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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다, 한국인 특유의 ‘매우 예민함’…쉽게 지치는 당신에게

[토요판] 인터뷰


전홍진 교수·중앙심리부검센터장


외부 자극 더 쉽게 받아들이는


‘매우 예민한 사람’ 인구 20%


금방 기진맥진한 경우 많지만


남다른 감각·아이디어의 원천


예민해서 생기는 걱정·넘겨짚기


마음도 연습하면 모양 바뀌어


‘작은 목표’의 실제 효과 중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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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감함은 차이를 느낄 줄 아는 특별한 능력입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민감하면 에너지가 고갈되기 쉽습니다. 외부 자극을 마구잡이로 받아들인다면, 그 자극들이 내면에서 얽혀버린다면, 극도의 민감함은 마음의 병으로 발전하기도 합니다. 엉킨 마음도 빗질이 필요합니다. 가지런해진 예민함은 비로소 섬세한 결이 됩니다.


예민함과 예리함은 얼마나 다른가. 예민한 사람과 섬세한 사람의 차이는 뭘까. 똑같이 민감한데, 왜 누구는 스스로 지쳐버리고, 또 누구는 예민함을 재능으로 바꿀까.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글항아리)은 이러한 물음에 ‘지금, 여기의 의학’이 건네는 생생한 응답이다. 그동안 국내에 출간된 ‘예민한 사람들을 다룬 책’들은 외국 연구나 사례를 토대로 한 번역서가 대부분이었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오랫동안 예민함을 연구해온 이 책의 지은이는 보건복지부 위탁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인 전홍진(49) 삼성서울병원 교수(정신건강의학). 그가 첫 책을 펴냈다. 부제로 쓰일 법한 문장이 책 제목으로 직행한 ‘작명’도 그렇지만, 내용도 단순명료하게 핵심으로 직진한다.


“예민한 분들은 외부 자극의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고 너무 자주, 과하게 반응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힘든 일이 많아요. 그래서 우울해지기 쉽죠. 다르게 말하면, 예민한 분들은 디테일에 강해요. 그래서 조언을 드릴 때도 디테일하게, 쉽고 분명하게 해야 효과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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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항아리 출판사 제공

예민한 사람들의 의사, 전홍진 교수를 지난 7월22일 서울 강남구 일원로에 위치한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자신의 기분을 구분하는 법, 비뚤어진 고개를 똑바로 두는 법(시선 정렬), 대화할 때 조심해야 할 버릇, 죽고 싶다는 말이 튀어나올 때 머릿속에 띄울 말풍선…. 책 속의 이런 ‘깨알 지침’들이 진료에서 실제 효과를 본 처방이라고 했다.(이 책에선 중증 우울증은 다루지 않는다.) 10여년간 1만명 넘는 환자를 봐온 그는 “작고, 단기적인 노력”을 믿는 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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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다 주워담으면서 살 순 없어


―주력해온 연구 분야가 우울증, 기분장애인데 첫 책의 주제를 ‘예민함’으로 정하신 이유는요?


“우울증 환자들은 우울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표현을 바꿔서, 예민한 편이냐고 물으면 비교적 쉽게 동의하세요. 많이 예민하다고. 그러면 공감과 치유로 가는 길이 생기지요.”


―우울증 환자가 예민하긴 해도, 예민한 사람이 다 우울증은 아니겠지요?


“그럼요. 예민함은 기질이지 질병이 아니니까요. ‘매우 예민한 사람’(Highly Sensitive Person·HSP)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한 일레인 아론의 연구에 따르면, 인구의 15~20%가 이런 기질을 가지고 있어요. 예민함은 잘 사용하면 능력이 되지요. 남들이 못 느끼는 걸 느끼니까요. 비즈니스, 예술 쪽에서 성공한 이들 중에 예민한 사람이 참 많아요. 성공하려면 예민해야 하는데, 환자들도 예민해요. 이게 신기한 거예요. 예민함을 활용하는 사람과 예민해서 방전되는 사람의 차이는 뭘까, 하고요.”


―그 차이가 뭐라고 보세요?


“예민함을 다룰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봐요. 예민한데 그 기질을 다루지 못하는 사람은 고성능 카메라에 복잡한 프로그램을 장착한 컴퓨터와 같아요. 큰일 할 거 같죠? 못 해요. 인풋을 제어하지 못하면, 컴퓨터 망가지고 바이러스 걸려요.”


