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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에게 ‘치욕의 가면’ 씌우고 침묵에 가두다

[토요판]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32. 작가 미상, ‘잔소리꾼에 대한 처벌’


말 많이 하면 ‘치욕의 가면’ 씌우고


잔소리하면 머리에 금속장치


남편 말 안 따르면 정신병원 보내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병든 걸로 봐


가부장에게 대들면 무거운 형벌


여성 목소리 지우는 효과적 장치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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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일이다. 명절을 맞아 일가친척이 다 모인 김에 집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론이 벌어졌다. 음식을 가운데 두고 둥그렇게 모여 앉아 각기 의견을 내고 있는 와중에 숙모가 살짝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주장을 펼치는 숙모의 말에 귀 기울이려는 찰나, 삼촌이 웃으면서 던진 한마디가 분위기를 바로 평정했다. “그만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던데.” 반농담조의 말이었지만 효과는 강력했다. 숙모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심코 들어왔던 속담 하나의 무자비한 힘을 목격했던 나는 그와 비슷한 속담 하나를 더 떠올리고 의기소침해졌던 기억이 난다. 바로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 둘 다 여성은 목소리와 존재감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강력한 경고를 담고 있는 말이다.


이 ‘암탉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지난해 6월 독일 로텐부르크 중세범죄박물관에서 희한한 전시품을 만나면서였다. 금속으로 된 가면인데, 혓바닥은 흉측할 정도로 길게 늘어져 있고 귀는 짐승처럼 크며 정수리 위엔 커다란 종이 달려 있었다. 이걸 설마 사람이 쓸까 싶었는데 설명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의례용 가면이 아니었다. ‘말을 너무 많이 하는 여인’에게 벌을 주는 의미로 씌우는 ‘치욕의 가면’이란다. 머리 위의 종은 ‘치욕의 가면’을 쓴 여인이 가까이에 왔다고 알리는 역할을 했고, 이 종소리를 시작으로 극악한 조리돌림이 시작됐다고 한다.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 어찌 이런 형벌을 받을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순종 않는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


독일만의 악습일까 싶어서 찾아봤더니, 영국에서는 16세기부터 잔소리가 많은 여성들에게 아예 재갈까지 물렸다고 한다. 이른바 ‘잔소리꾼 굴레’가 그것이다. 그림 <잔소리꾼에 대한 처벌>을 보자. 한 여성이 ‘잔소리꾼 굴레’를 쓴 채 거리를 걷고 있다. 옆의 남자가 종을 치며 ‘잔소리꾼’이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리니, 이에 호응해 남녀노소를 불문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비웃는다. 하지만 당사자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폭력 한복판에서도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의 머리를 감싼 금속장치 ‘잔소리꾼 굴레’는 입 부위에 혀를 누르는 재갈이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 여성의 죄는 고작 남성을 성가시게 하거나, 남성에게 짜증을 내거나, 말을 함부로 하거나, 잔소리를 하고 험담을 했다는 것. 즉 가부장 사회가 원하는 ‘고분고분한 여성상’으로부터 벗어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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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하지 않는 여성에게 가해진 사회적 폭력은 ‘잔소리꾼 굴레’에 그치지 않았다. 남성의 말을 따르지 않는 여성을 ‘미쳤다’며 다락방에 감금하거나 정신병원에 가두는 형태로 이어졌다. ‘미친 여자’라는 낙인은 수치심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아무도 그 여성의 말을 믿지 않게 만들어 여성의 목소리를 완전히 지우는 효과를 낳았다.


네덜란드의 천재 화가 렘브란트(1606~1669)가 연인 헤이르티어 디르크스(1610?~1656?)에게 했던 행동을 보자. 1642년, 렘브란트는 아내 사스키아를 병으로 잃었다. 아들 티튀스가 채 돌도 되기 전이었다. 홀아비가 된 렘브란트는 아들을 보살펴줄 유모가 필요했다. 그렇게 해서 헤이르티어는 유모로 렘브란트의 집에 들어오게 되었다. 건장한 시골 여인이었던 헤이르티어도 마침 남편을 잃은 상황이었다. 헤이르티어는 침체돼 있던 렘브란트의 집 분위기를 특유의 활력으로 밝게 만들었고, 티튀스를 친엄마처럼 돌봤으며, 렘브란트의 그림 모델도 했다. 곧 그녀는 렘브란트의 연인이 되었다. 렘브란트는 헤이르티어에게 사스키아가 남긴 귀금속을 선물하며 결혼을 약속했다.


