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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고, 머물고 싶었던 ‘나의 집’

서촌 옥인연립 이주연, 민용준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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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 싱크대의 하부장 문짝은 집에 원래부터 있던 40년 묵은 고재를 써서 만든 것이다. 사진 윤동길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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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인연립 거실에서 고양이와 함께. 이주연(왼쪽), 민용준씨. 사진 윤동길 스튜디오어댑터 실장

―어떻게 서촌에서, 그것도 옥인연립에서 살게 되셨는지요?


이주연(이하 이): <ktx매거진>에서 기자로 일할 때 서촌 지킴이로 활동하던 로버트 파우저 교수님을 서촌에서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서촌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죠. 결혼 전에 남편 회사는 신사역, 제 회사는 안국역 인근이어서 지하철 3호선 라인의 옥수, 약수, 금호쪽의 집을 알아보고 있었죠. 그러다가 서촌을 떠올리게 되었고, 이곳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2013년 결혼하면서 얻은 첫 집에는 해가 잘 들지 않았기 때문에 맞은 편에서 해를 온전히 받고 서 있는 남향의 옥인연립을 보면서 저곳에서 살면 어떨까 생각 했어요. 망설이다가 결국 1979년 건축된 뒤에 조금도 고치지 않은 이 집을 만나게 되면서 전면 수리를 하고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오래된 집이 많은 동네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민용준(이하 민): 변화가 크지 않은 안정감이 있어요. 도심 같지 않은 느낌이죠. 마을버스를 타고 나가면 또 바로 광화문, 시청까지 곧바로 갈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 저희는 둘 다 면허가 없거든요. 저희 같은 뚜벅이들이 선택하기 너무 좋은 집이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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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이 잘 드는 거실 모습. 천장에는 리모델링을 맡은 어반프레임 서재원 대표가 선물한 모빌이 달려 있다. 사진 윤동길

―모두가 좀 더 좋은 새 아파트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 시대에 유독 문화예술계 사람들 다수가 서촌에서 살고 있어요. 그래선지 이 오래된 동네가 거주지로 눈길을 받고 있고요.


민: 서촌에는 문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 계통과 교류하는 사람들도 꽤 많이 계세요. 잡지 에디터 출신, 기자, 작가나 영화감독님 들도 여러 분 살고 계시죠. 이 동네가 주목받는 이유는 글쎄요, 남들이 안 할 것 같은,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해서일까요?


―이 집 수리는 어떤 식으로 컨셉을 잡으셨나요?


이: 집 리모델링은 제가 예전 신사동 가로수길에 가게를 차렸을 때 인테리어를 해주신 어반프레임 서재원 대표님이셨는데, 이번에도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른 분이셨죠. 이 집의 포인트 컬러를 주황색으로 하고 싶었는데 넓지 않은 집이라면 노란색이 나을 것이라고 하셔서 변경 되었어요. 거실의 노란색 모빌도 소장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고요. (웃음) 집은 개방형 구조로 벽과 기둥을 거의 텄어요. 현대인의 관념에서 보자면 이해하기 어려운 집이죠. 19평짜리 집 안에 방이 세개나 있었고 앞뒤로 베란다까지 있었거든요. 주방 옆에는 집안 일을 도와주는 사람이 쓸 법한 작은 방이 붙어 있었어요. 지금은 낡았지만 지어질 당시만 해도 고급주택 같은 느낌이었던 거죠.


민: 두 식구였기 때문에 이 집의 크기라면 딱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는 예상밖에, 집 잃은 길고양이를 들여 와 함께 살게 됐지만, 두 사람 사는 데 방은 하나 정도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 침실을 제외하곤 벽을 최소화하게 되었죠. 결과적으론 잘 한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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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의 유일한 방인 침실. 천장의 박공구조를 살려 지루함에서 벗어났고,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진 윤동길

―집을 전면적으로 공사하셨는데, 그 동안 이웃 어르신들께서 항의도 꽤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그 어르신들과 지금은 잘 지내고 있어요. (웃음) 그분들은 옥인연립이 지어지던 1979년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사신 것이고 저희는 이제 고작 햇수로 5년 산 거니까 배울 점이 많아요. 저희가 나무 이름이나 이 동네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으면, 메모장에다가 궁금한 것들을 적어놨다가 만나면 여쭤보기 해요.


민: 지내다 보니 어르신들께서 어떤 역할을 하시는지 알겠더라구요. 마치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옥인연립을 지키는 파수꾼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동네가 약간 아이러니한 게, 단지는 11개 동으로 꽤 큰 편이지만 관리사무소도 경비원도 없는 거예요. 누군가가 앞장서서 해야만 돌아가는 일도 있는데, 말하자면 쓴소리 하는 역할을 맡는 분이신 거죠. 오래 살다보니 ‘아, 필요한 역할을 하는시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음)


―손님들이 방문했을 때 꼭 소개해주시는 공간이 있나요?


