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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멍, 바다멍 그리고 명상…모든 시름 벗는 힐링의 명소, 낙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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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 낙산사 템플스테이 체험


동해 바라보는 아름다운 사찰


20~30대 힐링 여행지로 주목


바다멍·숲멍에 명상하기 최적

한겨레

강원도 양양 낙산사의 홍련암.

바쁘고 빠르게 흘러가는 삶을 살다 보면 나를 잃을 때가 있다. 생채기가 나고 지친 마음을 돌보지 못하고 지나친다. 그럴 때 우리에겐 고요한 휴식이 필요하다. 치유와 휴식이 더욱 간절한 코로나 시대, 템플스테이가 나를 위한 힐링 여행으로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사찰 체험 프로그램인 템플스테이는 속세를 벗어나 산사에서 휴식과 명상을 하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 진정한 쉼의 시간을 찾아, 지난 1일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로 템플스테이 체험을 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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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 정문으로 향하는 길에는 쭉 뻗은 소나무가 서 있다. 짙은 솔향과 싱그러운 풀냄새가 가득하다. 녹색의 환대를 받으며 걸어가면 낙산사 화재 전시관이라는 팻말이 보인다. 1340여 년 전 의상대사가 창건한 낙산사는 2005년 4월 큰 산불로 대부분의 전각이 불에 탔다. 화재 전시관에는 화재로 녹은 범종, 누각 등이 전시돼 있다. 낙산사의 아픈 역사가 기록된 공간이다.


화재 전시관을 돌아보고 다시 걸으니 홍예문이 보였다. 조선 시대에 세워진 석문으로, 강원도 26개의 고을이 힘을 모아 화강석 26개를 무지개 모양으로 조성한 것. 석문 위엔 1963년에 건립한 문루가 있는데 2005년에 발생한 산불로 소실되었다가 2007년에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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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통보전과 칠층석탑.

홍예문을 통과하면 오른쪽에 템플스테이를 하는 사람들이 지내는 취숙헌이 있다. 이곳은 템플스테이 체험객들을 위한 숙소와 식당, 샤워실이 있는 공간이다. 낙산사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해 휴식형 템플스테이(1박 4만원)만 진행하고 있다.


오후 2시가 지나자 템플스테이를 신청한 9명이 모였다. 다들 방을 배정받고 템플스테이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곳에서는 입소식을 할 때 휴대전화를 반납해야 한다. 디지털 기기에 매여 사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디지털 디톡스’의 한 방법이다. 사찰에서 지내는 동안 오로지 나를 찾는 시간을 보내라는 것.


낙산사 템플스테이 문혜영 내국인 실무자를 따라 사찰 탐방을 했다. 홍예문에서 시작해 사천왕문, 원통보전, 해수관음상 등 낙산사의 역사와 특징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찰에는 문화재가 많다. 보물 제1362호인 건칠관음보살좌상, 보물 제499호인 칠층석탑,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6호인 홍련암 등이 있다. 특히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동굴 속으로 들어간 파랑새를 따라가 석굴 앞 바위에서 기도하다 연꽃 위의 관세음보살을 보고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때문에 낙산사 템플스테이의 주제가 꿈과 희망을 상징하는 ‘파랑새를 찾아서’이다.


낙산사 템플스테이 이혜원 팀장은 “낙산사 템플스테이에 연 4천~5천명이 찾는다. 20~30대 젊은층이 가장 많이 온다”고 말했다. 서핑의 성지로 떠오른 양양은 이제 힐링 여행지로도 젊은층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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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사의 꿈을 이루는 길에 있는 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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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지에서 온 관람객들이 쓴 소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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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사이로 보타전과 해수관음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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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형 템플스테이라는 명칭처럼 참가자들은 진정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하루 세 번의 예불 등은 선택 사항이다. 정해진 식사 시간과 밤 9시 방 소등만 지키면 된다. 낙산사에는 혼자 멍때리기 좋은 장소가 곳곳에 있다. 템플스테이 숙소인 취숙헌 마당에는 넓은 평상이 있어 ‘숲멍’하기 좋다. 날씨가 좋은 날 누워 햇볕을 쬐기에도 최적이다. 일출 명소인 의상대는 ‘바다멍’을 하기 좋다. 바로 앞에 보이는 바다를 보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쉴 수 있다.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면 관람객이 없는 한적한 사찰을 거닐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새벽과 저녁 시간 사찰 곳곳을 조용히 산책하기 좋다.


