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조 “계속 하자고 다짐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이야”
[한겨레] [토요판] 오은·요조의 요즘은
오은이 본 가수 요조
책은 나에게 제일 소중한 ‘수단’
더 나은 사람 되자 생각하게 해
움켜잡은 것 놓고 싶을 때 많지만
마무리 때 기쁨 느끼고 싶어 버텨
왜 나는 한가지를 진득하게 못 할까
다른 사람 칭찬도 비아냥으로 들어
이제는 스스로에게 조금 관대해져
가장 나다울 때는 무대 위에 있을 때
편집자주: ‘요즘은’은 <한겨레> 토요판의 새 인터뷰 코너다. 격주에 한번 실리며, 가수 요조(37)와 시인 오은(36)이 번갈아 진행할 예정이다. 그 첫번째 순서로 요조와 오은이 서로를 독자에게 소개하는 인터뷰를 싣는다. 여러 활동을 통해 서로를 알고 있던 사이라 인터뷰는 편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인터뷰는 지난 1일 한겨레신문사에서 했다.
“두분이 안 지 얼마나 됐어요?” 기자의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했다. “글쎄요… 한 10년?” 요조와 함께 있었던 자리들이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서점, 녹음 스튜디오, 카페, 식당, 길거리… 매일 가는 곳에 그가 있었고 이따금 찾는 곳에도 그는 있었다. 도처에 요조가 있었다.
요조라는 이름을 짓게 만들어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이야기할 때도, 상대의 시시껄렁한 농담에도 그는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요조는 늘 빤히 쳐다본다. 어떤 것을 캐묻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니다. 궁금한 사람이 앞에 있으면 그의 큰 눈은 호기심으로 더욱 커다래진다.
요조는 늘 궁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만있을 때조차 마음은 움직이는 법이니까, 그 마음이 자기 자신을 다른 데로 이동하게 만드니까. 가수였던 그가 서점을 열고 책을 내고 팟캐스트를 시작하고 영화를 만들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저 요조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은 저것이구나, 저 일을 위해 오랫동안 몸과 마음을 쏟았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요조를 만날 때면 기분이 좋아졌다. 꿈꾸는 사람을 보는 것은 분명 두근거리는 일이다.
이제는 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 요조를 만났다. 책 귀퉁이를 접어 개의 귀(dog’s ear)를 만들듯, 접히는 순간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책을 쓰기도 하고 오디오클립을 통해 책을 읽어주기도 하고 실제로 책을 판매하기도 하잖아. 때때로 특정인에게 걸맞은 책을 추천해주기도 하고. 책에 관련된 많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요조에게 책이란?
“나의 제일 소중한 수단이라고 생각해.”
―수단? 의왼데? 수단이라는 단어에는 목적이 개입되어 있잖아.
“수단이라는 말을 하나로 규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돈 벌게 해주는 수단이기도 하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수단이기도 하거든. 더 좋은 곡과 글을 쓰고 싶을 때, 창작자로서 욕심이 생길 때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것이기도 하고.”
요조는 2015년 10월 서울 북촌에 책방 무사(無事)를 열었다. 요조의 눈에 들고 가슴에 빗금을 긋고 지나간 책들이 한아름이다. 달력 대신 일력을 쓰고 여기저기서 받은 종이가방과 천가방을 재활용해 책을 담아준다. 지난해 11월 제주도로 책방의 터를 옮기고 책을 곁에 두는 삶, 책과 함께하는 삶을 지속해나가고 있다.
2016년 6월부터는 작가 장강명씨와 함께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를 진행하고 있다. 출연자의 말을 귀담아듣는 성실함과 특유의 공감 능력이 출연자와 청취자를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지난 4월부터는 네이버 오디오클립 ‘세상에 이런 책이’를 시작했다. “인기는 없고 재미는 있는, 불운의 책”을 소개하는 것이 목표다.
―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재빨리 한권을 집어 들고 계산대로 가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돼. 그럴 때마다 나는 무사를 비롯한 독립서점들이 생각나. 신중하게 책들을 둘러보고 내 마음에 드는 한권의 책을 고르는 장면과 더불어.
“책방을 운영하고 난 뒤로 나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해. 책을 고르는 근육이 충분히 단련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거든. 사진만 찍고 황급히 자리를 뜨는 사람도 있어. 책 때문에 오는 곳이 되어야 하는데 안타까워. 책이 지닌 힘과 독서의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은데, 늘 아쉬워.”