―결국 ‘무엇을 취하면서 살 것인가’의 문제일까요?


“네, 모든 걸 다 받아들이면서 살 순 없어요. 생각보다 지나갈 것이 많아요.”


―예민한 성격이 따로 있다면, 예민함을 잘 다루는 캐릭터도 따로 있나요?


“아니요, 그런 사람은 없어요. 많이 노력하고 연습해야 돼요. 이게 핵심입니다. 물론 쉽지 않죠. 하지만 연습하면, 예민함을 조금은 평평하게 만들 수 있어요.”


―마음이 예민해질 땐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예민한 사고의 특징을 아는 게 중요해요. 첫째, 과하다(실제보다 부풀려져 있다). 둘째, 부정적이다(썩 객관적이지 않다). 대체로 그래요. 예민하면 걱정이 앞서니까 해보기도 전에 ‘나는 할 수 없다’고 해요. 그런데요, 이럴 때 사람이 바뀌려면 필요한 게 있어요.”


―(쫑긋) 그게 뭐지요?


“‘어떻게 나아질 거라는 비전(전망)’이 있어야 사람은 변해요. 그래서 방향을 잡고 그 비전을 소개해주는 조력자가 필요한 거죠. 저는 환자를 도울 때, 성공하기 쉬운 작고 단기적인 목표부터 제시해요.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기, 사람 한 명 만나보기, 사람은 불편한데 고양이는 좋다면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과 고양이 대화만 해보기, 이런 ‘사소한’ 것들. 작더라도 성공하는 경험이 필요해요. 그래야 삶에 자율성이 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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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전 교수가 환자들로부터 실제 효과를 확인한 ‘작은 목표’들의 모음집이기도 하다. “해보고, 되는 것만 골랐다.” 이를테면 “예민하면 가장 흔히 하는 행동이 미간 찌푸리기다. 표정을 바꾸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손가락을 이용해 미간을 펴는 ‘셀프 클리닉’을 설명한다. “예민한 이들은 다른 사람의 표정과 말투를 살피는 데 집착하고 그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지만 정작 자신의 것을 가꾸는 데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예리한’ 지적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드는 ‘멘털 냉수마찰’이 이어진다. “상대의 표정과 말투에 너무 신경 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사람의 표정이나 말투는 ‘나 때문’이 아닌 게 대부분이다, 사람들과 대화할 때 지금 말한 것이 결국은 ‘잊힐 내용’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좋다, 메신저에 답장이 늦더라도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하지 말자, 다른 일로 답장이 늦어지는 것이다.” 시원한 조언 외에도 트라우마와 방어기제를 파악하는 법, 예민해진 위장을 달래는 법, 호흡으로 긴장을 이완해 ‘완전히 쉬는 능력’ 등 예민함 낮추는 ‘상비약’이 잔뜩이다.


―모두 의식적으로 기울여야 하는 노력이네요. 무의식적으로 예민하게 ‘반응’하는 대신, 의식적으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게 유도하는 듯해요.


“맞아요. 뇌는 자주 쓰는 부위의 연결성이 강화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반복적으로 노력하면 효과를 발휘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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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를 덜 예민하게 만들까


2008년부터 삼성서울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2017년부터는 중앙심리부검센터장도 겸하고 있다. 심리부검이란, 극단적 선택으로 죽음에 이른 이의 사망 전 성격과 행동적 특성, 일정 기간 심리적 행동양상이나 변화, 상태 등을 토대로 극단적 선택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규명하는 것이다. 전 교수는 우울증이 자살 충동으로 이어지는 원인(전두엽-변연계의 연결성 감소)을 규명한 연구로도 유명하다.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을 4년째 맡고 계세요. 무얼 배우셨는지요?


“이 일을 하면서 깨달은 한 가지는,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우 예민한 사람들’이 환자가 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도 몹시 중요하다는 점이에요. 그들을 돕는 것이 결국 우울증의 조기 발견과 치료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책을 내게 됐어요. 자신이 얼마나 예민한지를, 혹은 주변에 예민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이해하고 관계 맺는 방법을 이왕이면 조금 더 일찍 배웠으면 좋겠어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엔 꼭요.”


―한국인 특유의 ‘매우 예민함’도 연구하셨어요.


“2012~2014년 하버드대 부속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연수할 때 한국과 미국 우울증 환자들의 증상을 비교하는 국가 간 연구를 했어요. 그 결과, 서양이나 다른 동양 국가들에 비해서 한국 사람들은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이 많다는 걸 알게 됐지요.”


