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꿀벌 집사들’…“꿀벌님들 편안해야 지구도 편안” [ESC]
[ESC] 커버스토리 윙윙 도시 꿀벌, 윈-윈 양봉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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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꿀벌이 사라지면 국산 딸기는 사 먹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딸기의 경우 인간이 인공 수분을 시키면 기형 확률이 매우 높아지고 이런 것들은 상품화할 수 없기 때문이죠.”
지난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특별시농업기술센터에서 초보 양봉가 27명을 대상으로 한 교육 과정에서 이경용 국립농업과학원 박사가 이렇게 말했다. 꿀벌을 통한 수분이 되지 않으면 흔히 볼 수 있는 부드러운 고깔 모양 딸기 열매가 맺히기 어렵고, 그렇게 되면 상품성이 보장되지 않아 대규모 생산이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딸기뿐만이 아니다. “수박·참외도 먹을 수 없을 겁니다. 꿀벌이 사라져 사람의 손으로 작물의 열매를 맺게 하려면, 생산 단가가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과일 한알에 수십만원을 주고 사 먹을 수는 없잖아요.” 우리가 맛있게 먹는 과일이 완성되기까지 꿀벌은 보이지 않는 조력자였던 셈이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채소의 49.2%, 과수의 42.9%, 특용작물의 35.9%, 곡류의 0.2%가 꿀벌들의 화분 매개로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인간의 셈법으로 가치를 매기자면 우리나라 꿀벌의 가치는 연간 6조8500억원에 이른다. 하지만 꿀벌이 줄어들고 있다. 최근 1년간 한국양봉협회 소속 농가의 꿀벌 폐사율은 61.4%로, 141억마리의 꿀벌이 사라졌다. 꿀벌 실종은 세계적 현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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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 실종 원인은 아직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휴대폰의 전자파 때문에 꿀벌들이 집을 못 찾고 있다거나 특정 농약 성분이 벌들의 위치감각을 교란시킨다는 등의 다양한 가설들이 나왔다. 최근 농법이 고도화되면서 드론으로 농약을 뿌리기 시작했는데, 드론의 미약한 운반력을 고려해 고농도 농약을 쓰게 됐고, 그것이 꿀벌 실종의 원인이 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서울환경연합은 지난 16일 서울시청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벌을 위협하는 치명적 농약 사용을 중단하라’고 서울시에 요구했다. 이들이 지목하는 부분은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 살포다. 지난해 7월 서울환경연합은 서울의 공원·가로수·궁궐 등 공공녹지 공간에서 고독성 농약 살포 금지를 촉구했다. 그뒤, 서울시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이 농약 사용을 금지했지만 여전히 이를 사용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반발했고 서울시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이긴 하지만 꿀벌 독성 표기가 없는 제품”이라고 해명한 상태다. 서울환경연합은 “벌의 실종은 기후변화, 식량위기, 생물다양성과 연결돼 있다”며 “생물다양성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도시에서도 꿀벌과 야생 벌을 비롯한 다양한 꽃가루 매개자의 서식지를 보호하고 증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목하는 꿀벌 실종의 원인은 ‘응애’라는 해충의 확산이다. 응애는 꿀벌에 기생하는 진드기의 일종인데, 작년과 올해 응애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최근 연구에서는 응애에게 살충제 내성이 생겼다고 보고됐다. 지구온난화로 응애가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됐고 그만큼 꿀벌이 줄고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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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속 꿀벌이 실종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양봉을 하거나 배우는 이들이 있다. 서울시청에서 양봉동호회 교육부장을 맡고 있는 이찬희(58) 주무관은 2015년 서울 중구 중부공원여가센터에서 근무할 당시, 남산 자락에서 도시양봉을 시작했다. 당시 테드 강의를 통해 ‘왜 꿀벌이 사라지고 있나’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과 자연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리고 도시양봉에 도전하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이 주무관은 현재 서울 서초구 청계산에서 벌통 20군(벌통 1군당 꿀벌 2만~3만마리 서식)을 기르고 있는 9년차 도시양봉가다. 그동안 중부공원여가센터에서 일반인을 상대로 양봉 교육을 해 80여명의 수강생을 배출하기도 했다.
