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가운데 멈춰버린 시간···수도권 간이역
수도권에도 가볼 만한 간이역 많아
실물 크기 기차 전시된 화랑대역
옛 신촌역, 과거와 현재의 교차점
옛 일산역은 아이들의 놀이터
이용객이 줄면서 기차가 더는 정차하지 않는 간이역이 있다. 폐역이 된 간이역 중에는 역사를 철거해 흔적조차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 원형을 보존한 역사도 존재한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서울과 인근에 살아남은 역사엔 보물 같은 매력이 숨어 있다. 몇몇 간이역은 보존가치를 인정받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노원구 공릉동에 있는 ‘화랑대역’과 서대문구 신촌동 ‘신촌역’, 고양시 일산에 있는 ‘일산역’이 대표적이다. 세 역 모두 고층빌딩과 아파트가 우거진 도시의 한가운데 있지만, 도시를 닮지 않아 여유롭다.
■ 7080세대의 추억의 놀이터 화랑대역
1939년 경춘선 개통과 함께 문을 연 화랑대역은 내년이면 햇수로 80년을 맞는다. 당시 경인선 등 많은 철도가 일제의 수탈용으로 부설됐지만, 경춘선은 달랐다. 조선총독부가 강원도청을 철원으로 이전하려 하자, 이에 반발한 춘천의 유지들이 사재를 털어 서울에서 춘천까지 연결하는 철도를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개통 당시에는 역 근처 문정왕후 무덤의 이름인 ‘태릉’을 따 ‘태릉역’으로 불렸다. 역사 옆에 육군사관학교가 이전해 온 후인 1958년께 ‘화랑대역’으로 역명이 바뀌었다.
화랑대역은 성동역에서 춘천역까지 연결된 옛 경춘선 노선 중 서울에 있는 마지막 간이역이었다. 7080세대에게 옛 경춘선은 추억 가득한 낭만 열차였다. 당시 대학생들의 단골 여행지는 가평, 강촌 등이었는데, 그곳에 가려면 경춘선에 몸을 실어야 했다. 화랑대역은 청춘들의 만남의 장소였던 셈이다. 경춘선 복선 전철 개통으로 2010년 12월 폐역이 돼 과거 영화는 사라지는 듯했지만, 그 흔적만은 남아 옛 추억을 더듬는 중장년층에게 인기 있는 장소가 됐다. 더구나 녹슬어 가던 철길은 ‘숲길 철도공원’으로 변신해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도심에 지친 이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지난 6일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 4번 출구를 빠져나오자, 옛이야기 가득한 옛 화랑대역이 ‘잘 왔소’라며 반겼다. 보존된 옛 철길은 영화 <건축학개론>의 ‘서연’(수지 한가인)과 ‘승민’(이제훈 엄태웅)위 나들이가 연상될 정도로 고즈넉하면서 아름다웠다. 양쪽으로 길게 늘어선 가로수는 마치 숲 속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줬다. 철도공원 곳곳에 핀 다양한 꽃과 야생초는 도심 간이역 여행의 백미였다. 기차 덕후라면 푹 빠질 것들도 전시돼 있었다. 협궤열차 혀기1호와 체코에서 운행했던 트램, 일본의 노면전차, 은하철도 999에 나올 법한 증기기관차 미카5-56호 등은 볼수록 신기하고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실물 크기가 주는 위력이 대단했다. 이런 이유로 이곳은 사진 촬영 애호가들의 단골 출사지로, 연인 사이에서는 ‘인생 사진’을 남기기 좋은 장소로 명성이 높다. 시간이 멈춘 듯한 역사와 철로, 승차장, 이정표, 에메랄드빛 지붕 등 간이역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세월을 이겨내고 그 옛날 모습을 간직한 화랑대역은 2006년 등록문화재 제300호로 지정됐다. 건축적으로도 주목할 만한 것들이 많았다. 비대칭의 박공지붕(경사가 급한 지붕) 등은 간결했다. 대합실과 매표소, 역무실은 고요했다. 내부는 경춘선과 화랑대역의 추억이 담긴 사진과 유물을 전시하는 화랑대 역사관으로 새 단장 중이다. 10월20일 개관식이 예정돼 있다. 간 김에 육군사관학교도 둘러볼 수 있다. 학교 누리집을 통해 예약하면 된다. 화랑대역 철로 맞은편에는 목공예 체험장인 목예원도 있다. 아이들을 위한 상상 놀이터도 조성돼 있어 화랑대역을 방문한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예약 및 체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노원구청 누리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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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문화유산, 옛 신촌역
