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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짓수, 싸우려면 더 가까워져야…“그게 싸움인 걸”

#오늘하루운동 주짓수

한겨레

종합 격투기에 사이드 마운트라는 포지션이 있다. 풀 마운트가 상대의 배 위에 올라타는 포지션이라면 사이드 마운트는 측면에서 몸통으로 상대의 상체를 눌러 움직임을 제한하는 자세다. 물론 상대가 나보다 체격이 크거나 기술이 좋은 사람이라면 어떤 포지션으로 싸우든 간에 힘에 부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이드 마운트 자세로 짓눌리는 괴로움은 특히 더 유별나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게 일차적인 고통이고 그다음으로 ‘여기 깔려서 영원히 나가지 못한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래서 사이드 마운트 포지션을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날에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위에서 누르는 사람은 어떻게든 계속 상위 포지션을 유지하고자 힘을 쓰고 아래에 깔린 사람은 어떻게든 아래에서 탈출하려고 발버둥 치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로 엎치락뒤치락하다 보면 잠깐 사이에 호흡이 가빠지고 도복이 땀에 젖는다.

싸우는데 왜 자꾸 껴안는 거야

그런데 호흡이나 땀과는 비교할 수 없이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질 때가 있다. 바로 다른 사람의 심장이 느껴진다는 거다. 상체가 포개지기 때문에 심박 수가 오를 대로 오른 심장의 두근거림이 두꺼운 도복을 뚫고 고스란히 전해진다. 남의 장기를 이런 식으로 확인하다니! 멋모르던 초보 시절에 받았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평생 다른 사람의 심장을 이처럼 가까이에서 느낀 적이 있던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어릴 때 엄마의 배를 베고 누웠던 기억 말고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때도 배에서 나는 소리, 호흡, 그리고 은은한 심장 박동이 전해지는 정도였지, 쿵쾅거리는 심장을 고스란히 느낀 건 아니었다.


주짓수를 하려면 도대체 어디까지, 얼마나 접촉해야 하나? 여성들에게 이는 아주 중요한 문제다. 주짓수에 관심이 있는데 접촉은 부담스러운 이들이 자주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럴 때마다 말로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훈련하는 모습을 찍은 영상을 보여주고 반응을 살폈다. 누가 질문하든 결과는 늘 비슷했다. 주짓수를 향한 관심과 호의가 일시에 사라지는 마법, 경악, 열 마디 말보다 더 복잡한 표정….


주짓수의 극단적인 접촉은 친구들에게 주짓수를 영업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포기 사유가 되곤 한다. 그러나 포기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엄마처럼 친밀한 사이도 아닌데 심장 박동을 느껴야 하는 이상하고 부담스러운 운동이라니. 나도 처음부터 다 알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어떻게 접촉을 참아내느냐’는 질문에 반쯤 체념한 채로 대답한다.

“그게 싸움인 걸 어떡해.”

싸우려면 가까워져야 한다. 이는 해가 떠올랐다가 기울고 매일 낮과 밤이 반복되는 것처럼 당연하다. 그런데 싸움에 관해서 도통 아는 게 없던 시절에는 이 당연한 사실조차 몰랐다. 싸움은 무조건 (내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힘이나 기술로 하는 건 줄 알았다. 알고 보니 그건 나중 문제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상대와 나의 거리다.


그제야 어릴 때 가장 싫어했던 권투 중계방송이 떠올랐다. 채널 선택권을 빼앗기고 강제로 봐야 했던 그 지루한 경기에서 두 선수는 툭하면 껴안았다. 빨리 싸워서 승부를 볼 일이지, 왜 저렇게 자주 껴안을까? 알고 보니 그건 ‘클린치’라는 상대의 맹공에 불리해질 때 재빨리 팔이나 팔꿈치를 껴안고 방어하는 기술이었다. 종합 격투기에서 마치 한 덩이처럼 들러붙은 선수들도 권투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치열하게 싸우는 중인 것이다.


이처럼 싸우기 위해서 엉겨 붙어야 한다는 사실이 여성에게는 싸움에 접근하는 시도조차 포기하게끔 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심지어 여성은 동성과의 접촉도 꺼린다. 신체에 관한 극도로 예민한 감각, 접촉이 곧 폭력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타인과의 거리를 유지한다.

한겨레

나만 해도 접촉에 관한 부담을 아직도 다 이겨내지 못했다. 어떤 기술은 배울 때는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예를 들어서 백 마운트(다리로 상대의 허리를 감고 등 뒤에 올라타는 자세) 포지션에서 초크(목 조르기)를 시도하면 상대는 당연히 목을 숨긴다.


이럴 때 상대의 뺨을 턱으로 밀어서라도 기어이 목을 내놓게끔 해야 하는데 한가하게도 ‘차라리 안 하고 말지’ 하는 저항심이 샘솟는다. 그리고 자꾸만 접촉을 덜 하는 쪽, 혹은 덜 불쾌한 쪽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착각한다. 상대는 바로 그 틈을 파고들어서 애써 잡은 공격의 기회를 무력하게 만드는데도 말이다.

성추행범을 제압한 평범한 학생

이런 와중에 최근 기사로 접한 사건이 작아지는 마음에 용기를 주었다. 부산 동래구의 골목길에서 60대 남성이 등교하던 여중생을 강제 추행하려고 했다. 가해자가 말을 걸며 신체 접촉을 시도했고 피해자는 도망쳤다. 그러던 중에 여성은 어깨를 잡혔는데, 주짓수 도장에서 배운 대로 가해자를 업어치기로 제압했다. 그런 다음에 가해자의 어깨를 손으로 눌러 바닥에 엎드리게끔 했고 힘이 빠진 틈을 타서 도망쳤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업어치기는 몸을 최대한 밀착하면서 단어가 의미하는 바대로 상대를 업어야 성공하는 기술이다. 몇몇 악플러가 ‘주짓수 도장 광고인지 기사인지 모르겠다’고 비아냥거렸지만 등굣길에 성범죄자를 만난 여성이 평상시에 훈련한 대로 가해자를 제압했다는 건 굉장한 일이다.


이런 사건을 두고 여성은 자신을 대입하고 ‘나라면…’으로 시작되는 상상을 이어갈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라면 위험을 알아차리고 도망칠 수 있었을까? 나라면 위협을 가하는 가해자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나라면 평소에 배운 대로 침착하게, 공격을 피하고 방어할 수 있을까? 주짓수를 배우기 전과 후의 차이는 ‘나라면’으로 시작하는 상상이 항상 절망과 무기력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작지만 의미심장한 차이가 접촉의 부담보다 강해지는 마음과 숙련되는 기술에 더 집중하게끔 한다. 때로는 의기소침해진 나를 다독이기도 한다. 한 번에 조금씩, 아주 조금씩만 더 과감하고 담대해지라고.


글·사진 양민영 <운동하는 여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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