도시양봉의 매력에 대해 그는 ‘꿀벌과 인간의 독특한 관계맺기’를 들었다. 벌은 가축처럼 울타리를 쳐놓고 나가지 못하게 키우지 않는다. 꿀을 자유롭게 채취하도록 열어놓는다. 꿀벌에게는 인간이 만들어준 서식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대로 집을 나가버릴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꿀벌은 실제로 ‘도거’라고 해서 서식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벌통을 나가버립니다. 나갈 때는 그냥 나가는 것도 아니고, 다른 집을 지을 동안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새집을 짓기 위해 필요한 벌통 안의 꿀을 가지고 나가버려요. 양봉가 입장에선 망연자실한 일이죠.” 이찬희 주무관의 말이다.
꿀벌 시각에서 보면 인간은 서비스업자에 불과하다. 양봉가는 벌에게 쾌적한 주거 환경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일단 자연보다 더 나은 집을 지어줘야 한다. 비가 오면 비를 막아주고, 너무 덥거나 춥지 않게 끊임없이 양질의 서식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름이 되면 천적인 말벌이 찾아오는데, 경호 서비스도 제공해야 한다. 겨울이 오면 꽃이 없으니까, 벌들이 잘 먹을 수 있도록 설탕 같은 당분과 꽃가루도 제공해야 한다. 끊임없는 인간의 서비스가 마음에 들어야만, 쾌적함을 느끼고 벌통에서의 서식을 이어간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는 법. 인간은 그 대가로 꿀을 얻는다. 이런 꿀벌과의 관계맺기에서 도시양봉의 재미가 시작된다. 이 주무관은 “어떻게 하면 우리 ‘꿀벌님’들이 편안할까 궁리하고, 벌과 양봉가가 함께 ‘윈-윈’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내면서 무한한 흥미를 느낀다”고 했다.
번식을 위한 일벌들의 의사결정을 들여다보는 일도 흥미롭다. 꿀벌 집단의 우두머리인 여왕벌은 사실 ‘리더’가 아니다. 환경이 마음에 안 드는데 이 벌집을 나갈 것인가 말 것인가, 어린 일벌들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이런 주요 의사결정은 일벌들이 한다. 일벌은 여왕벌을 죽이거나 내쫓고 새로운 여왕벌을 옹립하기도 한다. 일벌은 자신들의 무리가 커지는 속도에 비해 벌통이 너무 작거나, 여왕벌이 나이를 먹어 산란 능력이 떨어졌다고 판단되면, ‘왕대’라는 새로운 여왕을 키우기 위한 특별한 집을 복수로 만든다. 여기서 새로 나온 여왕벌 ‘후보들’ 또한 서로 여왕벌이 되기 위한 치열한 전투와 짝짓기를 치르고 비로소 한마리가 새로운 여왕이 될 자격을 얻게 된다.
양봉가로서 ‘최상의 꿀’을 맛본다는 즐거움도 도시양봉의 매력에서 빼놓을 수 없다. 도시에서 생산된 꿀은 왠지 중금속과 매연, 미세먼지 같은 것들이 섞여 있지 않을까 우려가 앞선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이 주무관이 도시양봉을 시작하면서 2015년 서울시 보건환경연구원에 도시양봉으로 생산한 꿀의 성분을 의뢰한 적이 있는데, 중금속 수치는 ‘0’이었다. 이 놀라운 결과를 우순옥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꽃이 피어 있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긴 아카시아꽃의 경우에도 개화 기간이 열흘 남짓이기 때문에 꽃꿀이 오염에 노출될 확률은 굉장히 낮습니다. 또 꿀벌은 꽃꿀을 삼켰다가 게워냈다가 삼키는 과정을 수십차례 되풀이하면서 중금속과 미세먼지를 걸러내는 정화 작용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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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고 달콤한 꿀을 맛볼 수 있는 도시양봉이 수월한 일은 아니다. 가장 큰 어려움은 ‘민원’ 발생이다. 꿀벌은 자신의 몸 색깔과 비슷한 노란색 똥을 누는데 양봉장 인근 자동차들이 주로 피해를 본다. 특히 2~3월 꿀벌은 태양빛을 받아 비데처럼 따뜻해진 자동차 표면에 배변하는 걸 좋아한다. 도시양봉은 비교적 손쉽게 건물 옥상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여름철에는 위기를 맞는다. 30도 중후반으로 기온이 오르면 옥상 위의 벌통 안 기온이 40도 이상으로 치솟아 서식 환경이 매우 나빠지기 때문이다. 이 주무관은 “이 때문에 건물 옥상이 아닌 산자락에서 도시양봉을 할 수밖에 없고, 도시양봉을 하고 싶어 교육을 받고도 옥상 외의 공간을 찾지 못해 양봉을 포기하는 교육생들도 많다”고 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어려움도 가중되고 있다. 