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한 섬, 두 개의 태양이 유혹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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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대청도
조각 같은 해안 절벽 모서리 걷다 만난 절경
모래사막, 대청부채꽃 핀 해변, 적송 산책길 지나
1시간 기다린 해넘이는 방아깨비와 함께
‘천의 얼굴’ ‘천혜의 비경’ 인천 옹진군 대청도 여행
지난 22일 오전 대청도 조각바위 언덕. 김선식 기자 |
대청도(인천광역시 옹진군 대청면)는 백령도 바로 아래 있다. 백령도(45.83㎢)에 견줘 땅은 4분의 1 크기(12.63㎢)다. 멀고 작은 섬이지만 자원은 많다. 섬 전체가 낚시터라 불릴 만큼 앞바다에는 조피볼락(우럭), 쥐노래미, 홍어, 미역 등 수산물이 많이 잡힌다. ‘크고 푸른 섬’(대청도)이란 이름은 섬에 나무와 숲이 많아 생겼다고 한다. 지난 21일 오후 1시30분 백령도를 출항한 여객선 코리아킹호(534톤급)가 20분 만에 대청도 선진포 선착장에 도착했다. 차를 몰아 섬 북동쪽으로 달렸다. 작은 섬은 여러 얼굴을 하고 있다. 푸르디푸른 대청도에 있다는 모래사막으로 가는 길이었다.
옥죽동 모래사막은 안내판 절반이 모래에 묻혀 있었다. 아래쪽에 그려놓은 지도는 보이지 않았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자생적으로 모래 산이 쌓여 ‘한국의 사하라’라고 불리는 곳다웠다. 사막은 길이 1.6㎞, 폭 600m, 해발 40m가량 규모로 모래 산이 쌓여 있다. 백사장 주변이 아니다. 사막 모래 산에선 저 멀리 해변과 산등성이가 내려다보인다. 사막 한복판에서 낙타 네 마리를 보곤 웃음이 났다. 모형 쌍봉낙타와 단봉낙타를 골고루 데려다가 한 줄로 세워 사막에서 먼 길을 떠나는 낙타 가족의 느낌을 살렸다. 모래에 푹푹 빠지는 발을 옮기며 사막을 걷다 보면 이 작은 섬에 모래 산이 쌓인 내력이 궁금해진다.
지난 21일 대청도 옥죽동 모래사막. 김선식 기자 |
주변 해변(미아동·농여·옥죽동·대진동 해변)들에서 대대로 모래가 날아와 쌓였다고 한다. 주민들은 오래도록 모래바람에 시달렸다. 옥죽동엔 ‘모래 서 말은 먹어야 시집간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모래바람이 심하단 뜻이다. 주민들은 약 30년 전 사막 가장자리에 방풍림을 조성해 모래바람을 줄였다. 그 뒤로 모래가 점점 줄어 현재의 규모 정도만 남았다. 대청도에서 나고 자란 김옥자 대청면 문화관광해설사는 “예전엔 모래 산이 더 넓고 높아 섬 남부 바닷가 답동 해변 근처에서도 모래 산이 보일 정도였다”고 말했다. 환경부는 지난 6월28일 옥죽동 모래사막의 역사·생태적 가치 등을 고려해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했다.
모래사막과 해변은 차로 5분 거리였다. 오후 3시, 물 빠진 농여해변엔 비가 내렸다. 해변 따라 멀리 듬성듬성 서 있는 기암괴석들이 발길을 유혹했다. 여행객들은 우산을 받쳐 들었다. 농여해변 ‘나이테 바위’를 지나 미아동해변에 맞닿은 곳까지 약 500m 거리를 망설임 없이 걸었다. 여행객들은 거대한 바위 앞에서 거의 같은 말을 주고받았다. “저기 한 번 서봐.” “나 여기서 한장 찍어줘.”
