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천 성폭행 의혹’ 수사 때 서초경찰서, 첫 진술기록 폐기했다
[단독]
‘김학의 사건’ 실마리 된 사건서
당시 강력계장이 없애도록 지시
수서경찰서 넘기며 자료 인계 안해
경찰 “특수수사과도 문제없다 판단”
검찰 “최초진술 빼고 재조사 의아”
6년여 만에 재수사가 진행 중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건은 2012년 말 건설업자 윤중천씨와 내연 관계였던 권아무개씨의 고소 사건 수사가 ‘출발점’이었다. 윤씨가 가져갔던 벤츠 승용차에서 권씨가 ‘김학의 동영상’이 담긴 시디를 발견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런데 당시 이 고소 사건을 수사한 서울 서초경찰서가 윤씨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한 최아무개씨와 권씨의 ‘최초 진술기록’을 폐기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19일 <한겨레> 취재 결과, 2012년 10월 윤씨의 아내 김아무개씨는 권씨를 간통 혐의로 고소했다. 이에 권씨는 지인인 최씨와 함께 윤씨를 성폭행과 공갈 등 혐의로 고소했다. 그해 12월 서초서 강력계는 권씨와 최씨를 불러 진술을 받았다. 그런데 당시 서초서 강력계장이던 ㅇ씨가 부하 직원에게 두 사람의 최초 진술기록을 없애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은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이 확보해 김학의 전 차관 사건 검찰수사단에 넘긴 당시 경찰청 수사기록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김학의 동영상’ 수사가 본격화한 2013년 3월, 권씨 등의 진술기록이 폐기된 이유를 조사했지만 별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한다.
이에 대해 경찰은 성범죄 수사의 특성상 ‘2차 피해’ 등을 우려해 여성 경찰관에게 사건을 넘기는 과정에서 진술기록이 누락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서초서 강력계장이 ‘성폭력 수사를 왜 남성이 하냐’며 서울 수서경찰서 소속 여성 경찰관에게 수사를 맡겼다. 그 과정에서 진술기록이 같이 넘어가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서초서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 상황을 살펴봤으나, 직무유기 등의 문제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폐기가 아닌 누락이라는 취지지만, 누락됐다면 서초서에 남아 있어야 할 최초 진술기록은 당시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성범죄 사건에서 피해자의 ‘최초 진술’은 매우 중요하다. 검찰 관계자는 “성폭력 사건은 최초 진술 및 이후에 그 진술이 일관되게 유지되는지가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최초 진술을 빼먹은 채 다른 수사관이 처음부터 다시 조사했다는 것이 의아하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최소한 수사가 부실하게 진행됐다고 볼 수 있다”고 짚었다.
검찰수사단은 18일 대통령기록관과 경찰청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서초서도 함께 압수수색했다. 수사단 관계자는 “최초 진술과 이후 진술이 달라졌다면 적잖은 의미가 있지만, 최초 진술기록이 사라졌다면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수사단은 청와대의 경찰 수사 방해 등 직권남용 혐의와 함께 진술기록 폐기 의혹도 살펴볼 방침이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