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내 개가 혼자 남겨진다면…
‘누구에게 부탁할까’ ‘누구도 우리만큼 예뻐해주지 못할텐데…’
주인의 ‘부재’ 이후 버려지는 개들…남은 수명을 생각하게 됐다
평균 수명만큼 내가 살 수 있다면, 새로운 개 입양이 불가능해지는 나이는 65세다. 우리 집 막내가 이제 8개월이란 걸 감안하면, 우리에게 새로운 개는 이제 없을지도 모르겠다. 클립아트코리아 |
중환자실에서 개의 안부를 묻다
2011년 어느 날, 난 몸이 좋지 않다는 걸 느꼈다. 속이 꽉 찬 느낌이었고 몸도 으슬으슬 떨렸다. 새벽 1시쯤, 더 이상 안되겠다 싶었는지 아내가 119를 불렀다. 알고 보니 내 부주의로 인해 열흘 전 수술했던 부위가 터졌고, 거기서 출혈이 계속되는 바람에 피가 모자라 몸이 떨렸던 것이다.
인근 병원으로 가서 응급조치를 받은 뒤 난 원래 다니던 단국대병원으로 옮겨졌다. 아내와 함께 구급차에 실려 천안으로 가는 동안 집에 남겨진 개들을 생각했다. 당시 난 개 두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낯선 사람들이 와서 주인을 데려갔으니 얼마나 놀랐을까 싶었다. 앞으로 며칠간 집에 들어가지 못할 텐데 밥과 물은 어떻게 줘야 할지도 걱정됐다. 중환자실에 누워있는데 면회 시간이 되자 아내가 나타났다. 제일 처음 물어본 것은 개의 안부였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우리 개들을 우리만큼 예뻐하지 못한다. 남은 유산을 모두 그에게 준다는 조건으로 개를 부탁한다 해도,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예쁜 개도 천덕꾸러기일 수밖에 없다. 클립아트코리아 |
나: 개는?
아내: xx(아내의 지인)에게 집 비밀번호 알려주고 다독거려 달라고 부탁했어. 물그릇도 채워달라고 했고.
나: 그래도 밥은 줘야 하잖아. 나 걱정하지 말고 개한테 가봐.
아내는 나를 돌보는 와중에 잠깐씩 짬을 내서 개한테 들렀고, 그러느라 매우 피곤한 나날을 보냈다. 운전 도중 너무 졸려서 휴게소에서 눈을 붙인 적도 있었다나. 내가 퇴원한 후 아내가 천안으로 이사를 가자고 한 것은 서울과 천안을 오가며 간병을 하는 게 힘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남은 삶<개 수명’이라면?
그때 이후 아내와 종종 이런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또 다시 급한 일이 생기면 누구에게 개 부탁을 해야 할지에 관해서.
그런데 그런 부탁을 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사람은 자신이 언제 죽을지 알지 못하며, 자신의 나이와 건강을 모른 채 당장의 외로움 때문에 개를 입양한다. 이 세상에는 주인의 죽음 이후 버려지는 개들이 수도 없이 많다. 몇 살까지 개를 입양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는 건 이 때문이다.
아내가 말한다.
“근데 그 부탁이라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게 일시적인 거라면 가능하겠지만, 계속 개를 맡아줘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우리집 막내 은곰이. |
아내 말이 맞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우리 개들을 우리만큼 예뻐하지 못한다. 남은 유산을 모두 그에게 준다는 조건으로 개를 부탁한다 해도,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예쁜 개도 천덕꾸러기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된다. 우리가 입양한 개보다 먼저 죽어선 안 되며, 부부도박단 같은 일로 둘이 동시에 감옥에 가는 일도 없어야 한다고. 그러다 보니 다음과 같은 결심도 하게 된다.
“우리가 살 수 있는 나이에서 개 수명을 뺀 나이 이후로는 새로운 개를 입양해선 안된다.”
평균 수명만큼 내가 살 수 있다면, 새로운 개 입양이 불가능해지는 나이는 65세다. 우리 집 막내가 이제 8개월이란 걸 감안하면, 우리에게 새로운 개는 이제 없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개들이 마지막 개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야겠다.
서민 단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