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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울림따라 맛 수행한 괴짜 요리사, 임지호를 추모하며

한겨레

고 임지호 선생. <한겨레> 자료 사진

생쌀 김밥을 아시는가? 익히지 않은 쌀을 불린 후, 그 위에 여러 가지 꽃잎과 채소를 올리고 돌돌 만 다음 조금 도톰하게 썬 김밥이다. 보기엔 더없이 아름답지만, 먹기엔 그것만큼 불편한 게 없다. 만든 이가 “몸에 좋을 것”이라고 한 말에 고무되어 우걱우걱 씹었지만, 잘 넘어가지 않는 식감에 낯설었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20년 전 일이다. ‘굳이 이렇게 해서 먹어야 하나’ 했다. 만든 이는 임지호 선생. 그가 12일 오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65. 이른 나이다.


그는 떠났지만, 잔상은 또렷하다. 몇 차례 그를 인터뷰한 내용은 글자로, 녹음파일로 남아있다. <인간극장>(KBS·2006), <방랑식객 식사하셨어요?>(SBS·2013), <잘 먹고 잘사는 법, 식사하셨어요?>(SBS·2014~2016) 등에 출연하면서 대중의 사랑을 흠뻑 받았던 그는 독특한 캐릭터와 비범한 요리 철학으로 여느 요리사와 다른 궤적을 남겼다. 그가 세상과 이별했다는 소식에 굳게 잠겨 있던 기억의 자물쇠를 풀어봤다.


2011년 말, 서울 인사동 리서울갤러리에서 전시 ‘방랑식객 임지호의 자연과 생명’이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두 번째 전시였다. 요리 실력을 닦았던 경기도 양평을 떠나 강남구 청담동에 새 둥지를 꾸린 때였다. 보금자리는 호화롭고 문턱이 높았다. 한끼 식사비가 30만원이 넘었다. 궁금한 게 많았다. 왜 칼 대신 붓을 잡았는지, 하필 고급 레스토랑의 사치스러운 각축장인 청담동에 터를 잡았는지 등이 말이다. 그를 만났다. 길가 잡초도 음식 재료가 될 수 있다고 말한 이가 그다. 그는 소박한 한끼 자연식의 소중함도 널리 알린 사람이다. 청담동이라니! 물었다. 방송에서 비친 당신의 철학과 다소 괴리되는 곳이 아닌가. 답은 간명했다. “요리학교를 세우고 싶다. 해외에도 한식을 가르치는 곳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필요한 일이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림 그리기에 빠져들면서 숟가락, 나무 조각, 벽돌, 솥뚜껑 등을 붓 대신 사용했다고 했다. 경계를 세우고, 담을 만들어 구분하며 살지 않은 그의 천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선택이었다. 그는 접시도 빚었다. 그릇은 아름다웠고, 그 안에 폭 잠긴 맛과 향은 그릇 밖으로 퍼져 나갔다. 안락한 그릇의 품에 머물기를 거부했다. 그도 그랬다.


재주가 많은 그는 그 모든 것을 독학으로 깨우쳤다. 12살에 가출해 초등학교 졸업장도 겨우 챙긴 그다. 당시 그는 그저 “의식주가 해결되는 곳”이라는 이유로 식당에 취업했다고 했다. 말이 취업이지 20살도 안 된 10대 남자아이가 할 수 있는 건 배달뿐이었다. 서울 소공동, 북창동 일대 식당에 연탄을 배달하면서 주방을 눈에 담았다. 밤이 되면 흐릿한 낮 기억에 기대 음식 만들기에 몰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음식’임을 깨달았다. 20살 때 그는 결심했다. 요리사가 되기로. “음식을 만들다 보면 마음이 편해졌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얼굴조차 모르는 생모, 임종을 못 지킨 양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주워온 아이’란 놀림을 들었던 어린 시절. 상처투성이였던 그가 청와대 만찬 셰프(2017년 문 대통령 기업인 호프 미팅 등) 자리에 오를 정도의 실력자로 성장했지만, 비주류의 서글픔이 옷깃마다 배여 있었다. 요리학교 문턱도 가본 적 없는 그다.


지난해 그를 다시 만났다. 다큐멘터리 <밥정>이 개봉을 앞둔 때였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먹거리로 푼 작품이었다. 그의 음식 철학은 한 숨결 더 정돈되어 있었다. 음식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 복무해야 한다고도 했다. 마냥 몸에 좋다고만 여겼던 오신채 없는 사찰음식에도 단호하게 말했다. “오신채는 수행자에겐 필요 없지만, 노동자에게는 필요하다.” 요리사는 자연과 교감하는 자이며, 그런 이가 만든 요리는 심장을 울린다고 했다.


요리사 임지호는 멀리 떠났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음식을 만들고, 누군가는 그것을 먹을 것이다. 서글픔이 밀려온다. 우리 음식사에 그처럼 괴짜이자, 마음의 울림을 따라 맛 수행을 한 요리사가 또 등장할 수 있을까. 인터뷰에서 그가 한 마지막 말이 생각난다. “인생이란 칼날 위를 걷는 것과 같다. 정신줄 놓으면 자신의 칼날에 베인다.” 부디 하늘에선 평화가 그에게 깃들길.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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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정> 의 한 장면. 사진 하얀소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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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정> 의 한 장면. 사진 하얀소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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