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고치는 슈퍼히어로’ 판타지가 위험한 이유
[토요판]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KBS 드라마 <영혼수선공>
정신과 치료 오랜 시간 필요한데
영웅적 헌신·능력에 환자 휙휙 호전
그 ‘농담 같은’ 드라마의 현실 왜곡
가상세계 있을 법한 스토리 전개는
고군분투하는 현실의 의사들 공격
정신과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에게
환상 부여해 실제 치료 불신 조장
드라마 <영혼수선공> 의 한 장면. 한국방송(KBS) |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다. 정신과 의사와 환자들에 대해 다룬 드라마가 있는데, 영웅적인 헌신으로 심각한 증상의 환자들을 휙휙 호전시키는 슈퍼맨 같은 의사가 주인공이라니. 정신과 진료를 받아본 적이 있거나 지인 중에 환자가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가벼운 우울증조차 길게는 수년에 이르는 상담과 약물치료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원효대사처럼 찰나의 깨달음으로 번뇌를 일순에 떨치는 일이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겠으나, 우리는 원효대사가 아니며 해골물 같은 요행을 노리며 의술을 행하는 사람을 전문 의료인이라 이르긴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대형병원 조교수로 근무하며 병원 안팎에서 슈퍼히어로로 떠오른다고? 아무리 봐도 영 농담 같은 드라마의 정체는, 힐링 드라마를 표방한 한국방송(KBS) 수목드라마 <영혼수선공>이다.
‘치료’와 ‘치유’의 대립구도
메디컬 드라마들은 자주 현실보다 더 극적인 상황을 만들어 극의 흥미 요소로 삼곤 한다. 신기에 가까운 수술 실력을 지닌 흉부외과 의사나, 환자를 척 보는 것만으로도 병명을 맞히는 천재 진단의학과 교수 같은 이들이 나오는 작품들처럼. 그리고 때론 이런 극적 과장이 낯선 질병에 대한 정보를 쉽게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영혼수선공>을 집필한 이향희 작가 또한 작품의 의의를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과 정신과 문턱을 낮추는 데 두고 있다고 밝힌 바 있으니, 그걸 고려하면 어느 정도의 과장과 비약은 눈감을 수도 있다.
진짜 문제는 이시준(신하균)처럼 병원 밖까지 환자를 찾아다니며 상담을 이어가는 괴짜 의사야말로 진심으로 환자를 위하는 유능한 의사이고, 진료실에서 약물치료와 상담치료를 병행하는 평범한 의사들은 그렇지 않은 이처럼 그려지는 지점에서 시작된다. ‘치유’를 진정한 지향점으로 삼으며 ‘치료’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영혼수선공’과 ‘먹물’이라는 대립구도를 만드는 이분법적인 구도. 물론 이런 구도는 ‘진정한 의사’라는 이상향을 그리는 걸 좋아하는 한국 메디컬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신과에 대한 세간의 이해 정도가 극히 낮은 상황에서, 힐링 드라마를 표방하면서 이런 구도를 내세우는 건 아무래도 위험하다.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실현 불가능한 기대치를 설정해주는 것이, 정신과 문턱을 낮추는 데 어떤 도움이 될까?
실제로 정신과 의사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 <뇌부자들> 팀이 드라마를 비판한 유튜브 영상에는, 드라마는 드라마로 보라며 헌신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의사를 보고 싶어하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왜 몰라주냐는 댓글들이 달렸다. 벌써부터 가상세계에 존재하는 괴짜 의사라는 판타지를 수호하기 위해, 진짜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실제 의사를 공격하는 사례가 나타난 것이다. 흥미롭게도, 같은 영상을 본 이들 중 정신과를 조금이라도 경험해봤던 이들은 드라마를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는 댓글을 달았다. 의사와 환자 모두 납득하기 어려워하는 과장된 판타지를 수호하기 위해 날 선 댓글을 남기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무얼 말할까? 이 작품이 아직 정신과를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에게 정신과에 대한 과도한 환상을 부여함으로써, 실제 현장에서 일어나는 치료 과정에 대한 잠재적 불신과 불만족을 조장하고 있다는 걸 폭로하는 건 아닐까?
산 넘어 산으로, <영혼수선공>은 이시준이 자신의 환자 한우주(정소민)와 감정을 키워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환자는 정신과 의사에게 의존적인 감정을 지니기 쉽다. 의사는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 이해해주며, 극히 내밀한 비밀조차 의사에겐 안심하고 털어놓을 수 있으니까. 의사가 해주는 말과 처방에 따라 증상이 완화되는 것도 느낄 수 있으니까. 이러한 구조적 특징상 환자가 의사에게 통상적인 범위를 넘어서는 호감과 의존성을 지니는 건 흔한 일이다. 이런 감정을 이른바 ‘전이 감정’이라고 하는데, 이와 같은 전이/역전이 감정을 악용하기 너무 쉬운 탓에 의사들은 환자와 의사의 관계가 사적인 관계로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할 윤리적 책임을 지닌다.
