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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by 한겨레

아이 셋과 발리 한 달 살기, 엄마를 위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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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발견한 산길에서 비 맞고도 ‘껄껄껄’

그건 한 달 살기가 선사한 잊지 못할 선물

풍경 바뀌니 아이들과 하는 대화도 달라져

“인생 안 변해도 당신은 조금 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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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우붓에 있는 ‘참푸한’ 산마루 길. 김씨가 꼽은 발리 ‘한 달 살기’ 중 최고의 장소. 사진 김승지 제공

일 년 반이 지났는데 생각만 해도 절로 웃음이 나는 일이 얼마나 될까. “애들 학교 가 있는 시간은 어떻게 보냈나요?”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정말 좋았죠.” 정말 좋았던 게 틀림없다. 그때 그 감정이 떠오른 듯 고개를 숙이고 입을 두 손으로 가리며 웃는다. 지난해 여름 홀로 아이 셋을 데리고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돌아온 김승지(42)씨. 그는 가장 즐거웠던 기억으로, 우연히 발견한 도보여행 길에서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를 맞으며 ‘껄껄’ 소리 내 웃은 일을 꼽았다. 지난 21일, 서울 합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씨는 “인생이 달라지진 않아도 당신은 조금 달라질 수 있다”며 발리 한 달 살기를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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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서울 합정동 한 카페에서 만난 김승지씨. 발리로 세 아이와 한 달간 여행 갔다가 돌아와 쓴 책 <아이와 발리에서 한 달 살기>를 들고 있다. 사진 경지은(스튜디오어댑터) 제공

‘펑’ 하고 터지지 않았을 뿐 “깊은 우울감” 깔린 생활의 연속이었다. 아이 셋(14살 아들, 9살 딸, 5살 아들)을 키우며 출산·육아 휴직 포함 15년가량 직장생활을 병행했다. 막내가 태어나기 전, 두 아이 육아와 일에 지쳐갈 무렵 첫째(당시 10살)와 배낭여행을 갔다. 일본 후쿠오카로 떠난 2박3일 여행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짧았다. 귀국 비행기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돌아가는 게 아쉬웠다. 그때 처음 ‘한 달 살기’를 꿈꿨다. “우연히 발견한 골목길을 또 걸어보기도 하고 그 도시에 살아본 기분을 제대로 느끼려면 한 달 정도는 머물러야 할 것 같았다.” 아이들도 다른 도시에서 평범한 일상을 보내며 ‘살아보는 경험’을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초, 첫째는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고 김씨는 세 번째 직장이자 마지막 일터가 될지 모르는 출판사 퇴사가 예정돼 있었다. 올해가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한 달 살기’를 결심했다.


“한국에서 아이 셋을 키우면 생각지도 못한 무례한 일들을 당할 때가 있다.” 자연스레 외국 도시들을 검색한 건 그 때문일 것이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뒤에서 ‘저 집은 애가 셋인가 봐’라고 수군거리고, 아이들과 식당에 자리를 잡으면 옆자리에서 말없이 자리를 옮기는 사람들도 있다.” 외국에서 한 달 살기를 결정한 건 잠시라도 그런 시선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선택에도 단계가 있다. 전 직장 상사 덕에 인도네시아 발리에 처음 관심이 생겼다. 그는 ‘올해는 아이가 (발리 우붓에 있는 국제학교) 플랑이 학교 여름캠프에 못 갈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그 학교는 환경·과학·미술·요가 등 어학보단 체험과 협업을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아홉살 터울 아이 셋을 모두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인터넷 블로그에서 발리 우붓 여행 후기를 찾아보니 울창한 숲이 에워싼 시골 마을은 평범한 동네 산책길도 매력적으로 보였다. 마지막으로 안전 문제를 검토하고 마음의 결정을 했다. 지난해 7월6일 발리로 떠나 8월3일 돌아오는 일정으로, 출국 석 달 전 비행기표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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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우붓 ‘플랑이’ 학교 여름캠프 요가 수업. 사진 김승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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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치밀하게 준비할 생각이 없었다. “준비과정에서 에너지를 아끼고 현지에서 맞춰가겠다고 생각하니 맘이 편했다.” 그래서인지 부담보단 설렘이 컸다. 가장 준비를 어렵게 한 건 “너무 많은 정보”였다. 추천 숙소, 체험(액티비티), 명소가 너무 많았다. 꼭 가볼 곳 두세 군데만 정하고 숙소 선택에만 신경 썼다. 예약 사이트에서 1박 평균 5만원을 기준으로 검색해 별점 3점 이하 ‘나쁜 점수’를 준 후기부터 읽었다. 그렇게 우붓에서 풀빌라 두 곳(각 3박, 11박), 여행자들이 붐비는 도시 쿠타에서 게스트하우스, 레지던스, 호텔 등 다섯 곳(각 2~3박)에 머물렀다. 다른 준비물보다 중요한 건 한 달 살기를 떠나는 아이들 마음가짐이었다. “2년 전 대만 가족여행을 준비할 때 큰아이에게 어린이용 여행안내서를 건넸더니 이전과 달리 현지에서 주도적으로 여행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발리 한 달 살기를 앞두고 아이들과 여행안내서에 ‘포스트잇’으로 표시해둔 여행지, 비행기·식당 예절, 일행을 놓쳤을 때 대처법, 현지 인사말 등을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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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우붓 수영장에서 노는 아이들. 사진 김승지 제공

