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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에게 무죄 준 ‘위력’ 개념, 132명에게 물어봤다 [더(The)친절한 기자들]

[더(The) 친절한 기자들]


“존재감, 영향력, 집단의 분위기도 위력”


법리적 판단보다 사회적 인식범위 훨씬 넓어


최근 법조계에서도 새롭게 해석하려는 움직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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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하나




첫 직장을 다닐 때 일입니다. 회사 대표가 저를 지나칠 정도로 신임했고, 제가 일을 잘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매일 칭찬을 받았기 때문에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월급을 받아도 일을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칭찬은 저를 성적인 대상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더라고요. 집이 조금 멀다고 하니까 자신의 집에 들어와 살라고 한 적도 있습니다. 입사 6개월 뒤엔 대표가 제게 고백을 했어요. 저는 당연히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태도가 돌변했습니다. 제게만 야근을 시키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너는 밥값을 못하니 지금까지 월급으로 받은 돈을 모두 다 내게 반납하라”며 단둘이 있을 때 협박했습니다. 혼자 야근하던 새벽에는 마사지해준다며 제 몸을 전체적으로 더듬었어요. 나중에는 밥도 바닥에 꿇어앉아 먹게 했고요. “단지 고백을 거절했기 때문이냐”, “이런 행위를 하지 말아달라”고 항의를 했지만 돌아오는 건 머리를 때리는 등 폭행이었습니다. “반성문에 서명하라”며 문서를 건넸는데 그게 반성문이 아니라 사직서더라고요.


사용자가 생계를 쥐고 있으니 도덕적으로 어긋난 행동을 하더라도 노동자는 격한 저항을 할 수 없죠. 그게 바로 상하관계에 존재하는 위력 아닐까요.



■ 장면 둘


군대에 있을 땝니다. 중대장 집을 청소하고, 휴일에 같이 당직을 서고, 다른 중대장과 식사하는 데선 들러리를 서고, 일하는 시간에 불려가서 커피를 타고, 중대장의 서명을 연습해 하지도 않은 병기점검일지에 대리서명을 하기도 했죠. 제가 불법인 걸 몰라서 거부를 못 했던 걸까요? 아닙니다. 거부하면 남은 군 생활을 할 수 없으니까요. 제 선임도 당연하다는 듯이 해온 거였고요. 저는 중대장을 보좌하고 대리하는 사람이라고 늘 정신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거절이 가능한 조직’이라곤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중대장은 사람을 세 부류로 분류했습니다. 개, 사람, 맹수입니다. 개는 말로 못 알아들어서 폭력으로 가르쳐야 하는 부류, 사람은 말로 하면 알아듣는 부류입니다. 그리고 인간과 개를 분류할 수 있는 사람이 맹수죠. 그 맹수가 가진 힘이 위력입니다.



지난 14일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조병구 부장판사)는 위력에 의한 성폭행 혐의 등으로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와 수행비서였던 피해자 김지은씨가 업무상 위력 관계에 있다는 점은 인정할 수 있지만, 안 전 지사가 위력을 행사해 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논리냐”며 항의하는 쪽과 “위력의 존재와 행사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쪽의 의견이 갈렸습니다. 그만큼 ‘위력 행사’에 대한 해석 범위가 판사의 재량에 따라 달라졌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일반 시민들은 과연 어떤 상황에서 자신에게 위력이 행사됐다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재판부의 판단과 비슷할까요?


<한겨레>가 지난 17일부터 19일까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 누리꾼들에게 ‘위력’으로 인한 피해 경험 사례를 물었습니다. 여기에 132명이 응해 자신이 겪은 경험을 털어놨습니다. 응답자들은 구체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분위기, 영향력, 존재감 등을 위력이라고 다양하게 정의했습니다. ‘더(The) 친절한 기자들’에서 이들의 응답을 바탕으로 위력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을 짚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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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왜 바로 저항하지 못했나


설문조사에선 전체 응답자 132명 가운데 103명(78%)이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상황에서 곧바로 반대나 저항 의사를 표현하지 않거나, 하지 못했다”고 답했습니다. ‘위력의 행사로 피해를 봤다’고 느낀 경험은 대부분 학교, 직장, 군대에서 일어났는데요. 그 자리에서 항의할 경우 학점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회사에서 잘릴 것을 우려했습니다. 설사 상사나 교사 등 윗사람이 직접적으로 불이익을 주겠다는 사실을 명시하지 않았어도 그의 의사에 반대하기 어려웠다는 답변도 많았습니다. 아래의 표현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 위력과 저항에 대해 한 얘기들입니다.




