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 끝 무대 선 ‘옹알스’ 조수원…“전 세계 웃길 때까지 계속뛸 것”
국내 대표 논버벌 퍼포먼스팀 멤버
2016년부터 혈액암과 싸워오다
24일 ‘부코페’로 584일 만에 무대 올라
체력 소모 심한 90분의 퍼포먼스
연신 땀 닦으면서도 웃음 선사
“사랑하는 일 포기하기 어려워
멤버들 공연 보며 힘든 상황 극복
부코페 무대, 울컥하고 가슴 벅차”
23일 개막한 ‘제7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이하 ‘부코페’)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옹알스’ 조수원의 복귀 무대다. 2016년 혈액암 판정을 받고 투병했던 그는 8월 초 ‘부코페’ 기자간담회 때 무대에 서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지난해에도 ‘부코페’ 공연을 준비하다가 쓰러진 적이 있어 올해 역시 장담하진 못했다. 그러나 그는 굳은 의지로 지난 24일 논버벌 퍼포먼스 그룹 옹알스로서 무대에 올라 웃음을 선사했다. ‘부코페’ 무대를 앞두고 몸 상태 점검 삼아 섰던 서울 대학로 18일 공연을 제외하고 그가 정식으로 무대에 오른 건 재작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공연 이후 584일 만이다. 가슴 벅찼던 ‘부코페’ 무대의 막전막후를 <한겨레>가 동행했다.
‘부코페’ 무대에 오르기 위해 ‘옹알스’ 분장을 한 조수원. 부산/남지은 기자 |
“나 ‘부코페’ 무대에 서고 싶어.”
몇주 전 조수원이 불쑥 내뱉었을 때만 해도 멤버들은 대수롭지 않은 척했다.
“그러고 싶으면 그렇게 하자.”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면 더 부담을 줄까봐 그들은 늘 그렇게 덤덤한 척 그의 결정을 따랐다.
하지만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는 지난해에도 ‘부코페’ 무대를 준비하다가 공연 직전 쓰러져 위중한 상태에 이른 적이 있다. 24일 부산 영화의전당 공연장에서 만난 옹알스 멤버 조준우는 “사실 걱정이 많이 되지만, 부담을 안주려고 본인이 하고 싶어 하면 하게 해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특히 ‘부코페’는 옹알스에게는 의미있는 곳이라 조수원의 열망을 모르는 게 아니다. 국제 유명 코미디 페스티벌마다 초청받는 옹알스는 ‘부코페’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계를 돌며 얻은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했고, 국외 유명 아티스트 초청에도 도움을 줬다. 국외 일정 때문에 빠진 한번을 제외하고는 내내 참가했다. 옹알스는 ‘부코페’를 통해 한국의 공연 코미디 페스티벌이 세계적으로 성장하기를 누구보다도 원한다.
무대에서 열연하는 옹알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조직위원회 제공 |
하지만 조수원에게 ‘부코페’ 공연은 한번도 쉽지 않다. 그는 수개월 전부터 몸 상태를 점검하며 준비해야 했다. “예전에는 걷기운동까지만 했는데 이번에는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가벼운 중량 운동을 했어요. ‘부코페’ 오기 1주일 전부터 피 검사, 적혈구 검사 등도 받았고요. 재발 방지 약을 먹고 있는데 약을 먹고 나면 몸이 무기력해져서 저녁에 먹던 약을 새벽으로 옮겨 시간차를 두기도 했죠.”
그래도 돌발상황은 벌어진다. 18일 대학로 공연 때는 끝나고 잠시 쇼크가 왔다. “천천히 느긋하게 해야 하는데 오랜만에 무대에 서니 나도 모르게 흥분을 한 거죠. 좀 힘들더라고요.”
아이들의 시선에서 사물을 바라본다는 설정의 옹알스는 대사 없이 몸을 많이 쓰기 때문에 체력 소모가 심하다. 가수로 치면 발라드가 아닌 댄스 가수다. 70~90분 공연 내내 계속 몸을 움직인다. 저글링도 하고 비트박스도 한다. 조금이라도 합이 맞지 않으면 무대가 엉망이 된다. 경력 10여년의 베테랑들도 늘 사전 리허설을 하면서 긴장을 늦추지 않는 이유다. 오랫동안 공연을 쉬었던 조수원으로선 당연히 더 힘들다.