한 달 살기에선 우연한 발견이 잊지 못할 선물이 된다. 아이들 하굣길, 차 안에서 늘 바라만 보던 길이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 밑으로 길은 구불구불 이어졌다. 하루는 ‘신비롭고 어둑어둑하고 습한’ 그 길을 찾아갔다. 옆집에 살던 동갑내기 한국인 아이 엄마와 동행했다. 그도 한 달 살기에 도전한 이다. 알고 보니 여행안내서에서 본 적 있는 도보여행 명소였다. ‘참푸한’ 산마루 길. 다 걷고 돌아가려는데 소나기가 내렸다. 비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세차게 쏟아졌고, 울창한 숲에 빗소리와 오토바이 달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흙탕물에 바지가 더러워지고 온몸은 비를 쫄딱 맞았는데도 왠지 기분이 상쾌했다. 갑자기 자신도 모르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 김씨는 ‘조증 환자마냥 목을 젖히고 껄껄 웃어댔다’고 한다. “우연히 발견한 그 길이 좋아 수업을 마친 아이들과 오후에 다시 걸었다. 길 입구 호텔 수영장이 문을 열었기에 거기서 아이들과 또 놀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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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쿠타 이발소. 사진 김승지 제공

‘한국에선 그러면 안 된다고 했을 법한 일도 여기선 해볼 만한 일이 된다.’ 어느 날은 식탁에 김치와 밥, 치즈와 빵, 시리얼과 우유를 모두 차려 놓은 후 식사를 하고, 마트에서 고른 과자들을 모아 매일 저녁 아이들과 과자 파티를 열었다. 낯선 나라, 처음 가보는 길거리 이발소에서 아이들은 머리카락을 깎았고 숙소에서 자주 마주친(그래 봐야 몇 차례 마주쳤을) 다른 여행객들 초대를 받아 방에 놀러 가기도 했다. “그런 과정이 오히려 아이들에게 굉장한 안정감을 준 것 같다.” 그렇게 현지 생활에 녹아들었다. 나중엔 현지 트럼프 카드 뒷면에 그려진 발리 여행지 사진을 보고 “여기 갔다 온 데네”라며 아이들은 서로 알은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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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쿠타 해변. 사진 김승지 제공

늘 즐겁고 낭만적이기만 했던 건 아니다. 5살 막내는 베드버그(빈대)에 물려 등에 빨간 딱지가 생겼고, 워터파크 유수풀(한 방향으로 물이 흐르는 수영장)에선 덩치 큰 외국 여행객들에 뒤섞여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멀리 밀려가기도 했다. 쿠타 지역에선 실제보다 도시가 크다고 오판하곤 숙소를 불필요하게 여러 차례 옮겼고, 귀국 일주일 남기고 새로 구한 유명 숙소는 객실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다행히 별일 없이 지나갔지만, 그 순간만큼은 적잖이 놀라고 걱정하고 속상했다.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여러 일이 벌어졌지만 더 여유롭게 느껴진 건 “아이들과의 대화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선 주로 ‘학원 갔다 왔어?’ ‘숙제했어?’라고 물었다면 발리에선 ‘다친 데 없지?’ ‘뭐가 재밌었어?’ ‘왜 좋았어’라고 물었다.” 주변 사람과 풍경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한국에서 매일 하던 빨래도 발리에선 달라 보였다. “집에 주렁주렁 널어놓은 빨래 사이로 바람이 불고 벌레 소리가 들리고 문밖 산과 논이 펼쳐지는 풍경을 보고 있는 게 정말 좋았다. 마치 빨래가 하루를 신나게 보낸 자국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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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스윙’을 타고 있는 김승지씨. 사진 김승지 제공