―일반 우울증과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이 어떻게 달라요?


“멜랑콜리아형 우울증은 (우울감을 포함해) 자신의 감정을 잘 못 느끼면서도 무척 예민한 특징이 있어요. 일반 우울증은 우울, 슬픔, 의욕 저하를 호소해요. 그런데 한국 환자들은 기분보다 신체 감각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요. 불안하면 가슴이 뛰어요, 그럼 심장이 안 좋나? 숨이 답답하면, 폐가 안 좋나? 이렇게 접근하죠. 감정이 어떤지는 모른 채 건강염려증만 커져요. 한국 사람들이 매우 예민한 이유에 대해선 아직 정확한 답을 내놓긴 어렵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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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에너지가 적으면 우울해지기 쉽다고 생각해요.


“네.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에너지양이 다르기도 하지만, 예민한 사람은 특히 에너지가 금방 줄어요. 쓸데없는 에너지 소비가 많으니까. 완전히 방전되고 나면 충전하는 데 시간이 더 오래 걸리잖아요? 그러니 미리미리 에너지를 채우면서 살아야지요. 덜 예민해지려면.”


―무엇이 사람을 덜 예민하게 만드나요?


“나로 하여금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드는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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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다 예민해진 코로나 시대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은 개인의 예민함에서 출발해 사회적 연결로 나아간다. 인간의 성장과 행복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관계라는 전제 위에서 이 책은 쓰였다.


75년간 724명의 삶을 추적한 하버드대 성인발달연구는 세계 최장기 종단연구로 꼽힌다. 현재도 진행 중인 이 연구의 메시지는 한결같다. “관계는 유익하고, 고독은 해롭다.” 물론, 이 말은 문어발 식으로 빨판처럼 관계에 들러붙으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관계가 그만큼 중요하니, 아무하고나 함부로 관계를 맺고 살면 안 된다는 통찰도 준다. 관계의 질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몸과 마음이 편안해져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만드는’ 드문 상대를 지키는 일은 얼마나, 얼마나 중요한가.


―예민한 사람은 감정이 안정적인 상태의 다정한 상대와 함께하는 것이 좋다고 쓰셨어요. (갸우뚱) 일단 그런 사람이 별로 없지 않나요….


“(대번에) 그렇지 않아요. 안정적인 상대를 만나서 비로소 상태가 호전되는 분들을 저는 끊임없이 봐요.”


―자신이 스스로에게 안정적이고 다정한 존재가 되어주려고 노력하는 건 어때요?


“좋죠. 그리고 그 안정감 있는 상대가 꼭 사람이 아니어도 돼요. 동물도 좋고, 취미도 좋아요. 그런데 취미가 술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뒤끝이 좋지 않더라고요.”


―네. 그런데 선생님은 예민한 편이세요? 어떠세요?


“저는 그다지 예민하지 않아요. 에너지는 많은 것 같고요.”


―의학 외에 에너지를 쏟는 분야는 뭔가요? 의사에게 도움이 된 비의학적 활동이 있다면요?


“전자공학 연구자, 작가, 화가들과 자주 교류해요. 아이디어를 많이 얻지요. 가장 흥미가 많은 분야는 전자공학이에요. 최근에는 가상현실, 정보기술을 정신의학에 접목하는 연구를 하고 있어요. 상당한 진척을 이룬 단계예요.”


―가상현실 치료요?


“네. 가상현실을 체험하면서 우울과 불안을 호전시키는 시스템을 만들었고, 현재 임상시험 중이에요. ‘긴장이완 훈련’ 중에는 숲을 체험하면서 호흡 훈련을 할 수 있고, ‘인지행동 훈련’ 중엔 불안하고 초조한 생각과 트라우마의 기억을 다른 생각으로 전환할 수 있게 돕습니다. 체험 도중에 생체신호를 측정하고요. 전과 후를 비교해 호전 정도를 피드백 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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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함은 이 시대의 감수성 같아요. 코로나로 예민도가 전반적으로 높아졌어요.


“비대면 시대지만 메일이나 에스엔에스로 안정적인 교감을 이어가세요. 예민한 분들에겐 이런 상황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어요. 표정이나 말투보다 내용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까, 괜한 걱정을 덜 수 있을 거예요.”


석진희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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