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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엄마아빠 좀 말려줘요”

세계 여러 나라 거치며 독특한 감성 키운 강설아,

난민 1세 부모와 세대차도 경험해

“울 엄마아빠 좀 말려줘요”

제1264호 <한겨레21> 표지.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파로크 불사라’.

1946년 아프리카 탄자니아령 잔지바르섬에서 태어난 프레디 머큐리의 본명. 전설적인 록그룹 ‘퀸’의 보컬 프레디는 인도반도 서쪽 뭄바이를 중심으로 7만 명이 모여 사는 ‘파르시족’의 후예다. 파르시족은 사산조페르시아가 이슬람권에 멸망하면서 인도로 피란한 이란인의 후손이다. 다수가 조로아스터교를 믿는다. 8살에 뭄바이로 유학을 떠난 프레디는 18살 때까지 인도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태어난 곳인 잔지바르로 1963년 돌아갔지만 종족 간 학살을 피해 이듬해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망명했다.

‘히토이시 차크마’.

2000년 방글라데시에서 태어난 줌머족 한국인 강설아(17)의 본명. 설아가 3살 되던 해에 이산가족이 됐다. 아빠는 한국으로, 엄마와 설아는 인도반도 동쪽 접경인 콜카타로 향했다. 방글라데시에서 교사였던 아빠는 경기도 김포에 있는 공장에서 일해 번 돈을 매달 인도로 보냈다. 설아와 엄마는 그 돈으로 생활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아빠가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아 엄마는 한국으로 갔다. 설아는 고등학교까지 인도에서 마칠 계획이었지만 중학교 1학년 때 부모님과 함께 살기 위해 한국으로 왔다.

한국어, 힌디어까지 5개 언어 구사

“울 엄마아빠 좀 말려줘요”

프레디 머큐리, 퀸의 제왕(한국방송1 일 밤 11시20분) / 퀸의 록, 안방에서 ‘싱얼롱’ 해볼까

‘난민 2세’ ‘인도에서 보낸 유년시절’ ‘예술가가 되겠다는 꿈’.


프레디와 설아의 세 가지 공통점이다. 설아의 꿈은 세계적인 힙합 안무가가 되는 것이다. 한국에 온 지 4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한국어로 완벽하게 소통하고 영어와 방글라데시어, 차크마어, 힌디어까지 다섯 개 언어를 할 수 있는 설아는 재학 중인 양곡고에서도 인기 스타다. 성격이 밝아서 어떤 친구와도 금세 친해졌다. 언어 습득 능력이 뛰어난 설아는 인도에서도 현지 언어에 바로 익숙해졌고 친구들을 금방 사귀었다.


설아는 처음 만나는 친구들에게도 자신이 ‘난민 2세’임을 알리고, 줌머족에 대해 설명한다. 당당하게 자신과 가족의 역사를 말하는 설아를 무시하는 친구는 없었다.


“난 성격이 너무 밝은 편이고, 친구도 많다. 그런데 좀 눈치가 없다고 친구들이 놀린다. 뒷북이 심하다고….”


‘난민 2세’ 하면 위축돼 우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설아는 한국 청소년들과 마찬가지로 당차고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난민 2세 아동·청소년의 자아존중감이 한국 아동·청소년보다 낮지 않다는 것은 연구 결과로도 확인됐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국내 난민 아동 174명을 조사해 2018년 발간한 ‘국내 난민아동 한국사회 적응 실태조사’(이하 난민 아동 조사)를 보면, 국내 난민 아동·청소년의 자아존중감(4점 만점 중 3.16)이 2013년 아동 종합 실태조사에서 파악한 한국 아동·청소년의 자아존중감(2.95)보다 높았다. 국내 난민 아동 연구를 수행한 윤수경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아동복지연구원은 “난민 아동들은 부모와 떨어져서 힘든 시간을 보내거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평범하게 자란 아동들보다 강한 회복성을 가질 수 있다. 현재 삶이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님을 일찍 깨닫기 때문에 자아존중감이 높게 나온 것으로 분석된다”고 했다.


설아는 집이 있는 김포 대곶면에서 서울 시내에 있는 댄스학원까지 1시간30분이 훌쩍 넘는 거리를 일주일에 두세 번씩 오가며 안무가의 꿈을 키우고 있다. 학교 수업이 끝난 뒤 학원을 다녀오면 자정을 훌쩍 넘는다. 올해 고등학교 3학년이 된 설아는 본격적으로 대입 실기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설아는 가족이 함께 보낼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것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보통 아침 7시30분에 일어나는데 눈뜨면 아빠는 회사에 가고 없다. 엄마도 내가 일어날 때쯤 일하러 가신다. 저녁 8시 넘어 퇴근하는 부모님은 내가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가면 주무시고 계신다.”


