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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만 안 해도 까먹지만 ‘우두커니 100살’ 안 되잖아요”

[토요판] 요조의 요즘은


인스타그램 스타 이찬재·안경자 부부


브라질 살던 77살 동갑내기 부부


인스타그램 올린 글과 그림으로


13일 국제적인 ‘웨비상’ 수상


계정 팔로어 전세계에서 38만명


2017년 아들 권유로 인스타에


‘손자들을 위한 그림’ 올려


“따뜻하다” “눈물 난다” 호평


2017년 손자 보고 싶어 한국행


할머니, 부천 시민기자로 활약


할아버지, 앨범 내려 노래 연습


“우리가 노인들 응원하는 사례 되길”


한겨레

웬만한 사람들은 다들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역시 내가 운영하는 책방의 인스타그램 계정이 있다. 책방을 운영하면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일들과 책방에서 판매하는 책들을 소개하는 계정이다. 4년간 팔로어들은 야금야금 2만명을 넘었다. 책방의 일상을 소개하는 데 절반의 시간을 쓴다면 나머지 절반의 시간은 다른 사람들의 계정을 구경하는 데 쓴다.


내가 팔로해놓고 관심있게 들여다보는 298명의 인스타그램 친구 중에는 어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다. 할아버지의 이름은 이찬재(77)이고 할머니의 이름은 안경자(77)이다. 이 두 분은 ‘손주들을 위한 그림’(drawings for my grandchildren)이라는 계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계정을 따르는 팔로어는 자그마치 38만명이다. 국제적인 인기 인스타그램 유저인 이분들의 계정에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매일같이 댓글을 줄지어 남겨둔다. 나는 이 계정을 처음 발견했을 때 그 폭발적인 인기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인스타그램의 프로세스를 익혔다는 사실에 더 강력한 인상을 받았다.


세상은 갈수록 편리해지고 있지만 그것은 철저히 노인을 배제한 편리일 때가 많다. 고기는 끊었지만 감자튀김과 콜라를 좋아해 종종 가는 햄버거 가게에서 자주 보는 풍경은 대중화되기 시작한 주문 자동화 기계인 키오스크 앞에서 주문을 못하고 쩔쩔매는 노인들, 그리고 옆에서 그들을 돕는 사람들이다. 얼마 전에는 제주도 내 집에 가기 위해 김포공항에 갔다가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어떻게 나오게 하는지 모르는 할아버지를 도와드린 적이 있다. 순간이지만 나도 방법을 몰라 헤맸다.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는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온수가 바로 나오지 않게 설계된 요즘의 정수기 역시 노인들에게는 일상 속 또 하나의 난관이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이찬재 할아버지와 안경자 할머니가 인스타그램을 능란하게 사용하는 것도 정말 대단한 일이지만 그것 못지않게 대단한 것은 두 사람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법을 가르쳐준 사람일 것이다.


나는 이제 갓 60살을 넘긴 우리 엄마에게 스마트폰의 새 기능을 알려주다가 모녀지간의 의가 상할 뻔한 적이 있었던 경험을 부끄럽게 떠올렸다. 지금도 엄마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사용하다가 무언가 잘 되지 않고 원인을 알 수 없어 나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마다 그렇게 내 눈치를 본다. 분명 딸이 알려주는 것을 한번에 알아듣지 못할 것이고, 딸은 거듭 가르쳐주다가 짜증이 날 게 분명하다는 것을 몇번의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엄마의 그런 조심스러움을 모르는 게 아니면서도 말해줘도 잊어버리고 적어줘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에게 순간적으로 욱하게 되는 내 기질을 참느라 무척 애를 쓴다. 엄마의 마음속에 ‘궁금하지만 어차피 딸이 알려줘도 난 까먹을 테니까’ 하고 포기한 것들이 하나씩 쓸쓸하게 쌓여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그깟 짜증 하나 못 참는 내가 너무 한심하고 엄마에게도 못 견디게 미안해서 갑자기 실수로 내리는 비처럼 눈물이 와락 솟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같은 상황이 닥치면 답답함이 각설이처럼 죽지도 않고 또 찾아온다.


