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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기념물 흑돼지, 맛이 달다

한겨레

제주 흑돼지 오겹살. 연합뉴스

“내가 방금 먹은 게 천연기념물이라고요? ”

몇 해 전 에스비에스(SBS) ‘격식재료 중심-격조식당’이란 프로그램에서 각 지역의 희귀한 로컬 식재료를 가지고 요리했던 적이 있었다. 진귀한 재료로 만든 요리를 다양한 사람들이 맛보는 프로그램. 나는 윗면에 하얗게 두꺼운 근지방이 앉아있는 등심 부위로 돈가스를 튀겼다. “아니 돼지고기 비계가 이렇게 고소하고 상큼해도 됩니까?” “이건 기름이 아니라 주스인데?” 시식을 한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랬다. 처음 먹어보는 돼지의 맛. 바로 천연기념물 550호 동종 제주 재래 흑돼지다.


제주도 흑돼지는 이미 유명하다. 제주로 여행을 가면 으레 먹어야 하는 음식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현재 제주 흑돼지로 유통되는 것들의 대부분은 버크셔 외래종이 섞여 있는 종자다. 현재 제주 고유의 우리 돼지 뿌리를 찾기 위해 문화재청이나 난지축산연구소 등의 기관과 축산업 종사자들이 애쓰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제주 재래 흑돼지도 우여곡절 끝에 복원한 것이다. 제주축산진흥원에서 250여마리 개체 수를 유지하고 나머지는 허가받은 민간 농장에서 기른 돼지를 잡아 식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제주 재래 흑돼지는 얼핏 보면 쇠고기같이 살 색깔이 붉고 선명하다. 지방질은 하얗다 못해 투명하게 뽀얗다. 굽고 나면 프라이팬에 남은 기름이 굳지 않아 식용유처럼 흐른다. 살맛은 고소하면서 산미가 약간 있고 기름 맛은 달다. 고기 맛도 달다. 처음 먹어본 제주 재래 흑돼지의 인상은 단맛이었다. 극강의 감칠맛도 이 단맛에서 오는 듯했다. 어떻게 돼지가 달 수 있는가? 이 돼지는 산을 뛰어다니면서 자란다. 우리가 흔히 더러운 곳을 지칭할 때 쓰는 ‘돼지우리’라고 하는데 여기선 ‘해당 사항’ 없다. 재래 흑돼지를 기르는 김응두 농부님은 돼지들이 지능도 높고 스스로 알아서 깨끗하게 살고 있어서 축사 관리랄 것도 없이 그냥 두면 된다고 하셨다. 자연 방사 돼지! 말로만 동물 복지가 아닌 그야말로 돼지 천국이다.


이 재래 흑돼지는 구워 먹어도 좋고 삶아 먹어도 좋았으나 의외로 튀김이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으로 기름기 많은 걸 튀기면 더 느끼한데 이 돼지는 상큼했다. 아사삭 하는 바삭한 느낌의 지방질 조직과 씹을수록 고소하면서 새콤한 느낌이 튀김에 딱이었다. 초간장만 같이 곁들여도 너무 맛있다.


재래 흑돼지로 돈가스를 만들 때 제일 선호하는 부위는 등심이다. 그다음이 앞다리·뒷다리 차례다. 2㎝ 정도 두께로 도톰하게 썰어서 겉면을 조금 두드리듯 다독여주고 소금·후추로 밑간을 간단히 한다. 사육 환경이 좋다 보니 돼지고기에서 냄새가 나기 힘들다. 밀가루·계란·빵가루를 고루 묻힌다. 160도 정도의 다소 낮은 온도에서 천천히 노릇하게 튀겨낸다. 초간장이나 돈가스 소스를 심플하게 곁들이고 따뜻한 밥에 아삭한 김치와 함께 먹는다. 커틀릿이라는 서양식 조리법을 사용했지만 철저하게 한국식 맛이다.


드물긴 하지만 이렇게 지역별 재래종을 복원해 좋은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만의 맛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요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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