“조직에 어울리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또 조직의 장이 절대권력을 가져 모두가 그에 맞춰주는 분위기에서 사원이 반대 의사를 표시하기 어려웠습니다.”


“보는 눈이 많았는데도 모두가 성추행을 묵인했습니다.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을 것이란 직감 때문에 바로 항의할 수 없었습니다.”


“저항했을 때 나에게 돌아올 보복이 무서웠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생활기록부 평가가 두려웠고, 직장에선 잘리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저항해도 나만 다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기약 없고 결과도 알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하는 것보다 가해자의 심리를 차라리 이해하려고 하는 게 내 마음의 평온에도 도움이 돼버리는 기이한 전도현상이 일어납니다.”


“을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반대하면 더 이상 업무 계약이 연장되지 않을까 봐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왜 분위기를 깨냐는 식의 핀잔만 돌아오니까요.”


“거절했던 친구가 계속 괴롭힘을 당하는 걸 봤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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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상사로부터 성추행 등을 당한 경우엔 패닉에 빠져 그 자리에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는 답변도 나왔습니다. 흔히 성폭력 피해자들이 피해를 당하게 되면 바로 소리를 지르는 등 적극적으로 반항할 거란 고정관념이 있는데요. 실제 피해자들의 반응은 그와 전혀 다를 수도 있음을 보여줍니다. 아래 반응들도 모두 다른 사람의 말입니다.




“(성추행이) 너무 순간적으로 벌어진 일이었고, 놀란 마음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습니다.”


“평소 신뢰하던 상사였기 때문에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나?’하고 현실을 부정했어요.”


“그 순간에는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졌어요. 소리도 안 나왔죠. 데이트 강간을 당할 뻔한 순간에도 ‘설마 이거 성폭행인가? 내가 오해하는 거 아닐까?’ 현실을 부정했습니다. 특히 남성이 여성보다 완력이 세다 보니 저항하면 죽을 거라는 공포에 압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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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의하면 더 큰 보복이 돌아왔다


안희정 전 지사의 1심 판결에서 재판부는 “성적 주체성과 자존감이 결코 낮다고 볼 수 없는 피해자”가 “최소한의 회피와 저항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임에도 피해자의 그러한 언행은 없었다”는 사실을 무죄의 근거 중 하나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자유의사가 존재하는 성인’이라고 해서, 누구나 상사의 부당한 지시를 바로 거절할 수 있을까요?


“위력으로 인한 부당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바로 항의했다”고 답한 나머지 22%의 응답자들은 답변을 살펴봤습니다.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용기를 내 표현한 반대 의사는 묵살되기 일쑤였고 심지어 더 큰 폭력으로 돌아왔습니다.




“거부 의사를 계속 밝히니 일이 끊겼어요.”


“인사팀에 이야기했지만 아무 조처도 없었고 오히려 제보한 사람에게 피해가 돌아오더라고요.”


“제 말을 무시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했습니다.”


“(성폭행 상황에서) 무서워서 몇 번이나 밀쳐내고, 공포감에 온몸이 떨려 최대한 웅크려 있었어요. (가해자는) 오히려 그런 반응을 보고 순진하다며 좋아했고, 계속 저항하자 완력을 행사했습니다.”


“제가 논리적으로 항의하자 그 상황에선 당황해 ‘어쩔 수 없었다’며 대충 넘어갔지만 이후에 여러 형태로 보복하더라고요.”


“말을 안 듣고 까다로우며 분위기를 망치는 직원으로 취급받았습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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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묵적인 분위기도 위력이다


응답자 개인이 생각하는 ‘위력’의 의미도 함께 물었습니다. 물리적인 폭행이나 협박보단 상급자의 존재만으로, 또는 권력남용이 묵과되는 분위기만으로도 위력이 행사될 수 있다는 답변이 많았습니다. 한 응답자는 위력을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면 돼)”에 견주었고, 또 다른 응답자는 안 전 지사의 1심 판결을 직접 거론하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위력은 신체적으로 구속해서 자기결정권을 박탈하는 게 아니라 신체가 자유롭더라도 분위기나 상하관계의 억압 때문에 행사되는 것으로 충분히 강제적이며 거부하기 힘든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위력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있는 위치와 갖고 있는 영향력 자체가 위력이라고 봅니다.”