지난해 이 주무관은 청계산에서 벌통 30군을 키우고 있었는데 여름 집중호우와 응애·말벌의 공격으로 26군의 꿀벌 50만마리 이상이 죽었다. 이 주무관은 “최근 들어 도시양봉을 하며 기후위기를 매우 크게 절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저마다의 이유로 도시양봉은 계승되고 있다. 지난 10일 서울특별시농업기술센터에서 만난 초보 양봉가들은 이렇게 말한다. “원래 곤충을 좋아했고, 개미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했어요. 꿀벌도 개미와 같은 사회성 곤충이라 신기하고 재밌어하면서 양봉을 배우고 있어요.”(김준영·24) “귀농을 준비하고 있는데 귀농 초보자에게 양봉이 적합한 거 같아요. 벌통을 열어보는 것 자체가 벌들에게 스트레스이기 때문에 일 자체가 적은 편이죠. 양봉이 게으른 농부의 일이라고 농담 삼아 말하는 분들이 있던데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유종성·60)
우리는 벌들이 공원을 날아다니면, 쏘일 것을 우려하며 인상을 찌푸리고 피한다. 그런데 정작 우려해야 할 것은 날아다니는 벌이 아니라 벌이 없어져버린 공원이다. 그것은 인간에게 조용한 재앙이 될 것이다. 마침 5월20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벌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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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주신 분들: 이경용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 박사, 서울특별시농업기술센터 역량개발팀, 우순옥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 박사, 이찬희 서울시 직장동호회 ‘꿀벌사랑낙원’ 교육부장
허진웅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일벌의 일생
꿀벌 세계의 살림꾼인 일벌은 모두 암컷이다. 평생 일만 하다 죽는 일벌의 삶에서 측은지심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수만마리의 일벌은 꿀벌 왕조의 주역이다. 왕국을 확장하거나(분봉), 다른 나라를 침략해 꿀을 훔치고(도봉), 필요하면 여왕벌마저 협의를 통해 숙청하고 교체하는 등 일벌의 무리는 모든 것을 결정하는 대중민주주의 조직체이기도 하다. 귀여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군집’을 지속시키기 위해 여왕마저 죽이는 냉철한 ‘퀸 메이커’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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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에 태어난 일벌의 수명은 약 한달이며, 겨울철에 태어나 일을 적게 하면 최대 6개월까지 살 수 있다. 일벌은 날개를 단 성충이 되면(우화) 일을 시작하는데 나이(태어난 일수)에 따라 하는 일이 다르다. 초보 때와 경력자의 일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초보 일벌들은 벌집 안에서 주로 일한다고 해서 ‘내역봉’이라고 부른다. 우화한 지 3~5일 된 어린 내역봉은 선배 일벌들이 꽃에서 따온 꿀과 화분을 타액으로 반죽해, 부화한 지 4∼6일 된 동생 애벌레들에게 먹인다. 우화한 지 6∼10일 된 일벌은 로열젤리를 분비해 갓 태어난 애벌레들에게 먹이고, 10∼12일 된 일벌은 밀랍을 분비해 집을 짓는다. 12일째가 된 내역봉은 자신들의 벌집 주변에 어떤 자연물이 있는지, 집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알아보기 위한 첫 비행(기억비행)을 시작한다. 우화 15일이 지나면 이제 집 밖에서 일하는 ‘외역봉’이 된다. 드디어 꿀과 꽃가루, 물을 가져오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외역봉 중 고참들은 벌집 입구에서 침입자를 막아내는 경비 업무를 맡기도 한다.
자신의 소임을 다하던 일벌은 죽음이 가까워졌다고 판단되면, 벌집에서 2~3㎞ 떨어진 곳으로 날아간다. 집단의 페로몬이 닿지 않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곳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혼자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벌집 안에서 죽으면 동료들이 자신의 사체를 치워야 하니까 이런 수고로움을 덜기 위한 마지막 비행이다. 일벌의 모든 죽음은 고독사다.
허진웅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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