지난 13일 이찬재 할아버지와 안경자 할머니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인스타그램 배우는 거 안 힘드셨냐는 질문부터 대뜸 여쭤봤다.


“아이고, 왜 안 힘들었겠어요, 힘들었지.”(이찬재 할아버지)


“반복의 반복이에요. 잊어버리고 또 배우고.”(안경자 할머니)


“지금도 한 일주일 여행 가서 쉬었다 오면 또 까먹어요. 계속 되풀이하지 않으면 안 돼요. 우리 나이가 그래요.”(이찬재 할아버지)


“그나마 저는 좀 할 줄 알았어요. 그래서 아들하고 나하고 짜서 아버지를 설득해보자 했죠. 처음엔 잘 안됐어요.”(안경자 할머니)

한겨레

아들 정성에 인스타 배워


―아, 아드님께서 인스타그램을 가르쳐주셨군요.


안경자(이하 안) “노인들은 원체 완고해요. 배울 생각이 없어요. 안 배워도 사니까 구태여 배울 필요가 없는 거예요. 남편도 그런 사람이고요. 그런데 아들은 아버지가 배우기를 바랐죠. 아버지는 안 배우려고 하고 아들은 가르치려고 하고. 노인을 가르치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걸 아들이 다 참아내더라고요. 결국은 남편이 거기에 감복돼서 배운 거예요. 우리 인스타그램을 보면 ‘우리 아버지, 어머니에게 왜 진즉 가르쳐드려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을까’라는 회한의 글이 많이 올라와요. 그런데 쉬운 일이 아니죠. 주변 친구들한테도 저희가 열심히 알려주는데 한두 번 올리고 말아요.”


아들 이지별(48)씨가 그렇게까지 아버지에게 인스타그램을 가르쳐주고 싶어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멀리 떨어진 손자들을 그리워하며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노인의 고독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찬재 할아버지와 안경자 할머니는 사범대 재학 시절 학과 시화전에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 인연으로 만난 캠퍼스 커플이었다. 두 사람은 졸업 후 결혼해 각자 지구과학 교사, 국어 교사로 일하다 1981년 39살의 나이로 가족이 살고 있던 브라질로 이민을 떠났다. 그곳에서 아들 지별씨와 딸 이미루(44)씨를 키웠고 시간이 흘러 ‘알뚤’(Arthur·15), ‘알란’(Alan·14), 그리고 ‘아스트로’(Astro·4)라는 세 손자를 맞았다.


브라질에서 의류업에 종사하다가 은퇴한 이찬재 할아버지는 자신과 아내를 서툰 한국어로 하지(할아버지), 하니(할머니)라고 부르는, 사랑스러운 두 손자 알뚤과 알란(딸 미루씨의 아들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또 데려오는 즐거움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2015년 1월, 미루씨네는 가족 사정이 생겨 돌연 한국으로 떠났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교육받는 것도 바람직하겠다고 생각하며 딸과 두 손자를 배웅했지만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하루는 무섭도록 텅 비고 말았다.


브라질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뒤 페이스북 마케팅부에서 일하는 지별씨는 오랜만에 아들 가족을 만나러 미국으로 건너와 아스트로를 안고 놓아주질 않는 아버지를 데려다 앉혔다. 그리고 단단히 별러오던 인스타그램을 가르쳤다. 그리고 거기에 손자들에 대한 그리움을 그림으로 표현해보라고 제안했다. 자신이 어릴 적 종종 그림을 그려주던 아버지였듯이, 손자들에게도 그렇게 그림을 그려주는 할아버지가 되어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탄생한 계정의 이름이 ‘손자들을 위한 그림들’이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이찬재 할아버지는 잊어버리고 다시 배우는 과정을 셀 수 없이 반복하면서 한국과 미국에 있는 손자들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업로드했다. 안경자 할머니는 그 그림 아래에 글을 썼다. 그 글은 아들 지별씨가 영어로, 딸 미루씨가 브라질어로 번역했다. 그림의 모퉁이마다 세 손자들 이름의 앞글자만을 딴 ‘for AAA’(AAA를 위해)라는 서명이 새겨졌다.