민: 딱히 강조하는 부분이 없긴 한데, 단 한 가지, 주방 싱크대의 하부장 문짝은 집에 원래부터 있던 40년 묵은 고재를 써서 만든 거라고 설명을 해 드려요. 저희 집의 서사가 담겨 있는 거죠. 이 집 옥인연립의 원래 형태는 대부분 버렸지만 그래도 간직하고 있는 하나의 부분이 있달까, 집의 역사를 대변하는 일부의 흔적이라도 있다는 것을 얘기하는 게 재밌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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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서 작업실과 응접 공간을 가르고 있는 책장. 영화 관련 자료들이 빼곡하다. 사진 윤동길

이: 사실 이 식탁도 가져오는데 고민이 많았거든요. 집에 손님들을 초대해서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을 좋아하니 식탁이 8인용은 되어야겠다 싶어서 공방에 주문해서 특별히 만든 것인데, 작은 주방에 이 큰 식탁을 놓자니 망설여졌어요.


민: 업보 같은 거죠. (웃음) 원래는 주방에 작은 식탁을 놓으면 공간이 더 넓어보일 거란 생각을 했거든요.


이: 다행히도 저 하부장 문 덕분에 식탁과 주방의 분위기가 정돈이 되었어요. 저 문이 없었다면 이 테이블도 가져올 수 없었을 거예요. 전체적으로 가볍지 않은 분위길 낼 수 있게 된 셈이죠.


―이 집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이 있다면요?


이: 저 같은 경우엔 사실 손님들이 오셨을 때 집 안의 무엇을 보라고 하기보다는 창으로 보이는 뷰를 말씀드려요. 너무 예쁘거든요. 주방에는 두충나무 두 그루가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고, 거실쪽으로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약간 거리감 있게 서 있어요. 양쪽의 경관이 다른 거죠. 집보다는 오히려 집을 통해 볼 수 있는 바깥 풍경을 감상하라고 말씀드려요.


민: 계절이 바뀌면 색감이 확실히 달라집니다. 자연의 병풍이 바뀌는 느낌도 있죠. 그리고 주방쪽은 길이 가까워서 집 안에 있는데도 바깥이랑 소통하는 느낌이 약간 묘하게 재미있는 거 같아요. 그 외엔 층고가 높은 부분을 만족하는 편입니다. 맨 꼭대기층의 잇점인 천장의 박공구조를 살렸어요. 집이 좁아보이지 않는 이유가 층고가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구조적으로 보는 재미가, 살면서도 없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고보니 집안에 세모, 네모, 동그라미 등 여러가지 도형들이 있어서 단조롭지 않네요. 두분이 원래 꿈꾸던 집이 있었나요?


이: 저는 고향에선 부모님과 계속 아파트에만 살았거든요. 그땐 저층이었기 때문에 나무가 가까이 보였고, 아파트에서 사는 느낌이 어떤 건지 모르고 살았어요. 그러다가 서울로 와서 한강뷰가 보이는 고층 아파트에서 오빠와 살게 되었어요. 웃돈을 내고도 오려고 한다는 그런 집이었는데, 저는 너무 싫은 거예요. 땅에 발을 딛지 않은, 붕 뜬 듯한 그런 불안감이 좀 있었어요. 당시 어떤 건지 잘 몰랐는데, 땅이랑 닿아 있는 집이 저한테는 좋은 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민: 사실 코로나 이전까지는 그렇게까지 이 집의 기능을 잘 모르고 있었다가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니까 집의 장점을 체감하게 되었죠. 딱히 집에서 밖을 안 나가도 고립된다는 느낌이 안 들었어요. 집 자체는 아늑한데, 바깥이랑 중계되는 느낌에다 계속 풍경이 변하고 그러다보니 이 집에 머무는 시간 자체가 지루하지 않고 편안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삶의 안정감을 위해서 집을 물리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집을 내가 잘 소유하지 못하면 불안하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죠. ‘내 집’이라는 것이 재산가치의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삶에서 최소한의 안락함을 의미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 집을 샀을 때는 어느정도 그런 부분이 충족되는 만족감이 있었죠. 구조적, 기능적으로 봤을 때 이 집은 살고 싶던 집이었어요. 머물고 싶은 집이기도 했구요. 그런 의미에서 무척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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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의 주조색인 노랑으로 칠한 현관 문. 사진 윤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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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오른쪽), 민용준씨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윤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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