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지혜로 전염병 이겨낸 사람들

[책&생각] 강인욱의 테라 인코그니타


(20) 인류는 어떻게 전염병을 이겨왔는가?


설치류 사냥하다 페스트 겪은 홍산문화 사람들, 씨족 단위 흩어져 위기 모면


청동기·옥·풀 등의 항균효과 이용한 역사도…막연한 공포 대신 지혜 모아야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전염병과 함께해 왔다. 태곳적부터 인류는 야생동물의 세균과 바이러스에 노출되어 왔다. 그렇지만 인구밀도가 희박했기 때문에 전염병이 전체 인류에게 끼치는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빙하기가 끝나고 사람들이 마을을 이루어 살면서 사냥이 일상화하고 인간 사이 교류가 빈번해지며 전염병도 함께 규모가 커졌다. 그 결과 동서 문명의 교류를 잇는 실크로드를 따라서 유럽으로 전해져서 세계사를 바꾸었던 흑사병과 같은 대유행병(팬데믹)도 등장했다. 바이러스와 세균의 존재도 모르고 제대로 된 의학도 없었던 고대의 사람들은 어떻게 전염병에 대처하여 멸종의 길을 피할 수 있었을까. 고고학 자료에 남겨진 전염병의 흔적에는 치명적인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항해 지혜를 발휘한 흔적이 남아 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5천년 전 홍산문화에서 창궐한 페스트


2010~2012년 중국 내몽골(네이멍구) 퉁랴오시 하민망하(哈民忙哈) 유적에서는 5천년 전 훙산(홍산)문화 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대규모 마을 유적이 발굴되었다. 이 지역은 만주에서 몽골로 넘어가는 지점으로 예로부터 초원지대와 만주의 접경지역이었다. 이 유적에서는 특이하게도 모든 집이 불에 탔으며 인골들이 대량으로 발견되었다. 그중에서도 제40호 집터에서는 무려 97기의 인골이 발견되는 등 모두 170여명이 집 안에서 발견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노약자인데 전쟁이나 폭력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집 안에는 토기나 고급 옥제품들을 그대로 둔 채였다. 중국 지린대학 고고학과의 연구자들은 다년간 연구 끝에 페스트 계통의 전염병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흔적이라고 결론 내렸다.


하민망하의 홍산문화 사람들은 농사보다는 수렵과 채집에 주로 종사했다. 워낙 물자가 풍부해서 농사를 짓지 않아도 마을의 규모가 커져서 인구는 천명 이상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약 5천년 전에 기후가 나빠지고 주변 환경이 안 좋아지면서 이들은 기존의 사냥감이었던 사슴뿐 아니라 설치류도 잡아먹기 시작했다. 당시 사람들이 먹다 남은 동물 뼈를 분석한 결과 포유류가 3분의 2였는데, 가장 많은 뼈가 산토끼와 두더지쥐(Zokor)였다. 이런 환경에서는 야생의 포유류를 숙주로 하는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서 사람을 공격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민망하뿐 아니었다. 이 유적에서 동쪽으로 750㎞ 떨어진 곳에 있는 내몽골 중부 우란차부(울란차브)시의 먀오쯔거우라는 유적에서도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의 가능성이 발견되었다. 먀오쯔거우는 하민망하와 달리 농사를 짓던 사람들의 마을이었다. 하지만 기후는 비슷해서 초원과 농경지대가 교차하는 지역이었다. 그들도 농사가 어려워지자 야생 포유류를 적극적으로 사냥하면서 전염병에 노출되었을 것이다.


유라시아의 초원을 중심으로 발생하여 서양의 중세를 초토화했던 흑사병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었다. 초원과 온대의 접경지역에서 수천년간 인간을 괴롭혔던 고질적인 전염병이었음이 밝혀졌다. 실제로 만주 쑹넌(松嫩)평원의 중심인 하얼빈에서는 1910년에 10만명이 희생된 페스트가 창궐했다. 최근 페스트의 창궐 이유는 비싸고 아름다운 모피를 위해 설치류인 모르모트의 모피를 경쟁적으로 탐했기 때문이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염병 극복한 홍산문화 사람들


홍산문화는 양쯔강 유역의 량주문화와 함께 약 5천~6천년 전 동아시아의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문명으로 꼽힌다. 홍산문화 사람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옥과 거대한 제단을 만들어냈다. 대표적으로 랴오닝 링위안에 있는, 여러 제단과 무덤이 모여 있는 뉴허량 유적 중에는 5천㎡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신전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거대한 제단을 만들었던 홍산문화 사람들은 약 5천년 전에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민망하 유적의 발굴로 고고학자들은 오래된 미스터리인 홍산문화의 멸망 원인을 찾는 실마리를 잡았다. 환경의 변화와 전염병의 창궐로 홍산문화가 큰 위기를 맞자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거대한 기념물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작은 씨족 단위로 흩어졌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홍산문화 후손들은 샤오허옌문화라는 새로운 집단으로 탈바꿈했다. 당시 사람들은 거대한 적석총을 만드는 대신에 작은 마을로 사방에 흩어져 살았다. 기후가 상당히 추워져서 식량자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샤오허옌문화 사람들은 자신의 집 안에 제단을 만들고 홍산문화의 전통을 이어가며 살았다. 즉, 홍산문화 사람들은 전염병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문명을 과감히 포기하고 새롭게 바뀐 환경에 적응해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500년 가까이 이어진 샤오허옌문화의 시기가 지나고 약 4천년 전에는 이 일대에 화려한 청동기 문화가 번성하며 도시를 이룬 문명이 등장했다.


