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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오늘은 더 늦어” 가슴에 박힌 마지막 말

[고 김원종씨 아버지가 전한 아들의 마지막 모습]


아들 휴대전화 대신 받으니


“왜 택배 안오나요” 연신 문의


‘개인사업자’인 탓에 모든 책임


산재 인정받기도 어려운 처지


“대리점서 적용제외 신청서 받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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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배송 업무를 하다가 숨진 씨제이(CJ)대한통운 택배기사 김원종(48)씨의 아버지 김삼영(78)씨는 빈소에서 죽은 아들의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날 아들은 서울 강북구 미아동에서 배송을 하다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 사고 당일 오후 5시가 넘어 병원의 연락을 받고 응급실에 달려간 아버지는 저녁 7시30분께 아들이 숨을 거둘 때까지 ‘주인 잃은 전화’를 대신 받았다. ‘왜 택배가 오지 않냐’는 고객들의 문의였다. 그는 택배기사인 아들이 운전대 앞에서 의식을 잃어 병원에서 생사를 오가고 있다는 상황을 고객들에게 직접 전해야 했다.


지난 10일 밤 <한겨레>와 만난 아버지는 아들의 전화기를 붙잡고 있는 이유에 대해 “언제 또 전화가 올지 몰라서”라고 했다. 계약 형식상 ‘사장님’(개인사업자)인 택배기사의 사정을 씨제이대한통운 본사도, 대리점도 고객에게 알릴 책임은 없었다. 그 책임은 오로지 택배기사에게 있었다. 아버지는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이라는데 어디 가서 하소연을 하나”라고 체념한 듯 말했다.


아들은 사고 전 하루 평균 16시간씩 일을 했다고 아버지는 전했다. 아들은 매일 새벽 6시 알람 소리를 듣고 출근 준비를 했다. 아침 7시부터 정오 무렵까지 배송할 물건을 차량에 싣는 분류작업을 마친 뒤 배송에 나섰다. 퇴근 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밤 9~10시를 넘겼다. 숨지기 전날인 7일에도 아들은 밤 9시30분에 귀가했다. 아버지는 사고 당일 아들이 “아빠, 오늘은 어제보단 조금 늦을 거야”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했다. “어제보다도 더 늦는다니까 부모 심정이 어땠겠습니까. 아들이 그렇게 말하고 나가서 사고를 당한 거예요.” 12일 기자회견에서 말을 마친 아버지는 오열했다.


앞서 정부와 택배업계는 지난달 18일 추석 성수기(9월14일~10월16일) 동안 택배기사 장시간 노동의 원인인 분류작업 부담을 해소한다는 취지로 서브터미널에 2067명의 추가 인력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들이 물품을 받는 터미널은 인력 지원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들과 같은 대리점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각 40만원씩 모아 아르바이트생 2명을 구하기로 했지만, 아들은 그 돈을 낼 형편이 안 돼 이 기간 분류작업을 계속 병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버지는 억울한 마음에 사고 전 아들의 업무량이 얼마나 많았는지 제대로 확인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를 알려면 택배기사의 배송 출발과 완료 시간 등이 월별로 기록된 아들의 스마트폰 업무용 앱을 보는 수밖에 없다. 현재 잠금해제 패턴이 설정돼 열어볼 수 없는 아들의 스마트폰을 보려면, 서비스센터에 주민등록등본을 제출해야 한다. 지난 10일 구청과 동 주민센터를 찾은 아버지는 새삼 주말에 관공서가 쉰다며 “우리나라가 참 살기 좋은 나라다”라는 말을 몇번이고 되풀이했다. 생전에 ‘개인사업자’ 신분이라서 근로기준법의 보호 없이 주 6일을 ‘택배 아저씨’로 뛰어다녔던 아들을 떠올리면, 아버지에게 주 5일만 근무하는 관공서는 “참 살기 좋은 나라”다.


아들은 업무 중 목숨을 잃었지만, 산업재해로 인정받기도 어려운 처지다. 지난달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긴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를 작성해,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아들이 원했던 바는 아니었다. 그의 동료들은 “지난달 소장이 13명의 대리점 택배기사들을 모아놓고, 사실상 (신청서를) 쓸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를 제출받았다”고 주장했다. ‘갑’인 대리점에 밉보여 계약이 해지될 경우 택배기사들은 일감을 잃을 수밖에 없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임종성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지난 7월 업계 1위 씨제이대한통운 택배기사로 입직한 4910명 가운데 64.1%(3149명)가 아들의 경우처럼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다른 업체의 평균(58.9%)보다 높은 수치였다.


택배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원회는 아들의 발인이 엄수된 12일 “올해 과로사한 택배노동자 8명 가운데 5명이 씨제이대한통운 소속”이라며 “씨제이대한통운은 추석 기간 분류작업 인력 투입 약속도 지키지 않고 갖가지 꼼수와 편법으로 국민들을 속였다. 그동안의 택배노동자 과로사에 대해 국민 앞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실질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함께 살던 유일한 식구인 아들이 떠나면서 아버지는 홀로 남게 됐다. 아버지는 최근 지역 복지관에서 한달에 열흘 청소일을 하고 27만원을 받는 일자리를 구했다. 과거 2~3년간 해온 일인데 지원자가 많다 보니 올해 초에 탈락했다가 이달 들어 다시 시작하게 됐다. 아들의 사고가 난 8일은 아버지 김씨가 약 1년 만에 복지관에 다시 출근한 날이었다.


선담은 채윤태 기자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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