―책을 추천하는 일은 조심스럽지 않아? 나에게 좋은 책이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그런 책으로 다가갈 수도 있잖아.
“맞아, 간단한 문제가 아니지. 부담이 돼. 오히려 잘못 추천해줬다가 그 사람이 책과 더 멀어질 수도 있는 거니까. 그래서 책 추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라치면 요리조리 피하기도 해.(웃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요청이 몇개 있었어. 페미니즘과 관련된 최대한 어려운 책을 보내달라는 분께는 주디스 버틀러의 책을 보내드렸지. 뜬금없이 4월에 관련된 책을 보내달라는 분도 있었어. 나랑 이름이 비슷한 분에게는 내 책을 보내게 되더라. 어쩔 수 없이 내가 떠오르는 거지.”(웃음)
쉬운 책이 있고 어려운 책이 있다. 쉽게 읽힌다고 생각했는데, 다 읽고 나니 묵직한 것이 남기도 한다. 어려운 책인데 끝까지 읽게 만드는 책도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책과 관련된 여러 일 중에 할 때 가장 기분 좋은 것과 힘든데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게 있다면?
“나는 다 그래. 모든 일이 양면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읽는 거든 쓰는 거든 마찬가지야. 그게 반복되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 힘든데, 싫은 감정들이 나를 옥죄는데, 그래도 어찌어찌하다 보면 끝에 와 있는 거야. 막막함과 잘해야 한다는 강박이 견디기 힘들지만 마무리가 되었을 때 찾아오는 기쁨이 어마어마하게 큰 거야. 그 커다란 감정을 다음에 또 느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기고. 움켜잡은 걸 어느 순간 놓아버리고 싶을 때도 많지만, 계속해서 하고 있는 거지. 책방 운영도 마찬가지고.”
―서울에서, 제주도에서 꾸준히 책방을 운영하는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알다시피 책방 운영이 쉽지만은 않아. 글 쓰는 것처럼 좋은 기분과 안 좋은 기분이 동시에 찾아오곤 하지. 책방 운영을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계속하고 싶다고 다짐하게 만드는 것도 사람들이야. 책방을 찾아주는 사람들은 소소하고 자잘하지만 하루를 충만하게 만들어줘. 시트콤 같은 재미와 즐거움이랄까. 그들이 계속 찾아와주는 것이 책방을 운영하게 하는 결정적인 동력이고.”
요조라는 이름은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름(오바 요조)을 따서 지은 것이다. 소설 속 요조는 ‘다른 인간들’을 이해할 수 없어 좌절하지만, 실제 요조는 ‘다른 인간들’을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손을 내민다.
―주로 책방 무사가 있는 제주도에 머무르잖아. 그런데 행사 때문에 서울 올 일은 많고. 힘들지 않아?
“그래서 체력 관리에 집중해. 음식 먹는 것에도 신경을 쓰게 되었지. 최대한 양질의 음식을 먹는 게 중요해. 틈나는 대로 운동도 하려고 해. 이동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이 많으니까 그 시간을 활용해서 이런저런 일을 하지. 비행기에서,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덧붙여 정체성 이야기를 해볼까 해. 요조가 요즘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많잖아. 책방 주인, 뮤지션, 팟캐스트 진행자, 영화감독, 그리고 오늘부터는 인터뷰어!(웃음) 역할이 많아지면 피로해지기 십상이잖아.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을 거고. 역할이 늘어날수록 반대로 나 자신은 희미해지는 것 같지 않아? 말하고 보니 이 질문은 내게 던지는 것이기도 하네.
“그런 생각을 정말 많이 했었어. 예전에는 나 자신에 대한 검열이 심했었거든. 나는 스스로에게 관대한 사람이 아니었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면 재능이 많은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야.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내가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게 아닐까? 왜 한가지 일을 진득하게 하지 못하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나를 괴롭혔던 거지. 누가 ‘요조씨는 재능이 많아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같은 말을 하면 기분이 좋지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들렸던 거야. 자격지심이었지. 그런 시절을 거친 뒤 이제야 겨우 나라는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어. 지금도 한가지 일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외감이 느껴져. 사람마다 멋있다고 느끼는 기준이 다르잖아. 내 기준에서는 한 우물을 파는 사람, 단 한가지에 집중하는 사람이 그렇게 대단하고 멋있을 수가 없어.”
―가장 나답다고 느낄 때는 언제야?