“조직 내에서 ‘알아서 기게 만드는’ 분위기.”


“수직적인 상하관계가 아니어도 돈, 지식, 집안, 학력 등 어떤 자산을 가진 것만으로도 위력이 발생한다.”


“거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리, 내 목소리가 무시되는 분위기.”


“사회적 계급의 차이, 문화적으로 고착된 성별 간 지위, 육체적인 힘의 차이, 상대방이 거절하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행하는 부당한 압력.”


“상대방이 자유의지를 펴지 못하게 하는 비가시적인 힘.”


“지위 및 이해관계로 인해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표현할 수 없게 만드는 무형의 힘.”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의 존재와 그로 인해 생기는 존재감.”


“권력자가 직접적으로 위력을 행사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어도, 그 사람이 평소에 보였던 사고나 행위가 소속 집단문화를 통해 영향을 미쳤다면 그것도 위력이다.”


“물리적인 힘의 행사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속한 작은 사회 내부에서 통용되는 분위기와 환경이 모두 위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해자가 굳이 말하지 않고 피해자도 원치 않는데도 부조리하거나 불합리한 일을 자발적으로 수행하는 건, 분위기에 맞춰 눈치를 보게끔 만드는 환경이 위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 법조계는 사회적 인식에 얼마나 응답할 수 있을까


대법원은 1998년 “위력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 충분한 세력을 말하고,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않으므로 폭행·협박뿐 아니라 행위자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을 포함한다”고 규정한 바 있습니다. 반면 이번 설문 응답자들의 답변은 대법원 판결보다 좀 더 범위가 넓고 구체적입니다. 권력의 존재와 영향력, 조직의 분위기도 ‘위력 행사’의 주요한 요소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진술과 증거에 의존해 내려야 하는 법리적인 판단은 사회적인 인식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특히 ‘위력에 의한 간음죄’처럼 도덕의 문제를 넘어 법적으로 범죄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경우라면 아무래도 법조계는 시민들의 인식보다는 보수적인 경향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최근에는 법조계 내부에서도 ‘업무상 위력’에 대해 조금 더 진전된 해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류화진 영산대 법학과 교수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에 관한 다른 해석의 시도’(2018년) 논문에서 “기존 학설은 ‘피해자의 동의’가 있으면 위계·위력에 의한 간음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해석한다”며 “이 때문에 피의자들은 피해자의 ‘동의’가 있었음을 주장하는데, 폭행·협박이 없었기 때문에 가해자는 ‘동의’의 존재를 주장하기에 매우 유리하고 피해자는 ‘왜 피하지 않았느냐’는 비난을 받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류 교수는 “피해자의 ‘동의’가 있었다고 해도 위계에 의해 기망당하거나 위력에 의해 강요받은 의사에 의한 동의”라며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죄를 규정한 형법 303조 1항의 범죄구성요건 해석을 새로이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임주환 변호사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위력으로써’란 법조문이 위력의 존재 또는 행사라는 두 의미로 모두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위력을 가진 사람이 업무를 벗어난 지시나 요구를 했다면 위력 행사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위력은 존재만으로도 명시적, 묵시적인 행사까지 인정될 수 있다. 만약 피해자가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는데 (이를 검토 않고) 판사가 부족한 논거를 가지고 피해자의 심리를 재단하는 식의 재판은 잘못됐다고 보인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서울서부지법은 1심 선고문에서 “이른바 ‘위력의 존재감’ 자체로 피해자나 기타 주변 직원 등의 자유의사를 억압해왔다고 볼만한 증거는 부족하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아래 응답자의 답변은 1심 재판부와는 조금 다른 시사점을 던집니다. 과연 2심 재판부는 사회적 인식과의 괴리를 어떻게 해석할까요?




“한국에선 나이, 조직 내 계급, 업계 안의 높은 평판이 곧 권위로 이어집니다. 반대 의견은 인격적인 공격으로 취급되고, 조직에서의 축출로 이어집니다. 이런 나라에선 그러한 지위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력이 발생합니다. 외형적으로 피해자가 가해자의 지시에 순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오히려 위력관계의 존재를 추단케 하는 상황이지, 그것 자체만으로 피해자의 자발적인 동의가 있었다는 등의 판단을 내려선 안 됩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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