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로 에베레스트서 숨진 산악인들 주검 돌아오다
빙하 녹아내려 등산로서 주검 수습
100년 동안 200여명 숨진 채 묻혀
캠프4서만 최근 4년간 10구 발견돼
수습 비용 많이 들고 작업 어려워
“가족·본인이 수습 원치 않을지도”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으면서 에베레스트산 정상 부근에서 등반 도중 숨져 얼음에 묻혔던 주검들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BBC 제공 |
기후변화로 에베레스트산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그동안 눈과 얼음에 묻혀 있던 산악인 주검들이 드러나 수습되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
네팔산악회 전 회장인 앙 세링 셰르파는 25일 <비비시>(BBC)와 인터뷰에서 “지구 온난화 때문에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아내려 묻혀 있던 주검들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에 숨진 몇몇 산악인들의 주검을 운반해왔는데 이제는 좀더 오래 전에 묻힌 주검들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에베레스트산 정상 인근에서는 1922년 첫번째 등정이 시도된 이래 300명 가까운 산악인이 숨졌으며 이 가운데 200여명의 주검은 아직까지 눈과 얼음에 묻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산은 1953년 에드먼드 힐러리와 텐징 노르가이가 최초로 정상을 밟은 이래 4800명 이상의 산악인이 정상에 올랐다.
네팔탐험가협회(EOAN) 사무국은 주검들을 에베레스트산(8848m)과 로체산(8516m) 정상 캠프에서 로프로 옮겨오고 있지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밝혔다. 최근 4년 동안 정상 인근 캠프4(사우스 콜) 부근에서만 주검 10구가 발견됐다. 2017년 몇몇 산악인 주검이 캠프1 그라운드에서 발견됐으며, 같은해 또다른 주검이 쿰부빙하(에베레스트산 서쪽)에서 발견됐다. 또 쿰부붕락(Khumbu Icefall)에서도 근래 몇 년 동안 많은 주검이 발견됐다.
최근 여러 연구팀이 히말라야산맥 대부분 지역과 마찬가지로 에베레스트산 일대의 빙하들도 빠르게 녹아내려 얇아지고 있다는 결과를 내놓고 있다. 2015년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산악인들이 정상에 오르기 위해 가로질러 가야 하는 쿰부빙하의 연못들이 해빙이 가속화함에 따라 넓어지고 서로 합쳐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올해 210명의 저자가 함께 제출한 논문에서는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 따른 기후변화 대응이 실현되더라고 2100년까지 히말라야 얼음의 3분의 1이 녹아내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에베레스트 등반 도중 숨져 얼음에 묻혔던 주검이 발견돼 수습되고 있다. BBC 제공 |
실제로 네팔군은 2016년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아내려 에베레스트산 인근의 임자호 수위가 위험 단계까지 상승하자 준설작업을 해야 했다. 영국 리즈대와 애버리스트위스대를 포함한 또다른 연구팀은 지난해 쿰부빙하를 시추한 결과 얼음의 온도가 예상보다 높다는 것을 발견했다. 얼음의 최저 온도가 영하 3.3도밖에 안 되고, 가장 차가운 얼음조차 연평균 대기 온도보다 2도 높은 정도였다.
그러나 얼음에 묻힌 주검들이 드러나는 것은 운하가 녹기 때문만이 아니라 빙하가 이동하기 때문이기도 하다고 산악인들은 지적했다. 네팔 국립산악안내협회 부회장인 세링 팬디 브호트는 “때때로 쿰부빙하의 이동 때문에 주검이 발견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에베레스트 고지대에서 발견되는 주검들은 산악인들을 위한 랜드마크(지형지물) 구실을 한다. 이런 좌표 가운데 하나가 정상 인근의 ‘그린 부츠’(Green Boots)이다. 2010년 발견된 녹색 등산화를 신고 있던 주검 때문에 붙은 등반로 이름이다.
산악인 주검은 비교적 평평한 지대인 캠프4에서 주로 발견되고 있다. BBC 제공 |
에베레스트 정상 부근에서 주검을 수습하고 옮기는 일은 비용이 많이 들고 어려운 일이다. 주검을 산 아래로 옮기는 데만 비용이 4만달러에서 8만달러가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앙 세링 셰르파는 “정상 근처인 8700m 고지에서 주검을 옮긴 사례도 있다. 주검은 완전히 얼어 있었고 150㎏이나 나가 그 높이에서 수습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또 주검 수습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일인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산악인이면서 등반작가인 앨런 아네트는 “대다수 산악인들은 사망할 경우 산에 남겨지기를 바란다. 주검이 등반로에서 옮겨져야 할 필요가 있거나 가족들이 원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주검을 이동하는 것 자체가 무례한 행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근영 선임기자 ky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