2015년 4월에 시작한 일이다.


그리고 4년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연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에 올린 아들의 동영상으로 갑자기 팔로어가 늘었을 때만 해도 별 느낌이 없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인터뷰 요청이 계속 오더라고요. 브라질 최대 방송사인 <헤지 글로부>(Rede Globo)에서 연락이 왔을 때 우리는 떨려서 못 하겠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아들과 딸이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용기를 내서 촬영에 임했고, 전 남미가 다 시청하는 일요일 최고 시청률의 프로그램인 ‘판타스치쿠’(Fantastico)에 저희의 인터뷰가 방송되었죠. 방송이 끝나니 온 아파트 주민과 동네 사람들이 축하해주었어요.”


뒤이어 미국의 방송 <엔비시>(NBC), 영국의 공영방송 <비비시>(BBC), 신문 <가디언>에도 두 사람의 사연이 소개됐다. 코스타리카에서 전시가 열리고 뒤이어 상파울루에서도 전시를 했다. 주한 브라질 대사관과 주한 브라질문화관을 통해 2018년 한국에서도 전시를 열었다.


2017년에는 <내셔널지오그래픽>과 갈라파고스에 다녀왔다. 2018년 ‘세계한인의 날’에는 한국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할아버지가 그린 사라질지도 모르는 커피 산지의 동물들이 올해 초 국내 유명 커피 브랜드의 드립백 표지를 장식했다. 지난 3월에는 이찬재 할아버지가 그리고 안경자 할머니가 쓴, 그림과 글을 사계절이라는 그릇에 정갈하게 정리해서 담아낸 에세이집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를 출간했다. 지난 13일에는 ‘인터넷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국제적인 인터넷 아트상인 제23회 웨비 어워드에서 피플스 보이스상까지 받았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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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걸 남한테 그림이라고”


―사람들이 왜 이렇게 두 분의 그림과 글에 열광할까요?


“왜 인기가 있는지 사실 우리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 이런 댓글들이더라고요. 그림이 따뜻하다. 눈물이 난다. 공유해줘서 고맙다. 돌아가신 조부모, 부모님이 생각난다. 왜 우리는 일찍 부모님에게 권하지 못했나, 하는 자책과 부끄러움도 이야기하고요. 아마도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가 주는 공감에 자신도 모르게 위로받는다는 느낌을 받나봅니다.”


―사람들의 댓글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이찬재(이하 이) “깊은 병중의 어머니가 어린 딸에게 선물로 남기겠다며 꽃 그림을 부탁했을 때가 잊히지 않아요. 얼른 그려서 보냈지요.”


―도저히 그림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림 실력이 수준급이세요.


“말도 마세요. 처음에 전시 제안이 왔는데 남편이 굉장히 반대했어요. 이런 걸 남한테 그림이라고 내거는 건 아니라는 거지. 그래서 설득을 하다 하다 못해서 그냥 그럼 인스타그램 전시회라고 하자, 그렇게 해서 겨우 허락을 받았어요.”


한국에 간 두 손자가 ‘하지’ ‘하니’가 보고 싶다고 거듭 재촉해 두 사람은 2017년 딸을 따라 한국에 돌아왔다. 인터뷰 중에도 안경자 할머니는 알뚤의 전화를 받았다. “학교 시험공부를 하다 뭐 물어볼 게 있는데 언제 오냐”는 손자의 목소리가 나에게까지 들려왔다.


