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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공간을 인기 명소로… 부동산 업사이클링의 마법

유통업계, 유휴 공장·창고를 복합공간으로

지난달 개장한 ‘동춘175’ 주말엔 1만명 방문

“오랜 불황 여파도 원인”…아픈 ‘속사정’도

유령공간을 인기 명소로… 부동산 업사

그래픽_장은영

환경보호 차원의 ‘재활용’이 유통가의 화두가 된 가운데, 최근 유통업계에선 폐 건물 재활용 바람까지 불고 있다. 애초 용도가 사라져 더이상 쓰지 않는 폐 건물이 재활용 대상 1순위다. 놀리는 건물이나 공간을 재활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이른바 ‘부동산 업사이클링’(업그레이드+리사이클링)인데, 이면에는 산업 구조조정과 불황이 숨어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령공간을 인기 명소로… 부동산 업사

경기 용인에 위치한 ‘동춘175’. 세정 제공

남성복 브랜드 인디안으로 알려진 중견 의류기업 세정은 지난 달 7일 경기도 용인시에 일종의 복합 쇼핑몰인 ‘동춘175’를 열었다. 건물 위치가 ‘동백죽전대로 175번 길’에 있어서 이름에 175를 붙였다. 이 자리는 1974년부터 세정이 1호 물류센터로 운영하던 곳이었다. 회사 입장에선 의미가 있는 곳이었지만, 신 물류센터가 만들어진 뒤 용도가 ‘애매한’ 공간이 됐다. 회사는 쓸모없어진 건물을 허물지 않고, 공간 재생과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고려해 구조를 변경했다.


복합 쇼핑몰의 특성상 식사와 쇼핑을 동시에 할 수 있어서 인근 아파트 단지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다. “평일 5천명, 주말 1만명이 다녀간다”는 게 회사 관계자 설명이다. 버려진 곳을 재활용한 것 치고는 쏠쏠한 성과인 셈이다.


한국암웨이의 ‘암웨이 플라자 전주점’은 기존 물류센터로 쓰던 곳을 업사이클링해, 쇼핑부터 각종 브랜드 체험 및 비즈니스가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단장한 곳이다. 역시 버려진 창고를 잘 활용한 경우다.


서울 성수동의 대림창고와 문래동의 대선제분 밀가루공장도 대표적 사례다. 버려진 공간이었지만, 업사이클링 뒤 고급 외제 승용차 출시 기념회와 패션쇼 등이 정기적으로 열리는 꽤 유명한 장소가 됐다. 2014년 부산 비엔날레 전시장으로 쓰인 부산의 ‘F1963’은 고려제강이 1963년부터 2008년까지 45년간 와이어 로프를 생산하던 공장이었다. 고려제강은 공장 노후화로 문을 닫는 대신 전시 및 공연이 이뤄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기존 부동산을 재활용하는 게 인기를 끌자, 버려진 부동산을 별도로 임대하거나 매입해 재활용하는 경우도 생겼다. 그만큼 업사이클링 전략이 대중들의 이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아모레퍼시픽 자회사인 이니스프리는 지난해 서울 삼청동에 한옥 두 채를 연결한 ‘공병공간’을 만들었다. 이 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자사의 화장품 공병 23개를 분쇄해 자재로 사용했다.

유령공간을 인기 명소로… 부동산 업사

서울 계동의 젠틀몬스터 ‘배스하우스’. 젠틀몬스터 제공

루이뷔통 등을 거느린 세계적인 패션·뷰티 그룹 엘브이엠에이치(LVMH)에서 600억원을 투자받아 화제가 된 국내 선글라스 업체인 젠틀몬스터도 2015년 서울 계동의 폐업한 목욕탕에 ‘배스하우스’라는 매장을 열어 화제가 됐다. 1969년 문을 열어 2014년까지 영업한 이 목욕탕은 한동안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욕탕’으로 자주 언급되던 곳이었다. 공병공간과 더불어 서울 북촌 일대 관광명소가 됐다.


기업들의 공간 재활용은 환경 보호를 내세우는 윤리적 마케팅 측면도 있지만, 불황이 지속되자 과거 호황기 때 마련한 부동산이 쓸모가 없어진 ‘아픈 속사정’도 있다. 생산 공장이 국외로 이전하는 등 산업 구조조정이 진행됐고, 물류량이 줄어들면서 폐공장과 폐창고가 많이 생긴 것이다.


한 의류업계 관계자는 “국내 생산이 점점 줄어들고 불황이 지속되는 상황이라 노는 부동산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기업 입장에선 애물단지가 될 수도 있다. 적극적으로 부동산 재활용에 나서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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