대청도 농여해변 ‘나이테바위’ 앞을 걷는 여행객들. 김선식 기자 |
물이 빠지면 농여해변은 미아동해변과 이어진다. 미아동해변은 ‘물결무늬’ 해변이다. 밖으로 드러난 모래사장은 바람 방향 따라 물결치듯 무늬가 굴곡을 이룬다. 왼편 절벽엔 수억년 전 새겨진 물결무늬가 남아 있다. 그 절벽 틈에선 대청부채(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가 자라고 있었다. 잎이 부채 모양으로 펼쳐진 대청부채는 매일 오후 4시 무렵 연분홍 꽃을 피운다고 했다. 오후 3시50분, 대청부채는 아직 꽃봉오리를 열지 않았다. 절벽 틈 대청부채에 바짝 다가갔다. 꽃이 피는 찰나를 기다렸다. 10분쯤 지났을까. 꽃망울이 ‘툭’(‘스르륵’이 아니다) 터지듯 열렸다. 마치 계획한 대로 결심을 실행한 듯.
지난 21일 대청도 미아동해변 ‘물결무늬’ 절벽 틈에서 피어난 대청부채 꽃. 김선식 기자 |
대청도를 돌아다니면 적송이 유난히 눈에 자주 띈다. 그중 서남부에 있는 모래울해변 뒤편 언덕은 소나무가 군락을 이룬 곳이다. 수령 100년 안팎에 키 20~25m 소나무 150그루가 있다. 나무들을 따라 약 300m 산책길이 나 있다. 나무들은 번호표가 붙어 있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다. 기품 있게 가지를 뻗은 소나무 사이로 모래울해변에서 뛰노는 사람들이 보였다. 수묵화 안에 풍속화가 담긴 것 같은 풍경이다. 산책로가 끝나는 지점부턴 다시 해변을 따라 되돌아올 수 있다.
소나무 군락지에서 바라본 모래울해변. 김선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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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한 산등성이도 막상 들어가 보면 어마어마한 풍경이 펼쳐질 때가 있다. ‘대청도 최고의 비경’이라 불리는 서풍받이 도보여행 길이 그랬다. 서풍받이는 모래울해변이 끝나는 지점 우뚝 솟은 절벽 바위다. 강한 북서풍을 막아주는 바위라는 뜻으로 이름 붙었다. 그곳부터 남쪽 해안 절벽을 따라 길이 있다.
해무가 불어오는 모래울해변 풍경. 김선식 기자 |
지난 22일 아침 8시20분, 모래울해변 근처 광난두정자각 옆으로 난 산길로 접어들었다. 평범한 산속 오솔길에선 산뜻한 풀 향기가 났다. 꽤 가파른 오르막길을 수차례 올라야 했다. 10~20분 걸을 때마다 절벽 아래 바다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나타났다. 제1 하늘 전망대를 지나면 앞바다 대갑죽도가 보이는 전망대가 나온다. 대갑죽도는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의 얼굴 옆모습을 닮았다. 예로부터 대청도 사람들은 이 섬이 하늘에 어민들의 무사귀환을 빌고 있다고 믿었다.
지난 22일 대청도 서풍받이 도보여행 길에 있는 조각바위 언덕 근처에서 바라본 풍경. 김선식 기자 |
곧 날카로운 능선이 번개처럼 꺾여 바다를 따라 뻗어 나가는 길을 만났다. 해안 절벽 모서리를 따라 걷는 길이다. 그 끝에 조각 바위 언덕이 있다. 과거 언덕은 폭풍에 파도가 넘쳐흘러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한다고 했다. 대신 거센 파도와 바람은 해안 절벽을 이루는 거대한 바위를 조각 작품으로 빚어냈다. 날카로운 칼로 한 땀 한 땀 칼집을 낸 듯한 섬세한 줄무늬가 지나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곳에선 육지에서 수백 킬로미터 벗어나 섬의 끝자락에 서 있단 걸 실감할 수 있다. 언덕 좌우와 앞산 넘어 모두가 바다다. 섬 풍경을 섬 안에서 한눈에 바라보는 기분이다. 제2 하늘 전망대를 거쳐 마당바위까지 이르는 총 2.6㎞ 산길은 왕복 2시간가량 걸린다.