난민 아동 조사에서도 난민 아동·청소년이 부모와 소통하는 시간이 한국인이나 다문화 가정보다 낮았다. 설아 아빠처럼 본국에서 교사 등 좋은 직업을 가졌더라도 한국으로 망명하면 단순노무 직종으로 바뀌고, 더 오랜 시간 일해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족 정체성을 지키려는 부모와 갈등

“울 엄마아빠 좀 말려줘요”

줌머 난민2세 강설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이렇게 가족과 얼굴을 맞대고 소통할 기회가 적어지면서 설아와 부모의 생각에도 조금씩 간극이 커지고 있다. 난민 1세대인 부모는 일반적인 이주민과 달리 자신들이 조국의 박해를 피해 망명했기 때문에 정체성을 지키고 본국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부모의 이런 바람에도 박해를 겪은 적 없는 2세들은 부모의 경험을 온전히 공감하기 어렵다. 설아도 그랬다. “‘우리가 지금 안전하게 잘 살지만 이 시간에도 조국에선 학교도 다닐 수 없고 힘들게 살아가는 동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아빠가 말한다. 그런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지칠 때도 있다.”


난민 부모와 난민 2세가 한국에서 겪는 차별의 경험에도 온도차가 크다. “한국인으로 국적을 바꾸면 나를 대하는 한국인들의 태도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조금도 바뀌지 않았어. 한국 사람들을 조심해야 해.” 아빠는 지금도 한국인으로부터 차별받는다고 토로하지만,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설아는 아빠가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고 생각한다. 난민 아동 조사에서 난민 부모는 114명 중 59명(51.8%)이 “사회적 차별을 경험했다”고 했지만, 난민 아동·청소년은 73명 중 20명(27.4%)만이 차별받았다고 답했다.


“설아는 차크마 사람(줌머인)과 결혼할 거지?” 아빠는 설아에게 이렇게 종종 묻는다. 결혼관에서도 아빠와 설아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한국에 있는 줌머인들은 민족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암묵적으로 족내혼을 원칙으로 해왔다. 한국에 사는 줌머족 성인 100여 명 중 한국인과 결혼한 사람은 한 명뿐이다.


이런 원칙에 얽매이지 않는 설아가 “한국에는 내 또래 젊은 줌머인이 없잖아. 그냥 인도든 한국이든 국적과 상관없이 나랑 잘 맞는 남자와 만나서 연애하고 결혼할 거야”라고 이야기하면 부녀간 신경전이 시작된다. “내가 소개해주면 되지”라고 아빠가 맞서지만 설아는 여전히 못마땅하다.


“먼저 한국에 와서 난민 인정을 받고 방글라데시 치타공으로 나가 결혼하고 배우자를 가족결합식으로 데려오는 걸 주변에서 봤는데, 나는 그렇게 결혼하기는 정말 싫어. 영상통화로 몇 번 대화하고 결혼을 결심하는 일은 아닌 거 같아.” 설아가 지지 않고 되받아치면 이 상황을 지켜보던 엄마가 거든다. “너는 한국 드라마도 안 보니? 다문화 가족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 보면 매일 시어머니한테 구박받잖아. 한국 시집살이는 정말 고되다고.” 결혼 이야기가 나오면 설아 가족은 격론에 휩싸이지만 아직은 ‘먼 일’이다.

격론에 휩싸이곤 하는 ‘결혼 이야기’

그들에게 당장 닥친 급한 불은 설아의 대학 진학이다. 설아가 포부를 내보였다. “실용무용을 전공할 수 있다면 어느 대학이라도 꼭 가고 싶다. 대학에 가면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통역 아르바이트도 하고, 돈을 모아 미국에 가서 더 큰 무대에 오르고 세계적인 안무가가 되겠다.” 설아의 부모님도 <한겨레21> 인터뷰에서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유명하지만 설아가 방글라데시와 인도를 거치면서 얻은 고유한 감성으로 더 창의적인 무용가가 될 수 있다”고 기대감을 품었다.


지난해 말,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이자 ‘난민 2세’인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열광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극렬하게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언어를 쏟아내고 예멘 내전을 피해 한국으로 온 난민 500명을 내쫓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985년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 ‘라이브 에이드’ 공연이 에티오피아 ‘난민’을 돕기 위해 기획됐고, 그 공연에서 천재적인 보컬 실력을 뽐낸 머큐리가 난민 2세였다는 사실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이런 한국 사회에서 우리의 일부로 사는 난민 2세 설아는 앞으로 차별 없이 자신의 꿈을 계속 키워나갈 수 있을까?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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