“내가 가장 나다울 때는 무대 위에 있을 때, 노래할 때인 것 같아. 무대에서는 나 자신을 의심하지 않거든. 내가 나를 괴롭히지 않는 거지. 글을 쓰고 나면 종종 자책하게 돼. 왜 이렇게밖에 못 썼을까 하면서. 이상하게 무대에서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아. ‘오늘 좀 잘했네’나 ‘그 부분이 조금 아쉬웠네’ 정도거든.”
요조는 2004년 허밍 어반 스테레오의 객원 보컬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가이드 보컬 녹음을 한 ‘샐러드 기념일’과 ‘바나나 셰이크’(Banana Shake)가 요조의 목소리 그대로 발매된 것이다. 2007년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와 함께한 <마이 네임 이즈 요조>(My Name is Yozoh)라는 앨범을 통해 정식 데뷔한 그는 거의 매해 꾸준히 음원을 선보이고 있다. 2017년 영화 <나는 아직도 당신이 궁금하여 자다가도 일어납니다>를 연출했고, 이 영화는 동명의 앨범으로도 발매됐다. 가이드 보컬로 시작해 싱어송라이터를 거쳐 요조는 이제 듣는 영화, 보는 음악을 꿈꾸고 있다. 요조는 6개월 동안 매일 쓴 책일기를 묶은 <눈이 아닌 것으로도 읽은 기분>(난다), 책방을 하며 겪은 일상을 기록한 <오늘도, 무사>(북노마드) 등의 책을 펴내기도 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
“되고 싶은 사람은 있어. 유머가 있는 사람. 삶에서 유머가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점점 절실해지는 것 같아. 위기의 순간이 찾아왔을 때, 유머는 그 순간을 넘길 수 있는 힘이 되어주잖아. 유머가 있으면 모든 걸 더 잘 즐길 수 있을 것 같아.”
―즐긴다는 말에서 힌트를 얻었어. 유머는 여유가 있을 때 나오는 것 같아. 그러니 스스로를 좀 풀어주고 놓아주는 태도가 필요하지 않을까?
“맞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도 있고 상대적으로 좀 한가한 날도 있잖아. 하다못해 여유가 있는 날에는 책방에서의 태도도 많이 달라져. 책방을 찾은 손님이 무례하게 굴어도 바로 화내지 않게 되더라고. 슬기롭게, 얼굴 붉히지 않으면서 내가 생각하는 상대방의 잘못을 전달하게 되지. 반면, 여유가 없는 날에는 상대방의 작은 무례에도 내가 너무 딱딱해지는 거야. 덩달아 책방 분위기도 나빠지고.”
―시간이 나면 하는 일, 그리고 시간을 내서 하는 일이 있다면?
“시간이 났을 때 하는 일은 여행인 듯해. 하루면 하루치 여행을 계획하고 한나절이 생기면 종로에 가서 영화를 봐. 시간을 일부러라도 내서 하는 건… 책 읽는 거.”
―앞으로 ‘요즘은’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날 텐데 특별히 더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오랫동안 활동했던 예술가들. 그분들이 그 긴 시간 동안 어떤 고뇌를 하며 작업을 해왔는지 듣고 싶어. 그리고 또 하나, 페미니스트들!”
문득 그의 영화 <나는 아직도 당신이 궁금하여 자다가도 일어납니다>가 떠올랐다. 동명 앨범에는 ‘늙음’이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오오오 싫어합니다 (…) 하얀 머리칼이 아니라 머릿속 하얌이요.” 아직도 당신이 있어서 다행이다. 사방에 당신들이 많아서 다행이다.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해하는 한, 요조는 늙지 않을 것이다. 그의 머릿속은 새로운 궁리들로 매일매일 우거질 것이다.
그의 책 <오늘도, 무사>를 펼친다. 책 속에 이런 구절이 있다. “무사를 찾는 손님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그런 바람으로 책방 무사는 오늘도 오늘만큼의 시간을 머금고 변화하며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내가 아는 한, 요조도 그렇다. 오은
▶오은: 시를 쓴다. 이따금 쓰지만 항상 쓴다고 생각한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하는 삶 대신 못하는 것을 채우는 삶을 살기 위해 애쓴다. 딴청을 부리고 딴생각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 ‘딴’에서 새로운 것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항상 살지만 이따금 살아 있다고 느낀다.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유에서 유> 등을 냈다. 가수 요조와 번갈아 누군가의 ‘요즘은’ 어떤지 물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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