 소설·시 낭독회, 각종 책 읽기 모임 등을 진행한다. 한 달에 1회뿐인 심야책방 행사가 아쉽다면, 밤 늦게까지 문을 여는 책방들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요즘 동네 책방들은 규모는 작아도 책뿐 아니라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선보이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은 곳이 많다. 서울 혜화동 로터리 부근의 아담한 독립출판물 서점 ‘핏어팻’도 그런 곳 중 하나다. 책방으로는 드물게 매일 밤 11시까지 문을 여는 심야책방이면서, 이른바 ‘책맥’(책과 맥주)을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서점이다.


지난 7일 밤 9시, 주변 상점들의 불이 하나둘씩 꺼져가는 시간에 불을 환히 밝힌 책방 핏어팻은 돋보였다. 독립출판물들이 가득 들어찬 서가, 칠판에 적어 놓은 9월, 10월에 진행할 책읽기·쓰기 모임 참가자 모집 공고가 눈길을 끈다. 직장 등에서 이런저런 상처를 받은 이들을 위한 ‘치유 독서 모임’과 ‘나’로 쓰는 이야기를 주제로 한 ‘공유일기 쓰기 모임’ 참가자 모집 안내문이다. 2층 다락방에선 5명의 직장인들이 회원으로 참가한 ‘명작 읽기 모임’이 진행되고 있었다.


책방지기(주인) 이동환씨는 “서점이지만 책 판매보다는 책읽기, 글쓰기 등 소규모 모임 활성화에 치중하고 있다. 현재 8개의 소모임을 진행 중인데 참가자는 20~40대 직장인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앞으로 개인 책 출판 과정 소모임도 꾸릴 계획이다.


퇴근 뒤 책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개인 작업을 하러 찾아 오는 직장인들도 많다. 이날 1층에서 만난 직장인 김진희(24)씨는 맥주를 마시며 노트북으로 ‘서체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었다. 소모임 ‘직장 일과 퇴사’ 관련 책읽기 모임과 ‘김연수 작가 책읽기 모임’ 2개 모임에 참가하고 있다는 김씨는 “모임에 참가해 함께 읽고 토론하면서 직장생활에도 활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팁
매일 낮 1시~밤 11시 운영(화요일 휴무). 소모임 참가자 모집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공지한다. 각 소모임 모집 정원은 5~6명. 1회 모임 참가비는 1만원(음료비 포함).

칼퇴근’ 직장인을 위한 미술체험 행사 ‘디뮤지엄’

퇴근 뒤 ‘19금 피아노학원’에선 무

서울 한남동의 미술관 디뮤지엄의 취미활동 프로그램 ‘클래스 7PM’에 참가한 직장인들. 사진 디뮤지엄 제공

서울 한남동의 미술관 ‘디뮤지엄’은 매주 금요일 저녁 칼퇴근 직장인들을 위한 미술작품 감상, 그림 그리기, 나만의 작품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행사를 펼친다.


9월 한 달간, 직장인이 금요일 퇴근 뒤 디뮤지엄을 찾아와 명함이나 사원증을 제시하면, 진행 중인 ‘웨더: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전시(10월28일까지)를 무료로 관람할 수 있는 ‘퇴근하기 좋은 날씨’ 행사를 벌인다. 직장의 팀장과 팀원이 함께 방문하면 팀원 1인당 치킨 교환권 1장을 준다. 매달 둘째·넷째 금요일 저녁 7시에는 날씨를 테마로 한 그림을 직접 그려보는 ‘페인팅 워크숍’(술 1잔 포함 1인 2만원)이, 매달 첫째·셋째 금요일 저녁엔 ‘피브이시 홀로그램 가방 만들기’와 ‘거울 페인팅’ 등의 체험 프로그램 ‘클래스 7PM’(재료비 포함 1인 2만5000원)이 진행된다.

+팁
평일과 일요일엔 오후 6시에 문을 닫지만, 금·토요일엔 오후 8시에 닫는다. 7시30분 전에는 도착해야 한다. 월요일 휴관.

놀이
인간으로서의 삶의 재미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려는 의지적인 활동이다. 따라서 막연한 휴식은 놀이가 아니다. 일정한 육체적·정신적인 활동을 통해 정서적 공감과 정신적 만족감이 전제돼야 한다. ‘52시간 근무제’ 시행 이후 저녁의 삶이 보장되면서 요즘은 ’심야 놀이’가 대세다.

이병학 선임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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