옛 신촌역은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간이역이다. 1925년에 세워진 옛 서울역 건물보다 5년이나 앞선 1920년에 세워졌다. 1906년에 개통된 경의선(용산~신의주)에 부속된 역사다. 옛 신촌역은 경기도 장흥 등 서울 근교 유원지로 모꼬지를 떠나는 대학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던 곳이다. 1963년부터였다고 한다. 그해 고양시 능곡에서 의정부로 이어지는 교외선이 개통되면서 신촌역은 사람들이 더 북적이는 곳이 됐다. 통일호에 몸을 실어본 학생이라면 향수의 공간인 신촌역을 잊을 수가 없다. 2004년 교외선이 폐지되면서 추억 제조기와 다름없던 역사의 위상은 옅어졌다. 옛 신촌역은 위기도 있었다. 신촌 민자 역사 건립 얘기가 나오면서부터였다. 하지만 보존 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면서 2004년 12월 제136호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철거는 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또다시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2006년 새로운 민자 역사가 들어서면서 옛 신촌역 일부가 소실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옛 신촌역의 매표소와 역무실이 민자 역사의 출입구와 겹쳤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매표소와 역무실을 반대편으로 옮겨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지난 6일 찾은 옛 신촌역은 주변의 현대식 건물과 대조되는 독특한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1920년대 근대건축물로서 우아함뿐만 아니라 목재 지붕틀, 굴뚝 등에서 뿜어 나오는 은은한 매력은 여행객을 시선을 사로잡았다. 철로와 평행인 역무실과 대합실은 비례감이 두드러져 안정적인 느낌이었다.
2012년 6월부터 옛 신촌역은 지역 관광 활성화를 위해 신촌관광안내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서울시 관광 안내 책자와 서울 주요 지역의 지도가 배치돼 있다. 센터 한쪽에는 서대문구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전시돼 있고, 통근열차 시간표도 그대로 남아 있다. 센터 안에는 안내원이 상주하고 있어 관광 안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신촌관광안내센터는 오전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운영되며 국번 없이 1330으로 연락하면 안내를 받을 수 있다.
■ 독립운동의 현장, 일산역
옛 일산역은 경의선이 개통된 이후인 1932년에 건립된 건물이다. 옛 일산역을 소개하는 안내 표지판엔 한국 근대사에 관한 기록이 적혀 있다. 고양시 일대에서 활동하던 독립 운동가들이 일산역을 거점으로 중국을 오가며 활동했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과 철도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6년 등록문화재 제294호가 지정됐다. 건물은 일자형 평면구조에 십자형 박공지붕을 갖추고 있다. 내부는 크게 대합실과 역무실로 구성돼 있고, 역무실은 다시 매표소와 사무실로 나뉜다. 옛날식 나무 창문의 잠금장치도 예전 그대로다. 기다란 열쇠 같은 쇠막대기를 손으로 돌려서 잠그고 풀어야 한다.
2009년 일산역이 신축되면서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옛 일산역은 폐역으로 남았다. 2015년 11월엔 전시관과 장난감 도서관으로 탈바꿈한다. 철로 쪽에는 벤치와 함께 지역주민들이 쉬어갈 수 있는 쉼터와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한쪽 벽에는 경의선 역사의 옛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지난 6일 찾은 옛 일산역의 전시실에는 정겨운 물건들이 가득했다. 빛바랜 통일호 열차표, 기차가 오갈 때 들었던 수신호기 등 한때 사람들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 간이역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역무원들이 입었던 제복을 입고 모자를 써보니 새삼 그 시절로 돌아간 듯해 기분이 묘했다. 최근 끝난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의 풍경 속으로 들어온 기분이 들었다. 배우 이병헌이 연기한 ‘유진초이’를 금방이라도 만날 것만 같았다. 장난감 도서관엔 주말을 맞아 부모와 방문한 어린이들이 눈에 띄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이곳은 지역 어린이들의 놀이터다. 가득한 장난감은 동심과 만나 기량을 활짝 뽐내고 있었다. 전시관을 둘러보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는다. 100년이 넘는 전통의 일산 오일장과 일산초등학교를 둘러보는 것도 추천한다. 13일엔 어린이 장터 요리 체험, 어린이 보부상 나눔 장터, 부모와 함께 하는 꽃꽂이 체험 등 일산역 문화장터가 열릴 예정이다.
간이역
행정적으로 분류하는 철도역의 하나. 역장을 배치한 보통역과 달리, 역장을 두지 않고 여객 또는 화물을 취급한다. 철도공사 직원이 배치돼 있으면 ‘배치 간이역’, 없으면 ‘무배치 간이역’으로 부른다. 일반적으로는 폐역을 포함해, 작고 조용하고 정겨운 시골 역을 가리킨다. 대부분 간이역엔 일제강점기 수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정민석(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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