숙소에는 〈가만히 눈을 감고: 108 명상집 〉이 놓여 있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지금 이 순간 그대의 발밑에 떨어져 있는 행복부터 주워 담으세요(틱낫한 스님)’,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면 자기 자신을 잘 보살펴라. 인생의 세 번 가운데 단 한 번만이라도 자기 자신을 분명히 지켜봐라’(법구경) 등 한 줄 한 줄 곱씹으며 명상을 하기 좋은 글귀가 담겨 있다.


사찰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은 새벽이다. 지난 2일, 템플스테이 둘째 날 새벽 4시. 새벽 예불을 하는 홍련암으로 향했다. 사람이 없는 길을 따라 걸으니 “철썩철썩 철썩철썩” 파도 소리만 들렸다. 홍련암엔 새벽 예불을 올리는 사람 두 명뿐. 어둠이 깔린 적막한 새벽에 염불 소리와 목탁 소리, 파도 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세파에 찌든 마음이 씻기는 듯했다.


예불이 끝나고 새벽 5시가 지나자 빨간 해가 바다에서 천천히 떠올랐다. 어둠을 밀어낸 해는 바다의 풍경을 조금씩 드러냈다. 바다의 배, 파도의 움직임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그들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해의 밝은 기운을 받으며 소원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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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플스테이 숙소인 취숙헌 마당. ‘숲멍’하기 좋은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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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관음상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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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대에서 본 해돋이의 풍경.

낮 12시가 지나자 낙산사에 운무가 짙게 깔렸다. 바다에서부터 올라온 운무가 바람길을 따라 사찰 곳곳을 감쌌다. 사찰에 온 관광객들이 “여기가 신세계”라며 감탄했다. 사찰에서 만난 운무는 전날과 다른 풍경을 만들었다. 법당, 바다, 석탑의 모습을 뿌옇게 만들며 신비로운 풍경을 그렸다.


낙산사는 지난해부터 사찰 곳곳에 무료로 소원지를 다는 행사를 하고 있다. 전국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쓴 소원지가 바람에 펄럭였다. ‘로또 당첨 기원합니다’에 싱긋 웃음이 났지만, ‘가족 건강하게 해주세요’·‘시험 합격 기원’·‘예쁜 아기를 만나게 해주세요’란 글귀에서 절실한 염원이 느껴졌다.


3대 관음기도 성지로 꼽히는 낙산사에서는 이처럼 누군가가 남긴 간절함의 흔적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그중 한 곳이 ‘꿈이 이루어지는 길’이다. 숲이 우거진 그 길에 돌탑이 쌓여 있고 소원지가 걸려 있었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면 해수관음상으로 향한다. 이곳 역시 관람객들이 기도를 많이 하는 장소다. 복전함 아래에 다리가 세 개인 두꺼비 석상이 있다. 이걸 만지면 두 가지 소원이 이뤄진다고 해서 사람들이 두꺼비를 만지고 간다. 사람이 하도 만져서인지 두꺼비의 등이 만질만질하다.


천천히 걸으며 사찰을 둘러봤다. 10여년 전 관광객으로 잠시 들렀던 이곳이 새롭게 보였다. 사찰의 중심 법당문을 보면 대부분 멋진 꽃살문으로 돼 있다. 꽃살문의 문양은 보통 모란, 국화, 연꽃, 매화 등이 소재로 활용된다. 연꽃을 비롯한 꽃은 깨달음의 상징이기도 하다.


사찰 돌계단 옆에 ‘조고각하’(照顧脚下)라고 쓴 글귀를 발견했다. 다리 아래를 잘 살피라는 뜻이다. 사찰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데 법당, 스님들의 처소, 외부인이 머무는 곳 등 곳곳에 있다. 이 글귀는 삶의 자세를 돌아보라는 심오한 뜻을 품고 있다. 혼탁한 세상에 휩쓸려 살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살 수 있도록 언제나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잘 살피라는 것이다.


“둥둥둥, 둥둥둥.” 저녁 예불이 시작되기 전 웅장한 법고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끌려 북을 치는 곳으로 향했다. 한적한 산사에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내 마음도 두드렸다. 소란한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울림이었다. 북소리와 함께 산사에 어둠이 깔렸다.


글·사진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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