“저는 브라질에서도 계속 교사 생활을 했었어요. 아무래도 그렇다보니 국어나 역사 같은 것을 손자들에게 많이 알려주죠. 할머니한테 이렇게 물어봐주니 너무 좋을 따름이에요.”


―그럼 할아버지는 과학을 알려주시나요?


“저는 공부하는 것이 너무 싫습니다.(웃음) 한국에서 교사였을 때에도 가르치는 제자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제 자식들에게도 물론이고요. 대신 저는 손자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주는 게 좋아요. 알뚤과 알란을 위해서는 방탄소년단 같은 케이(K)팝 스타들을 주로 그려주고, (미국에 사는) 아로(아스트로의 줄임말)를 위해서는 공룡을 많이 그려주고 있습니다.”


이찬재 할아버지는 인스타그램용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었다. 티셔츠에, 돌멩이에, 신발에 그림을 그려서 손자에게 보내곤 한다.


“남편은 게으른 사람인데도 이런 건 잘해요. 워낙 애들이 예쁘니까.”


손자들을 위하는 소박한 마음에서 그리기 시작한 할아버지 그림의 영향력은 점점 커져갔다.


“손자들을 위한 그림들 중간중간에 자연스럽게 우리의 지난 시절을 그릴 때도 있었는데, 아들이 그 그림들을 보고 부모의 몰랐던 어린 시절을 알게 되는 것이 참 좋았던 모양이에요. 언젠가 아버지 어렸을 때, 전쟁 때 겪었던 일, 가난했던 시절 이야기 같은 것을 더 그려달라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처음에 왜 그런 요청을 했는지 몰랐지만 그런 그림들을 그리면서 우리 손자들뿐 아니라 아들딸도 엄마, 아빠의 옛날을 알고 싶어한다는 걸 알았어요. 실은 저희가 겪은 게 근대사예요. 나는 아직도 김구 선생 장례 행렬을 본 게 생각나요.”


“얼마 전에는 외교부에서 공공외교에 대해서 강연을 해달라고 한 적이 있었어요. 그 제안을 받으면서 느낀 바가 많았어요. 그저 손자들을 위한 그림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시작했지만 그렇게 나누는 소통 외에 또 다른 영향력이 있구나. 내가 브라질을 소개하고, 대한민국을 알리면서 나도 모르게 공공외교에 큰 역할을 했구나 하고 말이에요.”


확실히 이찬재 할아버지가 그리는 그림의 소재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손자들의 성장에 따른 자연스러운 귀결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본인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을 의식한 것이기도 하겠다. 지구환경, 멸종위기 동물, 날씨 변화, 한국의 역사…. 그중에서도 원숭이해를 맞이하여 세 손자를 세 마리의 귀여운 원숭이로 그린 그림은 간결하게 한번에 그려지는 그림을 좋아하는 할아버지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그림이다.


“100세 시대, 남 일인 줄 알았는데”


―교직생활을 정리하고 덥석 브라질 이민을 결정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그건 우리의 캐릭터라고 봐요. 아침이면 그랬어요. 오늘은 좀 깜짝 놀랄 만한 일이 없을까? 맨날 그랬어요. 하루하루 생활 자체가 좀 무료하고 어떤 변화가 왔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이 내 속에서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게다가 제 부모님과 동생들이 가서 이미 자리를 잡았고. 브라질이라는 남쪽 나라가 주는 낭만적인 이미지도 한몫했고요.”


“40년을 한국에서 살았으니까 나머지는 다른 세상에서 살아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어요. 둘 다 교사였으니 경제적으로 크게 쪼들리는 것은 없었어요. 오로지 삶의 변화를 위해 간 거였어요. 이민을 가보면 사람마다 이민 동기가 다양한데요. 브라질에 가서 사람들에게 우리 동기를 얘기하면 다들 믿지 않더라고요. 거짓말이라고.”


