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의 마지막 포옹이 던진 질문…인간과 동물은 얼마나 다른가
프란스 드 발의 동물행동학 역작
“동물, 인지능력과 감정까지 보유”
공감·배려·협력은 사회성 포유류 특징
인간중심주의 벗고 ‘동물성’ 회복해야
“동물도 감정이 있을까?”
개나 고양이를 기르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당연해 물을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그러나 사람 이외의 동물을 본능에 따라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자동장치처럼 간주하는 오랜 전통이 있는 과학계라면 얘기가 다르다. 완강하던 이런 인간중심주의 도그마가 최근 흔들린다. 그 중심에 세계적 영장류학자이자 대중적 저술가인 프란스 드 발이 있다.
그는 3년 전 내놓은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에 이어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을 통해 동물이 인지능력은 물론 깊은 감정을 가진다는 주장을 다양한 연구사례를 들어 설득력 있게 제기한다. 나아가 그는 화해와 공감 능력이 쥐와 돌고래부터 늑대와 코끼리까지 모든 사회적 포유류에서 확인된다며, 인간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해결하려면 인간의 본성에 숨어 있는 ‘동물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동물의 감정에 관한 생각-동물에게서 인간 사회를 읽다
프란스 드 발 지음, 이충호 옮김/세종서적·1만9500원
동물이 사랑, 미움, 두려움, 수치심, 죄책감, 기쁨, 혐오, 공감 등 다양한 깊은 감정을 느낀다는 사실이 미심쩍다면 몇 가지 사례를 보면 좋을 것이다. 꼬리감는원숭이는 물물교환을 좋아한다. 두 마리가 서로 볼 수 있는 실험실에서 연구자가 준 조약돌을 원숭이가 돌려주면 오이조각을 주는 실험을 했다. 원숭이는 보상에 매우 만족했다. 그런데 옆 원숭이에게 더 맛있는 포도를 보상으로 주는 것을 본 직후 자신은 또 오이를 받자, 원숭이는 분노가 치밀어 오이조각을 연구자에게 집어 던지고 우리를 흔들었다. 불공평한 처사에 대한 항의였다. 실험 장면을 담은 영상(유튜브 주소 c11.kr/8zam)은 1500만 조회수를 기록해, 화를 내는 원숭이에서 자신의 모습을 본 사람이 많았음을 알려준다.
이 책의 원제인 ‘마마의 마지막 포옹’은 59살로 노쇠해 죽음을 앞둔 암컷 침팬지 마마와 40년 전부터 알아 온 노교수 얀 판 호프가 만나는 장면을 가리킨다. 마마가 죽은 뒤 공중파 방송을 통해 알려져 큰 감동을 준 이 재회 영상(c11.kr/8zai)을 보면, 누워 있던 늙은 침팬지는 옛 친구를 알아보고 입술을 말아 활짝 미소를 띤다. 이어 목에 팔을 두르고 손가락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지막 정을 나눈다. 둘 사이의 애틋한 감정 교류를 어떻게 부정할 수 있을까. 드 발은 “마마가 사람과 너무나 비슷한 방식으로 얀을 껴안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고 적었다.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고 장기 기억을 하는 인지능력, 무모하게 침팬지 우리에 들어온 이를 안심시키려는 배려, 오랜 친구에 대한 깊은 애정이 이 만남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드 발은 이 책에서 감정(emotion)과 느낌(feeling)을 구분한다. 그는 감정을 “어떤 행동을 하게 만드는 신체적·정신적 상태”라고 정의하면서 “특정 자극을 받아 촉발되고 행동 변화를 수반하는 감정은 표정이나 피부색, 음색, 제스처, 냄새 같은 신체 외부의 특징을 통해 감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감정은 관찰과 측정이 가능하고 보편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과학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대조적으로 느낌은 “그런 신체적인 변화를 인식할 때의 의식적 경험”을 가리키며, 주관적이어서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동물의 감정을 과학계가 그토록 완고하게 부정해 온 이유를 그는 “동물이 느낌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데다, 동물에게 느낌이 있다는 것은 동물에게 인정하고 싶지 않은 수준의 의식이 있다고 상정하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동물이 우리와 아주 비슷하게 행동하고, 생리학적 반응을 우리와 공유하고, 우리와 동일한 표정을 짓고, 같은 종류의 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내면의 경험이 우리와 아주 다르다고 생각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한다.
동물의 감정을 연구할 때 과학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것은 의인화이다. 사람과 비슷한 특성을 동물에 부여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돌고래가 웃는 듯한 얼굴을 하는 것은 얼굴 구조 때문이지 늘 미소 짓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드 발은 오히려 의인화가 아니라 ‘의인화 부정’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인간을 예외적인 존재로 간주함으로써 인간이 하나의 종으로서 어떤 존재인지 솔직하게 평가하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간질임을 당해 숨이 넘어갈 듯이 낄낄거리는 유인원이 간질임을 당하는 어린아이와 다른 마음 상태에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야말로 그 차이가 무언지 우리에게 납득시킬 책임이 있다는 항변이다. 최근 침팬지의 표정을 내는 근육의 수가 사람과 똑같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사람의 얼굴에는 다른 어떤 종보다 많은 근육이 있다는 잘못된 믿음을 근거로, 동물의 감정이 사람보다 단순하다는 주장이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사람만이 이타적인 행동을 한다는 신화도 오래전에 깨졌다. 관절염을 앓는 동료를 위해 물과 음식을 나르는 침팬지를 비롯해 돌고래, 코끼리, 개, 새 등 수많은 사례가 보고된다. 이 책에는 2017년 서울대공원에서 벌어진, 물에 빠진 새끼 코끼리 구조 사례가 실려 있다. 물을 마시려다 웅덩이에 빠진 한 살 난 새끼가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 초보 엄마(13살)가 어찌할 줄 모르자 이모(36살)가 달려와 구조하는 모습(c11.kr/8zlj)이 화제가 됐다. 드 발은 “이모가 직접 구조하지 않고 어미를 앞장세워 새끼 구하는 법을 익히게 하는 모습이 가장 흥미로웠다”고 밝혔다. 이모의 행동에는 이타심과 배려가 실려 있다.
동물에서 확인되는 공감, 배려, 협력의 감정은 사람으로 이어진다. 그는 “사람은 남의 감정 상태에 반응하도록 진화했다”며 “이것은 모든 동물과 인간 사회의 접착제인 사회적 연결성이 최고 수준으로 구현된 것으로, 서로 돕고 위로하는 관계를 보장한다”고 밝혔다. 그는 “인간 사회의 중요한 제도와 성취도 사람의 감정과 긴밀하게 얽혀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연결성과 공감을 바탕으로 인간은 노예제와 아동 노동을 폐지했고, 동정은 보건 제도를, 비통함과 복수심은 사법 제도를 낳았다.
감정은 인간과 영장류뿐 아니라 물고기, 새, 곤충, 나아가 문어 같은 똑똑한 연체동물까지 동물계 도처에서 발견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동물이 감정적 존재라면, 우리가 동물을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자명해진다.
조홍섭 기자 ecothin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