아픈데 왜 굳이 무대에 오르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다. 조수원은 “내가 무대에서 쓰러지면 다른 멤버들에게 평생 트라우마가 될 것이기에 무리하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는 건 어렵다. 옹알스의 대학로 공연 때 다른 멤버들이 무대에 선 것을 보고 있노라면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한달 정도 극장에 발을 끊은 적도 있다. 그는 “한동안 안 갔더니 정신적으로 더 힘들어져서 다시 대학로 공연장에 매일 왔다. 혼자 멤버들의 공연을 보면서 힘든 상황을 극복했다”고 말했다.
오랜 만에 선 무대에서 열연한 조수원. 부코페 조직위 제공 |
본래 꿈이 엔지니어였던 그는 2000년 개그맨 시험을 보러 가는 친구 따라 ‘그냥’ 서류를 냈다가 1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국방송>(KBS) 공채 15기 최종 8명에 선발됐다. 개그에 별다른 뜻이 없던 그의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한 건 제대 뒤 입사 동기였던 옥동자(정종철)가 유명해진 데 자극받아 ‘개그 공부 제대로 해보자’며 대학로 무대를 두드리면서부터다. 옹알스도 무대에서 시작됐다. “갈갈이패밀리에 들어가 공연을 하면서 개그의 재미를 알게 됐고, 거기서 옹알스 멤버 채경선도 만났어요. 같이 해보자며 공연을 짰던 게 지금의 옹알스까지 왔죠.” 조준우가 합류하면서 그 꼭지를 갖고 <개그콘서트> 제작진한테 검사를 받았고, 당시 담당이었던 김석윤 피디가 ‘옹알스’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3인조로 시작했던 팀은 4명(최진영, 하박, 이경섭, 최기섭)이 더 들어와 이제 7인조로 늘었다.
몇번 해보지도 못하고 옹알스 꼭지가 없어졌지만 이들은 방송에 목매지 말고 공연장을 누벼보자는 생각에 2010년께부터 국외 유명 코미디 페스티벌로 눈을 돌렸다.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로 경비를 모아 거리 공연부터 했던 것이 지금은 곳곳에서 초청받아 주요 공연 무대에 서면서 유명인이 됐다. “올해는 국내 인지도를 높여보자는 게 목표였다”는데 차인표가 만든 영화 <옹알스>도 개봉하고, 대학로 공연도 연일 매진을 기록했다. 올해 ‘부코페’에서도 10대들에게 인기 많은 유튜버들이 만드는 <보물섬>을 제외하곤 <옹알스> 표가 가장 많이 팔렸다.
23일 ‘부코페’ 개막식에서 마지막 성화봉송주자로 참여한 ‘옹알스’. 조직위 제공 |
그렇게 정상을 향해 달려가는 길목에서 조수원의 암 진단은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무대에 대한 사랑과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끈끈함으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조수원 없이도 공연을 잘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그게 또 미안해서 울곤 했다”고 조준우는 말했다.
저녁 7시 조수원이 무대에 올랐다. 조금 힘든지 객석에 불이 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연신 얼굴의 땀을 닦았다. 그때마다 조준우와 채경선은 눈빛으로 “괜찮냐”고 물었다. 그들은 열심히 저글링을 했고, 몸개그를 했고, 관객들을 사정없이 웃겼다. 공연이 끝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감사하다고 큰절하는 조수원의 모습에 눈시울을 붉히는 관객들도 있었다. 무대에서 내려온 뒤 그는 “남을 웃겨야 하는 코미디언이 암이라니” 하며 껄껄 웃다가 “가슴 벅차고 울컥하다”고 했다. “웃음과 감동이란 거, 말하지 않아도 전달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대한민국, 전세계를 웃기는 그날까지 옹알스는 계속될 겁니다!”
부산/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