해넘이 전망대에선 기름아가리 절벽이 내려다 보인다. 김선식 기자 |
전날 해넘이를 본 건 행운이었다. 지난 21일 오후 5시, 광난두정자각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해넘이 전망대에 도착했다. 구름 낀 하늘에도 해안 절벽은 절경이었다. 홀로 고고하게 떠 있는 독바위와 항아리 모양으로 바다를 안고 있는 기름아가리 절벽이 양쪽으로 펼쳐졌다. 바다는 청록색이다. 모래울해변을 기준으로 위쪽은 모래 해변, 이곳 아래쪽은 몽돌해변이다. 수평선에 낮고 짙게 깔린 구름은 떠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다 해넘이 보길 포기한 채 차를 돌렸다. ‘혹시 해가 구름을 뚫을 수 있지 않을까?’ 실낱같은 기대는 점점 부풀어 올라 차는 어느새 농여해변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맘때 농여해변에선 해가 수평선 정중앙으로 떨어진단 얘길 들었다.
지난 21일 대청도 농여해변 앞바다에 태양이 황금빛을 입혔다. 김선식 기자 |
옥죽동에 있는 한 헬기장에서 다시 해넘이를 기다렸다. 해가 점점 떨어지더니 두 개의 태양이 떴다. 하늘에 하나, 바다에 하나. 누군가 돋보기로 바다에 햇빛을 모은 듯 황금빛이 덩어리째 수면에 떨어졌다. 물 들어찬 바다 한가운데 ‘풀등’(물속에 모래가 쌓여 수면 위로 드러난 곳)은 길게 누워있었고, 수평선은 햇빛 가루를 뿌린 듯 반짝였다. 해가 수평선 바로 위 낮게 깔린 구름을 뚫길 기다리며 바닥에 주저앉을 때 반석에 앉아 있는 방아깨비를 봤다. ‘방아깨비도 풀숲을 탈출해 잠시 섬(반석) 여행을 왔나’ 생각하며 소리 내지 않고 가만히 앉았다. 1시간쯤 그렇게 같이 앉아 있었을까. 마지막 붉은빛을 토하는 해가 기적처럼 구름을 뚫고 수평선에 걸렸다. 멀고도 작은 섬 대청도는 가슴 저릴 만큼 강렬하고도 더없이 평온한 시간이 흘렀다.
지난 21일 대청도 옥죽동에 있는 한 헬기장에서 바라본 해넘이와 방아깨비. 김선식 기자 |
대청도 여행 수첩
대청도 ‘솔밭나루터펜션식당’ 자연산 우럭회. 김선식 기자
- 가는 길 : 안개가 많은 날, 배가 뜨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미리 안개주의보 등을 확인해야 한다. 인천항연안여객터미널에서 대청도 선진포 선착장까지 배로 3시간20분~3시간40분 걸린다. 인천항에서 아침 7시50분(하모니플라워호), 8시30분(코리아킹호), 오후 1시(웅진훼미리호) 하루 총 3차례 출항한다. 소청도를 거쳐 대청도로 들어간다. 대청도에서 인천까지도 아침 7시25분(웅진훼미리호), 오후 1시10분(하모니플라워호), 오후 1시55분(코리아킹호) 하루 3차례 출항한다. 배편은 여객선 예약 누리집 ‘가보고 싶은 섬’(island.haewoon.co.kr)에서 예매할 수 있다. 편도 6만3200원(인천~대청도·하모니플라워호 기준). 차량은 하모니플라워호만 적재할 수 있다.
- 렌터카 : 대청도 여행은 대중교통보다 승용차를 이용하길 권한다. 대청리에 있는 엘림여행사(032-836-8367)에서 하루 10만원(자차보험·주유비 포함)에 빌릴 수 있다.
- 숙소 : 선진포 선착장 근처 숙소들이 많다. ‘하늘민박’(032-836-2588)은 시설이 깔끔하다.(온돌방 5만원) 농여·옥죽해변 근처엔 ‘엘림펜션’(032-836-8367)이 있다.(5만원)
- 식당 : 대청도는 해산물과 회가 유명하다. ‘솔밭나루터펜션식당’(032-836-8999·대청리 362-37)은 조피볼락(우럭) 회 한 접시와 지리·매운탕을 포함해 6만원. 선착장 근처 아침 식사 할 수 있는 식당은 ‘섬 중화요리’(032-836-2121·대청리 386-7)가 있다. 백반 8천원.
대청도(인천)/글·사진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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