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담뱃값 인상 계획은 왜 하루만에 ‘없던 일’이 되었을까요?
10년 내 OECD 수준 올리겠다 발표했다가 하루만에 ‘아무런 추진 계획 없다’ 번복
역대 정부서도 ‘서민증세’ 프레임 갇혀 논란…
담배값 인상 진짜 취지는 부각도 안돼
간접흡연 경고그림. 보건복지부 제공 |
최근 보건복지부가 ‘10년 내 담뱃값 인상 목표’를 제시했다가, 하루만에 ‘없던 일’로 번복하고 말았습니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시작은 이랬습니다. 지난달 27일 보건복지부는 ‘제5차 국민건강증진종합계획 2021~2030’을 발표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담뱃값 수준(현재는 7.36달러·약 8130원)으로 건강증진부담금 인상 등 가격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했습니다. 발표를 맡은 이스란 복지부 건강정책국장은 “현재는 구체적으로 정하진 않았지만, 10년 안에는 건강증진부담금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발표 직후 “10년 뒤 담뱃값 8000원”과 같은 제목을 단 기사가 쏟아지자, ‘담뱃값 인상’은 곧바로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 야당 정치인들도 일제히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코로나19로 서민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데 ‘증세’에 나선다는 논리가 뒤따랐습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란 복지부는 발표한지 하루만에 부랴부랴 해명에 나섰습니다. “담배가격 인상은 현재 고려하고 있지 않으며 추진계획도 없다”고 밝힌 것입니다. 이어 정세균 국무총리도 자신의 트위터로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정부는 전혀 고려한 바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계획을 밝혀놓고 계획이 없다고 하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지난달 28일 담뱃값 인상 계획을 부인하며 올린 트윗. 정세균 트위터 갈무리 |
정부의 속내를 살펴보면, 애초 10년 목표를 제시한 것일 뿐 현 정부에선 추진할 계획이 없다는 것으로 보입니다. 차기 또는 차차기 정부에서나 현실화할 일인데 현 정부가 비판을 받는 것이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로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 또다른 전선을 추가하고 싶지 않다는 속내도 읽힙니다. 노련한 정치인인 정세균 총리가 애꿎은 언론에 책임을 돌리면서까지 적극 부인하자, 논란은 차츰 수그러들었습니다.
역대 정부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어느 정부에서나 담뱃값 인상 카드를 꺼낼 때마다 ‘서민증세’라는 역풍을 맞곤 했습니다. 그 프레임이 얼마나 강력한지, 전·현직 대통령들도 위치에 따라 입장이 바뀔 정도였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출간한 자서전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2015년 박근혜 정부가 담뱃값을 2500원에서 4500원으로 인상한 것을 두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재벌과 부자에게서 세금을 더 걷을 생각을 해야 하는데 불쌍한 서민들을 쥐어짠 것이다. 담뱃값은 물론이거니와 서민들에게 부담을 주는 간접세는 내리고 직접세를 적절하게 올려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비슷했습니다. 한나라당 대표 시절인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전년도 말에 담뱃값을 2000원에서 2500원으로 올린 것을 두고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소주와 담배는 서민이 애용하는 것 아닌가. (가격 인상에) 국민이 절망하고 있다.” 정권을 잡으면 담뱃값 인상을 검토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맹렬히 비판해온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논란이 일 때마다 담배값 인상의 취지는 잘 부각되지 않습니다. 학계에서는 담뱃값 인상이야말로 흡연율을 끌어내리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2004년 말 담뱃값 인상으로 성인남성 흡연율이 57.8%(2004년 9월)에서 44.1%(2006년 12월)로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2015년 인상으로는 이 수치가 2014년 43.2%에서 2015년 39.4%으로 3.8%포인트 하락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성인남성 흡연율은 2019년 기준 35.7%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남자 15살 이상 매일흡연율 22.4%(2018년)에 비해선 여전히 높은 수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담뱃값 인상 없이 캠페인으로만 흡연율을 줄이자고 하는 것이 현실성 있는 이야기일까요?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 볼 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담뱃값 인상이 청소년의 흡연율을 줄인다는 점입니다. 2015년에 담뱃값 2000원을 올리고 난 뒤 남성 청소년의 흡연율은 한해 전보다 2.1%, 여성 청소년은 0.8% 감소했습니다.(질병관리청 ‘청소년 건강행태 온라인 조사’) 특히 청소년의 흡연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경고 그림 같은 비가격정책 보다 가격정책이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도 있습니다. 이들은 소비 능력이 떨어지지만 건강에 대한 염려가 적어 무서운 경고그림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분석입니다.(이동형 등 ‘가격정책과 비가격정책이 청소년과 성인의 흡연행태 변화에 미치는 영향의 비교분석’, 2018년)
그렇다면, 담뱃값 인상은 정말 ‘서민증세’로 봐야하는 걸까요? 대한금연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백유진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가정의학과)는 2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백 교수는 복지부와 함께 국민건강증진 종합계획을 마련하는 데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담뱃값 인상을 이슈화하기는 어려운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담뱃값 인상이 가장 강력한 금연 정책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특히, 저소득층은 평균적으로 술담배를 많이 해서 건강이 좋지 않아 의료비가 많이 들어가게 된다. 담뱃값 인상으로 세수가 늘어나면 이를 저소득층을 위해서 보상하는 쪽으로 가야지, 당장 저소득층에게 경제적 부담이 된다고 해서 인상하지 말라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 5년 혹은 10년 마다 불규칙적으로 정부가 의지가 있을 때만 담뱃값을 올리는 방식부터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꺼번에 가격을 올리려다보니 그만큼 강력한 저항에 부딪힐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처럼 정해진 상품 수량에 고정된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 방식은 물가가 오를수록 담배의 실질 가격이 낮아지는 문제점도 있습니다. 이에 세계은행은 담배에 대해선 물가가 오를수록 세금도 오르는 ‘물가 연동형 종량세’를 추천합니다. 영국, 독일, 중국 등 60여개국에서는 종량세와 함께 상품 가격의 일정 비율을 세금으로 부과하는 ‘종가세’를 시행해 물가 인상으로 인한 실질 가격 하락에 대응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담배값 인상 이슈는 복잡다단한 논란에 휩싸기이기 쉽습니다. 그런만큼 한 부처에 맡겨둘 것이 아니라 범정부 차원에서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메시지를 다듬어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다음에는 목표 가격을 제시하지 않고, 과세 방식 변화로 자연스럽게 목표 가격에 도달하는데 집중하는 것도 한 방법일 것입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