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세요 ‘씨돌·요한·용현’…방송 공개 뒤 응원·후원 잇따라
‘이 시대 의인’ 건강한 삶을 위해
1004원부터 1만원, 5만원…수천명 십시일반
최근 치료 위해 대형병원에 입원
불편한 왼손으로 깊은 감사편지
“향기로우신 여러분들 덕분에
일어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김씨돌 드림”
현대사 고비·도움 필요한 곳마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나섰지만
고문·폭행 후유증 탓 뇌출혈 투병
“향기로우신 여러분들 덕분에 일어날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왼손으로 삐뚤빼뚤 써 내려간 24개의 글자. 짧은 문장이지만 담긴 마음은 깊다.
힘겹게 이 글을 써 내려간 이는 <에스비에스 스페셜>(6월9일·16일)에서 소개된 ‘씨돌, 요한, 용현’(이하 ‘씨돌 선생’)의 주인공. 군에서 의문사한 젊은 군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한국 민주화를 위해, 참사에서 희생당한 이들을 돕기 위해 기꺼이 젊음을 바쳤던 사람. 자연과 이웃의 소중함을 깨닫고 ‘자연인’을 실천했던 사람. 용현, 요한, 씨돌 세 이름으로 불리며 ‘시대의 숨은 의인’으로 살아간 사람. 그의 삶이 시청자들에게 준 울림이 큰 만큼, 가난하고 외롭게 투병하고 있는 씨돌 선생의 현재 모습은 아픔이 컸다. 방송이 나간 뒤 그 사연이 퍼지면서 (<한겨레> 6월19일치 20면) 많은 사람이 그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냈다.
방송을 연출한 이큰별 피디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많은 이들로부터 편지가 왔는데 씨돌 선생은 모두에게 답장을 해주고 싶어 하셨다”며 “하지만 불편한 몸으로 일일이 답장하는 건 무리여서 마음 담은 글을 복사해서라도 보내고 싶다며 저 글을 쓰셨다”고 설명했다.
고맙고 미안한 마음은 응원 편지뿐 아니라 후원으로도 이어졌다. 적게는 ‘1004원’부터 많게는 100만원까지 수천명이 참여해 짧은 시간에 많은 금액이 모였다. 강원도 정선의 봉화치 마을에서 살던 씨돌 선생은 몇년 전 밭에서 일하다 뇌출혈로 갑자기 쓰러졌다. 젊은 시절 고문·폭행을 당한 후유증으로 몇년째 온몸이 아팠던 터였다. 보호자가 없어 수술도 빨리 받지 못했고, 돈이 없어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큰별 피디는 “씨돌 선생께 안 좋은 일이 생길까 정확한 금액을 밝힐 수는 없지만 많은 분의 정성이 모였다”며 “이 금액은 철저히 재활과 치료를 위해서만 사용된다”고 밝혔다.
많은 이들의 정성으로, 씨돌 선생은 지난 5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 입원했다. 정밀검사를 한 뒤 치료를 시작할 예정이다. 이 피디는 “마비된 오른쪽 부분이 안으로 말려들어가고 있어서 이를 방지하는 약물치료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활 치료를 무료로 해주겠다는 곳부터, 평생 돌보겠다는 요양원까지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고 한다. 이 피디는 “그의 인생을 담은 영화도 얘기가 오가고 있고, 추석 때는 <에스비에스 스페셜> 1·2회를 압축해 70분 특집으로 내보낼 예정이다”고 말했다.
<에스비에스 스페셜> 방송 이후 출판가도 반응이 뜨겁다. 씨돌 선생은 오래전 산문시·에세이 등을 담은 책 10권 분량의 원고를 출판사(도서출판 리토피아)에 보냈다. 이 가운데 한권은 2005년 <오! 도라지꽃>이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는데 출판사는 여기에 원고 몇개를 더 보태 지난달 말 재출간했다. 다른 원고들을 묶어 <청숫잔 맑은 물에>라는 새 책도 같은 시기에 펴냈다. 리토피아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방송 이후 <오! 도라지꽃>을 찾는 문의가 많아서 다시 내게 됐다”며 “이전에 선생의 원고를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전전하다가 내 손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또 “선생을 도와 줄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더 있겠나 싶은 마음으로 책을 내게 됐다”며 “앞으로도 그의 책을 계속 내고 싶다”고 말했다.
방송이 끝난 뒤 7월 초 이큰별 피디는 휴가를 내어 당시 정선 요양원에 있던 씨돌 선생을 만나고 왔다. 많은 이들이 쓴 응원의 댓글과 기사 등을 보여줬더니 씨돌 선생은 “감사하다,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고 한다. 이 피디는 “자신만을 위해 싸우는 삭막한 세상에서 그가 행동해온 양심과 침묵해온 선행, 진심으로 일생을 살아온 참사람의 진짜 삶을 마주할 수 있었다”며 “응원을 받아 힘을 내어 좋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