이렇듯 고고학 유적에서 발견되는 전염병의 흔적이 곧 인간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환경이 바뀌고 전염병이 창궐할 때 홍산문화 사람들은 과감히 자신이 가진 것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대응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역설적으로 문명의 폐허가 인간의 강력한 생존본능과 지혜를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혜로 쌓아 올린 인류의 방역문화


고대의 사람들은 현대적인 의학 지식이 없었지만, 그들만의 경험과 지식으로 전염병과 맞서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세계 문명사를 이야기할 때 대표적인 유물로 꼽히는 청동기와 옥이 좋은 예다. 특히 홍산문화를 비롯해 동아시아의 여러 지역은 공통으로 옥을 선호했다. 고대인들은 옥의 아름다움과 함께 옥에서 나오는 음이온의 살균 효과를 알고 있었다. 홍산문화의 제사를 담당했던 신관들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옥은 단지 아름다움뿐 아니라 옥 안에 숨어 있는 치유의 힘도 기대한 것이다. 지금도 옥의 산지로 유명한 바이칼 일대의 원주민들은 몸이 아프면 옥 광산으로 가서 자연 치유를 한다고 한다.


한편, 신석기 시대를 이은 청동기에도 살균 작용이 있었다. 약 4500년 전 이집트 파피루스 문서에는 가슴 통증과 음료수의 정화에 청동을 쓴다고 나와 있다. 물론, 청동에 납이 섞이거나 녹이 슬면 몸에 해롭다는 단점은 있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양한 청동 화합물이 약으로 사용되었다. 특히 중국에서는 상나라 이후 모든 나라가 화려한 청동으로 만든 제사 그릇을 썼고, 모든 다양한 의학 도구를 청동제로 사용했다. 이렇듯 인류 역사의 한 축을 이루었던 옥과 청동기의 발달 배경에는 병균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내려는 지혜가 숨어 있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척박한 초원의 유목민들은 다양한 약초를 이용해 병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냈다. 2500년 전 알타이산맥의 고산지대에서 살았던 기마인인 파지리크문화 사람들의 무덤에서는 미라가 종종 발견된다. 유라시아 초원은 1년에 반 이상이 추운 겨울이고 고원지대는 땅 밑이 얼음으로 차 있어서 땅을 파서 무덤을 만들 수 있는 기간은 기껏해야 2~3개월이다. 장례 기간이 반년 이상 걸릴 수 있다. 시신을 장기간 보관하다 자칫 전염병이 생길 수 있으니 그들은 미라 주변에 독특한 향으로 유명한 고수풀, 물싸리 같은 강력한 항균작용을 하는 초원의 풀을 같이 넣었다. 중세 페스트를 치료한 유럽의 의사들도 알코올로 소독해서 페스트의 확산을 막았다. 이렇듯 인간들은 수많은 희생과 경험으로 얻어낸 지식을 문화로 발달시켜서 자기 집단을 보호해왔다. 그러한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인류는 지혜로 병을 이겨낸 사람들의 후손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함께 종종 ‘파라오의 저주’라는 이야기도 등장한다. 1922년에 발굴된 이집트 투탕카멘 왕의 피라미드 발굴에 관여한 여러 사람이 저주를 받아서 죽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것은 관련 없는 사실을 엮어서 만든 일종의 가짜 뉴스에 불과했다. 정작 발굴을 담당한 영국의 고고학자 카터는 천수를 누렸다. 진정한 공포의 대상은 수천년 전에 만들어진 미라의 공격이 아니라 현대 인간의 문명이다. 자기파괴적으로 세상을 바꾸어온 인간의 활동과 그에 따른 기후의 변화다. 실제 많은 극지 연구자들은 지구 온난화라는 재앙으로 북극권의 빙하가 녹아서 야생동물과 인간의 예상치 않은 접촉이 또 다른 전염병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 밖에도 앞으로 더욱더 많은 위기가 인간에게 닥칠 것이 분명하다.


세상이 번잡할 때 잠시 숨을 고르며 고고학 자료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선조들은 미신을 맹신하지 않았고, 경험으로 습득한 지혜를 사회적으로 모으고 다음 세대에 전달했다. 그러한 과정이 이어지면서 우리는 멸종을 피할 수 있었다. 만약 위기의 상황에서 자신이 쌓아놓은 문명에 기대고 지혜 대신 공포나 미신에 기댔다면 한두번은 운 좋게 생존할 수 있었을지 몰라도 결국은 멸망했을 것이다. 지난 수천년간 수많은 바이러스와 세균은 돌연변이를 무기 삼아 인간을 공격했고, 그때마다 인간은 집단의 지혜로 그들에 맞서왔다. 우리는 모두 공포를 지혜로 극복한, 승리한 사람들의 후손들인 셈이다.


경희대 사학과 교수


▶네이버에서 한겨레 구독하기

▶신문 보는 당신은 핵인싸! ▶조금 삐딱한 뉴스 B딱!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의 실시간
BEST
hani
채널명
한겨레
소개글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