이런 내용이 방영되자 시청자들은 한국방송 청원 게시판에 이와 같은 내용을 수정하고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우리 사회는 이미 대구에서 활동한 정신과 의사 김현철이 이와 같은 점을 악용해 여러 건의 그루밍 성폭력을 저지른 사건을 목격한 바 있다. 그 사건을 목격하고도, ‘영웅적인 활약을 하는 진정한 의사가 여자 환자와 풋풋하게 마음을 나누며 서로 치유하는 이야기’가 드라마로 제작되는 것을 용인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치유’와 ‘치료’, ‘영혼수선공’과 ‘먹물’의 이분법을 통한 ‘진정한 의사’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위험한데, 그 설정이 전이 감정에 대한 긍정과 만나며 드라마는 걷잡을 수 없이 위험해졌다. ‘진정한 의사’에게 강한 의존성을 느낄 수밖에 없는 환자와, 그런 환자와 연애감정을 가지는 의사라니. 참고로 피해생존자에 따르면 김현철 또한 “자신만이 병을 고칠 수 있고 이전에 간 정신과는 다 처방을 잘못했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드라마의 무책임은 누가 책임지나
한국방송 측은 뭐라고 답했을까? <한국일보>의 문의에 한국방송은 이렇게 답했다. “시청자들이 지적해주시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루려 고민하고 있으며, 전개 과정을 지켜봐주시면 감사하겠다. 이는 추후 드라마 진행 내용에서 자연스럽게 이해가 될 것.”(KBS 측, ‘영혼수선공’ 신하균·정소민 관계 지적에 “최대한 고민, 전개 지켜봐달라” [공식]. 2020년 6월9일, <한국일보>, 이호연 기자) 그래서 최대한 조심한다고 한 건, 다음과 같다.
평소 이시준이 눈엣가시였던 은강병원 진료부원장 오기태(박수영)와 그 주변 사람들은, 바에서 양주를 기울이며 이시준을 징계하려는 계획을 꾸미던 중 이런 말을 꺼낸다. “아, 그리고 환자랑 사귄다면서요. 같이 징계 사유로 만들면 되지 않아요?” 너무나 당연한 문제 제기를, 음모를 꾸미는 악당들 입을 통해 발설함으로써, 드라마는 마치 그게 괜한 트집인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시준의 친구이자 라이벌인 인동혁(태인호)은 말한다. “환자랑 엮어서 징계를 내리는 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환자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야 하고요, 관점에 따라서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게 징계 사유는 아니니까요.” 악당들은 비아냥으로 답한다. “인 교수는 사람이 참 고상해.” 같은 시간, 은강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레지던트와 인턴들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근데 뭐 좀, 사귀면 어때서? 의사랑 환자랑 사귀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긴, 환자랑 결혼한 교수님도 있는데, 뭐.” ‘물론 그런 법은 없지만, 이게 문제 삼자고 하면 문제가 되는 거 아닌가?”
“징계 사유는 아니”라는 드라마 속 등장인물들의 말은 의심할 필요가 있다. 정신과 의사단체는 아니지만 한국임상심리학회 윤리규정은 의사가 환자와 다중관계나 착취관계를 가져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한우주는 이시준과 연애를 하기 위해 담당 의사를 바꾸면서 이시준과 더 이상 의사/환자 관계로는 만나지 않는 수를 두지만, 그래 봐야 윤리규정 제61조 4항에 걸린다. “심리학자는 치료 종결 후 적어도 3년 동안 자신이 치료했던 내담자/환자와 성적 친밀성을 가지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가능하면 치료 종결 3년 후에라도 자신이 치료했던 내담자/환자와 성적 친밀성을 가지지 않는다.” <영혼수선공>은 윤리적 탈선에 대한 비판은 악역들의 몫으로 돌리고, 선역들의 입을 통해 옹호한다.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뭘까?
<영혼수선공>을 선해하기 위해 “좀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한 사람들은 많다. 눈에 보이는 단점이 많았음에도 “두고 보자”는 이들이 많았던 건, 정신과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으리라. 그러나 지켜봐달라는 말만 반복했던 <영혼수선공>은 어느새 종영을 일주일 남겨놓은 상태고, 드라마는 갈수록 더 위험해졌다. 의사가 무책임하게 의술을 펼쳐 해악을 남기면 의료소송이라도 걸 수 있지, 공영방송 드라마의 무책임함은 누가 어떻게 책임질 셈인가?
티브이 칼럼니스트. 정신 차려 보니 티브이(TV)를 보는 게 생업이 된 동네 흔한 글쟁이. 담당 기자가 처음 ‘술탄 오브 더 티브이’라는 코너명을 제안했을 때 당혹스러웠지만,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굳이 코너명의 이유를 붙이자면, 엔터테인먼트 산업 안에서 무시되거나 간과되기 쉬운 이들을 한명 한명 술탄처럼 모시겠다는 각오 정도로 읽어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