“‘한 달 살기’는 아이들보다 엄마한테 더 좋은 경험”이라고 김씨는 말했다. “어차피 돌아오면 일상은 똑같지만, 대피소를 하나쯤 마련해 둔 기분”이라고 한다. 그는 지난 6월 단행본 <아이와 발리에서 한 달 살기>를 펴냈다. “워킹맘들에게 발리 다녀온 얘길 하면 가고 싶다고 하면서도 결국 못 가는 이유를 찾는다. 그 눈빛에서 우울감을 봤다. 그들에게 일단 떠나보라고 제안하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 김씨는 다음엔 유럽 조지아로 한 달 살기를 떠날 생각이라고 했다. “발리 한 달 살기를 실행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한 달 살기 간다’고 떠들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하는데 내후년 안에 조지아로 간다.”

발리 한 달 살기 꿀팁

  1. 항공 : 날짜에 맞춰 항공권을 검색하지 않고, 좀 더 싼 가격에 맞춰 날짜를 조정했다. 항공권 등 예약 사이트 ‘스카이스캐너’에서 기간별 항공권 금액 검색을 이용했고, 좀 더 싼 가격 항공권에 대기 신청을 했다.
  2. 예산 : 학원·유치원비 포함 한 달 평균 생활비 400만원을, 항공비와 ‘플랑이 학교’ 등록금 등을 제외한 현지 여행비 기준으로 삼았다. 그중 숙박비를 절반 이내로 잡았다. 1박 평균 5만원 약 30일 동안 150만원으로 산정했다. 현지에서 가계부 앱을 이용해 지출 낭비 방지에 도움이 됐다.
  3. 숙소 : 종종 바닷물이 섞여 나오거나 온수가 나오지 않는 숙소들이 있다고 해서 예약 사이트 이용 후기를 살폈다. 쿠타, 르기안, 스미냑이 가까운 거리인 줄 모르고 3일씩 숙소를 옮겨 다녔는데 결과적으론 장점도 있었다. 아이들은 숙소 수영장이 바뀌면 새로운 곳에 온 기분을 느끼는 것 같다.
  4. 빨래 : 옷 여벌은 3~4벌 챙겼다. 호텔 등 숙소들 앞에 우리로 치면 편의점처럼 세탁소들이 있다. 최근엔 코인 세탁방도 생겼다. 현지 세탁기 거름망이 관리가 덜 돼 위생 상태가 나쁜 경우가 종종 있다. 양해를 구하고 세탁기 위생 상태를 확인한 뒤 그나마 나은 곳 한 곳을 정해 빨래를 맡겼다. 당시(지난해 7~8월) 기준 빨래 무게 1㎏에 가격은 우리 돈으로 2000원 정도. 처음엔 겉옷만 맡기다가 어느 날 우연히 딸려 간 아이 팬티가 다림질되어 돌아온 뒤로 거의 모든 빨래를 맡겼다.
  5. 챙겨 가면 좋을 준비물 : 여권, 상비약, 돈과 신용카드를 챙겼다면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질병, 분실, 기타 사고 등에 대비해 여행자보험은 가입하는 게 좋다. 발리에선 빨대나 일회용 수저를 구하기 어려우니 필요한 경우 챙겨 가면 좋다. 피부가 민감한 동행인이 있다면 정수샤워기 헤드를 추천한다. 부피가 다소 크지만, 2인용 소형 전기밥솥이 있으면 요긴하게 쓸 수 있다. 현지에서 대용량 용기에 갖은양념을 판매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소금, 식용유, 고춧가루, 설탕 등 조미료를 작은 용기에 가져가면 좋다.
  6. 안 챙겨도 좋을 준비물 : 모기퇴치제, 샴푸, 보디클렌저, 쌀, 라면 등은 발리 현지에서 살 수 있다. 하지만 발리 모기퇴치제 제품은 향이 강하므로 한국에서 천연 모기퇴치제를 준비해가면 좋다.
  7. 앱 : 지도 ‘구글 맵’(Google Map), 차량 공유 서비스 ‘그랩’(Grab), 배달음식 ‘고젝’(Gojek), 숙소 예약 ‘부킹닷컴’, ‘아고다’ 등.

참고 도서 <아이와 발리에서 한 달 살기>

4인 가족 발리 한 달 살기 비용

  1. 4인 왕복 항공료 212만3840원
  2. 플랑이 학교 등록금·입학금 등 144만9000원
  3. 숙박비 151만8951원
  4. 서핑·래프팅 등 액티비티 및 영화 등 관람료 52만3800원
  5. 생활비 188만3000원

총 749만8591원 (*김승지씨 가족 발리 한 달 살기(28박29일) 기준. 항공권은 2018년 4월 발권)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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