―두 나라에서 충분히 살아보고 나니까 느껴지는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브라질은 모든 것이 가족 중심, 부부 중심 문화예요. 하다못해 골프를 쳐도 부부끼리 치고 외식도 가족 단위, 부부 동반 외식이고요. 여기 와서 놀란 게 친구를 만나면 남자끼리만 만나더라고요.”


“또 하나는 브라질 사람들은 인사를 아주 잘해요. 그냥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한테도 인사를 건네죠. 한국에 오니까 사람들이 아예 눈을 맞추지 않더라고요.”


“반면 한국에 와서 놀란 것은 의료 혜택, 치안이 너무 좋다는 것이었어요. 브라질에 비하면 한국은 범죄가 없다고 해도 될 정도예요. 교통도 너무 좋고요. 여기서는 자동차가 필요 없겠다 싶어서 운전면허증도 갱신하지 않았어요.”


“음식을 먹는 즐거움도 한국에서는 참 커요. 브라질은 뚜렷하게 계절이 나뉘어 있지 않잖아요. 여기서는 계절마다 제철음식 찾아서 먹고 요리하는 게 참 행복해요.”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셨어요.


“가만히 돌아보니까 인스타그램이라는 걸 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서 이 나이에 책도 내고 상도 받고 주위 사람들한테 칭찬받고 이러면서 우리도 모르게 하나의 결론에 도달한 게, 정말 ‘100세 시대’라는 걸 실감하게 됐어요. 브라질에서 한국 방송을 보면서 100세 시대, 100세 시대 하는데도 그게 우리하고는 상관없는 또 다른 세대의 100살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와서 보니까 우리도 잘못하면 100살을 살 것 같아요.”


―‘잘못하면?’(웃음) 살면 좋죠.


“100살까지 우두커니 있으면 뭐 해요.”


―무슨 말씀이신지요.


“저는 계속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60, 70대라 해도 일을 하고 수입이 있다면 우리의 삶은 좀더 자신감에 차 있을 거예요. 매주 등산에 간다면 사진가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여행 안내자나 유적 해설사도 될 수 있겠지요. 새 직업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어요.”


안경자 할머니는 브라질에서 주말 한국학교 교장, 국제학교 문학교사로 있으면서 한인회보 편집장까지 맡아 기사, 평론 등을 썼다. 재외동포 문학상에 단편소설로 응모해 가작으로 당선된 적도 있다. 귀국해서는 지난해 11월, 부천시 시민기자가 됐다. 국제판타스틱 영화제, 국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국제 만화제 등이 열리고, 유네스코 창의(문학)도시이기도 한 부천의 문화적 역량을 널리 알리고 싶었단다.


―앞으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또 다른 행보가 있으세요?


“기회가 있으면 강연 같은 것을 하면서 노인들도 움직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젊은이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그런 메시지들을 알려주고 싶어요.”


“우리가 노인들이 새로운 문화를 배우게끔 응원해주는 하나의 사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조만간 독도에도 다녀오실 예정이라고요.


“경상북도 독도 정책관실, 독도재단에서 초청했어요. 8월에 다녀올 계획입니다. 이번에는 손자들까지 다 데리고 다녀올 거예요.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육이 되겠죠. 다녀오면 독도 그림을 그려 인스타그램에 또 올려야지요.”


“저는 개인적인 바람도 있어요. 남편의 앨범을 준비하고 싶어요.”

한겨레

50년간 함께 산 비결은


―앨범요?


“제가 그림 재주보다도 노래 재주가 더 많아요. 원래 가수가 꿈이었어요.”


이찬재 할아버지는 아주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고 춤추는 재주가 있어서 잔치에 불려가서 노래 부르고 어르신에게 용돈을 받는 일이 익숙했다고 했다. 대학 신입생 환영회 때 노래를 불렀는데 출연 가수로 오해받기도 했다. 학교 행사마다 사회를 보고 악단도 섭외해 ‘딴따라’로 불렸다.