1646년께 렘브란트는 헤이르티어의 모습을 드로잉으로 남겼다. 헤이르티어는 차분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오른손에 헝겊 같은 것을 든 것으로 봐서 한창 집안일 중이었던 것 같다. 결혼을 약속한 지 4년이 지나도 여전히 ‘비밀의 연인’으로 지내야 했던 피곤함도 엿보이는 듯하다. 헤이르티어는 아마 렘브란트의 속내가 무엇인지 불안했을 것이다. 불행히도 그녀의 불안한 예감은 다음해에 바로 현실이 되었다. 1647년 렘브란트는 헨드리키어 스토펄스(1626~1663)라는 젊은 여성을 가정부로 채용했다. 곧 진흙탕 싸움이 벌어졌다. 렘브란트는 헨드리키어와도 내연 관계를 맺은 것이다. 한 지붕 아래에서 삼각관계를 마냥 유지할 수 없었던 렘브란트는 헤이르티어와 헤어지려고 했지만 헤이르티어는 그렇게 순순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렘브란트가 결혼 약속을 어겼다며 소송을 걸었고 이윽고 법원은 렘브란트가 그에게 매년 200길더를 지급해야 한다고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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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디킨스…그들이 한 일


렘브란트 입장에선 자신을 ‘결혼사기꾼’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헤이르티어가 얼마나 골칫덩이였을까. 조금 사귄 것 가지고 해마다 200길더를 줘야 한다니 오죽 아까웠을까? 렘브란트는 결국 보복에 나섰다. 헤이르티어가 행실이 바르지 않고 제정신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손쉽게 정신병자 수감원에 가둬버린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가 있다. 당시에는 가부장 남성에게 순종하는 고정된 성 역할을 거부하거나 성격이 너무 사납거나 공격적인 여성을 ‘병든’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17세기 네덜란드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영국의 문호 찰스 디킨스(1812~1870) 역시 자신과 갈등을 빚고 별거 중인 아내 캐서린을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다는 내용의 편지가 2014년에 발굴돼 문학계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정신병원은 가부장 남성에게 대드는 여성을 사회와 격리시키는 효과적인 처벌 도구였던 셈이다. 그렇게 그녀들의 목소리는 효과적으로 지워졌다.


언젠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귀신은 소복을 입고 머리를 길게 풀어헤친 ‘처녀귀신’이라는 설문조사를 봤다. 처녀귀신은 흡혈귀처럼 피를 빨거나 좀비처럼 물어뜯지도 않는데 왜 우리는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는 걸까. 아마도 너무도 억울하게 죽어, 오뉴월 서리가 내릴 정도로 한 서린 영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일 것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을 들으며 가부장제 밑돌로 살다가 원통하게 죽은 여성들, 한줌 발언권이 없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여자들. 그녀들이 바로 한국판 잔소리꾼 굴레를 쓴 여인들, 헤이르티어, 캐서린이 아니겠는가. 처녀귀신은 죽어서야 비로소 고을 사또의 방에 찾아와 말을 할 수 있었다. 전설과 설화에 등장하는 처녀귀신의 모습에서 공포와 함께 진한 슬픔까지 느껴지는 건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유리 작가. <화가의 출세작> <화가의 마지막 그림> 등 예술 분야의 책을 썼다. ‘여자 사람’으로서 세상과 부딪치며 깨달았던 것들, 두 딸을 키우는 엄마로 살면서 느꼈던 감정과 소회를 그림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풀어본다. 아울러 미술사에서 지워진 여성들을 호출해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sempre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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