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공정’이 제일 중요할까
[이준희의 여기 VAR]
트랜스젠더 선수 리아 토마스가 지난 3월18일(한국시각) 미국 애틀랜타에서 열린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수영 대회에서 열린 여자 수영 200야드 경기를 마친 뒤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애틀랜타/AP 연합뉴스 |
오늘날 한국 스포츠에선 ‘공정’이 가장 신성한 가치다. 굳이 한국 스포츠로 한정한 건, 여기에 한국적 특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지난해 일본 도쿄에서 총회를 열고 127년 동안 모토였던 “더 빨리, 더 높이, 더 힘차게”에 “다 함께”를 추가했다. “더 공정하게” 같은 말은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물론 공정은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스포츠에서 공정을 다른 어떤 가치도 넘어서는 최우선 기준으로 여기는 풍조엔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왜 우리는 유독 공정에 집착할까? 그건 스포츠를 오로지 경쟁이란 틀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스포츠가 곧 경쟁을 뜻하는 사회에선 공정이 핵심 가치가 된다.
사실 이런 시각은 한국 스포츠가 얼마나 엘리트 체육을 중심으로 갇힌 사고를 하는지 보여준다. 스포츠가 오로지 경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자녀와 캐치볼을 하면서 엄격한 규칙을 적용하고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진 않을 터다. 친구들과 골프를 칠 때도 경쟁보다는 친교에 방점을 둘 가능성이 크다. 다만 그런 생활 체육은 스포츠라고 여기지 않을 뿐이다.
한편, 최근 국외에선 트랜스젠더 여성이 여성부 대회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크다. 이 문제는 ‘공정과 포용’이라는 두 가지 가치를 두고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만약 일부 트랜스젠더 여성이 시스젠더(생물학적 성별과 심리적 성별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 여성이 태생적으로 넘어설 수 없는 신체적·운동적 우위를 가지고 있다면, 이들의 대회 참가가 공정을 해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스포츠계가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형평에 어긋나지 않는 적절한 참가 기준을 마련하려 노력하는 이유다.
그러나 동시에 포용적 관점에서 트랜스젠더가 스포츠 활동을 통해 얻는 행복과 건강 등 기본권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특히 국제 대회 등에서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면, 지역 사회 스포츠에서도 그들이 배제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이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실제 국제올림픽위원회를 비롯해 국제 스포츠 기구들은 주로 포용에 방점을 두고 이 문제를 고민했다. 참여를 보장하면서도, 공정을 해치지 않을 방법을 찾기 위해 애썼다.
이렇듯 두 중요한 가치 사이에서 신중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문제지만, 한국에선 유독 포용은 사라지고 공정만 깃발을 휘날린다. 이 때문에 트랜스젠더 여성의 대회 참여는 진지한 논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다. 포용이 없고 공정만 있는 세계에선, ‘공정을 해치면 빠져야 한다’는 거부와 배제 논리가 작동하기 쉽다. 우리가 두 가치를 함께 고려해야 하는 이유다.
물론 사람들이 공정을 유독 강조하는 걸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다. 한국 사회는 스포츠뿐만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 제대로 된 공정이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한 것 또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빡빡한 삶 속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나라에서, 온갖 수단으로 특혜를 누려온 특권층 민낯을 마주해야 했던 이들이 ‘공정이라도 지켜달라’고 절규하는 걸 누가 탓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한 번쯤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다. 어린 시절 친구와 함께 뛰놀며 즐겼던 공놀이에서도 정말 공정이 제일 중요했느냐고. 그 원초적 즐거움을 더 많은 사람과 누리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해야, 우리 스포츠가 마주한 많은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