“전혀 지적인 타입이 아니었어요. 사범대엔 여학생이 많았는데 다들 나를 가까이하는 걸 꺼렸어요.”


“저도 1, 2학년 때는 멀리서 보고 아주 껄렁해 보여서 나랑은 인연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3학년 때 시화전을 계기로 이 사람을 제대로 알게 돼 노래에도 반하고 그렇게 결혼도 하게 되었죠. 그런데 지금 남편이 얼마 전부터 노래를 잘 못 하더라고요. 음정이 자꾸 안 맞아요. 제 생각에는 청력 때문인 것 같아요. 보청기를 끼고 있지만 한쪽 귀는 거의 들리지 않거든요. 보니까 어느 순간 티브이도 바둑이나 골프, 당구처럼 볼륨이 필요 없는 방송들을 소리 없이 봐요. 그게 너무 슬퍼. 그래서 요즘에는 계속 노래 연습을 시키고 있어요. 그래서 몇 곡이라도 남편이 애창하는 노래들을 시디(CD)에 담아서, 손자들이 ‘할아버지가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노래를 잘하시네’ 하고 생각할 수 있게끔 하고 싶어요. 그런 목표가 생겼어요.”


―참 사이좋게, 예쁘게, 함께 늙어간다는 느낌이 드는 두 분이세요. 그 비결이 궁금합니다.


“특별한 비결은 없습니다. 50년 함께 살아오며 있었던 아픈 기억, 슬픈 기억들은 잊혔고, 자라는 손자들을 보는 일이 행복하니까 부부간 대화도 풍부해지더라고요. 갖은 풍상을 함께 겪어온 역전의 동지요, 전우이기도 하고요. 나이가 드니 이제는 서로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게 자유로워진 거 같아요.”


한국에 온 이후로 일이 있을 때마다 매니저처럼 늘 함께하는 딸 미루씨가 가만히 이찬재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빠, 지금 인터뷰해주시는 분 사실 아주 유명한 가수셔.” 나는 당황하여 손사래를 치면서 “아뇨, 전혀 유명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그래?” 하며 갑자기 벌떡 일어서더니 나에게 “선배님!”이라고 외치며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했다. 우리는 아주 크게 한참을 웃었다. 두 분의 에세이집 <돌아보니 삶은 아름다웠더라>에 서명을 받으며 물어보았다.


―갈라파고스에서 보셨다는 푸른발부비새를 그린 그림이 기억에 오래 남아요. 건강할수록 더 선명하다는 그 푸른발을 수컷은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쓴다고요. 손자들에게 ‘각자의 선명한 색을 가진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쓰신 마지막 문장을 저도 오래오래 명심할게요. 두 분은 각자 가장 좋아하시는 선명한 색깔이 있으세요?


“저는 모든 색을 다 좋아해요. 싫은 색이 없는데….”


―그림들을 보면 유난히 푸른색이 많기는 하더라고요.


“그러면 푸른색 합시다.(웃음)”


“저는 키가 작고 에너지가 넘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는 반짝반짝 살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노인이 됐지만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다고 느껴요.”


―그러면 늘 바르시는 립스틱 색깔로 할까요? 열정이 가득한 붉은색요.


“좋아요.”


이왕 ‘선배님’ 소리 들은 거, 진짜 선배처럼 나는 두 분의 색깔을 마음대로 정해줘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또 크게 웃었다.


녹취 원영은

한겨레

▶요조: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쓴다. 그리고 책방 주인이다. 제주 서귀포 성산리에 나의 책방, 책방 무사가 있다.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와 네이버 오디오클립 ‘세상에 이런 책이’를 진행한다. <오늘도, 무사>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 등 몇권의 책을 썼다. 더 좋은 책을 쓰고 싶다. 오은과 함께 번갈아 누군가의 ‘요즘은’ 어떤지 물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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