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는 왜 특별할까
곽현수의 ‘차 한 잔'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
브레튼우즈 체제 이후 환율 제도 변화에도 달러화 위상 유지
세계 통화 중심은 달러다. 국제무역이나 은행 간 결제 때 달러를 쓰는 비율이 여전히 높다.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에 오른 계기는 1944년 브레튼우즈 회담이다. 서방 연합국은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 작전 성공으로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을 확신했다. 자유주의 진영은 전후 세계 재편 논의를 위해 1944년 7월 미국에서 회담을 열었다. 달러 기축통화 지위를 인정한 브레튼우즈 회담이다.
달러 기축통화 지위를 인정한 브레튼우즈 체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브레튼우즈 체제 관건은 미국의 충분한 금 보유였으나 무역적자로 금 태환 우려가 부상했다. 미국은 달러 가치 유지에 어려움을 겪었고 1971년과 1973년 두 차례 평가절하 할 수밖에 없었다. 각국은 달러 고정환율을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를 의미한다.
달러화는 브레튼우즈 체제 붕괴 이후에도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각국은 사정에 따라 환율 정책을 선택할 수 있으나 달러 지위 만은 변함 없다. 미국은 달러 지위를 이용해 여전히 초강대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소비와 투자 규모는 산출량을 크게 앞선다. 미국은 국채에 대한 높은 수요에 따라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인플레이션을 용인해 채무 실질 가치도 떨어트릴 수 있다. 가능성은 물론 높지 않을 듯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것 자체가 기축통화국 만이 가질 수 있는 혜택이다.
달러는 금융위기 이후에도 준비자산으로서 위상 유지
달러는 기축통화 위상을 가졌던 1914년과 공식 기축통화로 인정 받았던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 이후 불패 통화다. 세계 기축통화 역사에서 100년 이상 지위를 유지한 나라는 드물다. 달러도 위기를 겪었다. 2008년 금융위기 때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부동산 붕괴로 시작했고 금융시장 시스템을 크게 무너뜨렸다. 미국 경제가 느낀 위기감은 대공황 이후 가장 컸다. 많은 경제학 구루들이 달러 위상 하락을 예상했다. 결과는 10년이 지난 현재 반대다. 달러 기축통화 지위는 2008년 이후 더 높아진 듯하다.
달러는 미국 자체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강세였다. 자국 경제 위기 시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타국과 다른 결과다. 달러화 지수와 골드만삭스 금융환경지수 간 관계를 주목할 만하다.
골드만삭스 금융환경지수는 높아질수록 금융환경 악화를 의미한다. 미국이 촉발했던 2008년 금융위기와 2011년 신용등급 강등, 2013년 재정절벽 때 모두 달러 강세가 나타났다. 투자자들은 불확실성이 증가할 때 안전자산으로서 달러 비중을 확대했다. 미국이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 폭을 늘리고 있지만 달러화 지위가 변함 없는 이유다.
그래프1. 골드만삭스 금융환경지수와 달러화 지수 상승률
달러가 특별한 이유는 가치 저장 수단으로서 지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유럽과 신흥국이 상대적으로 부실화하면서 안전자산으로서 달러화 위상이 더 높아졌다. 세계 각국은 준비자산으로 달러화를 신뢰하고 있다. IMF가 발표한 2018년 3분기 세계 준비자산 중 달러화 비중은 61.9%로 가장 높다. 유로화와 엔화 비중은 각각 20.5%, 5.0%다. 달러화 지위를 위협하기 부족하다. 얼마 전까지 국제화를 표방했던 위안화 비중은 1.8%에 불과하다. 위안화는 2017년 1분기 비중이 0.9%였던 점을 고려하면 완만히 상승 중이지만 달러화 위상에는 한참 못 미친다.
미국 국채 발행 규모 및 유동성은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
많은 국가들이 달러를 준비자산으로 여긴다. 통화 자체를 매수하기보다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방법으로 달러를 보유한다. 미국 국채 매입은 10년 국채 실질 금리가 1% 미만에 불과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많은 기회비용을 수반한다.
금융위기 이후 안전자산 수요가 증가한데 비해 공급은 부족하다. 세계는 금융위기 이후 재건 과정에서 안전자산 요구 적립 비율을 높였다. 바젤III가 대표적이다. 은행들은 2013년부터 2019년까지 단계적으로 BIS(국제결제은행)가 요구하는 자본 건전성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주요 선진국 국채는 안전자산 요구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 문제는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선진국들 국채 공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에스앤피(S&P·Standard & Poor’s)가 AAA 등급을 부여한 선진국은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 몇몇에 불과하다. 채권 발행량이 미국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하다. 미국 국채 발행 규모는 15.4조달러로 타국을 압도한다. 일본 국채 발행 규모는 9.5조달러로 비교적 크지만 주로 자국 은행과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 투자 비중이 높다. 미국 국채는 유동성 측면에서 매력을 갖추고 있다.
금융위기 전에는 글로벌 기업과 은행이 안전자산 공급 역할을 했다. 모든 나라에 진출해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기업과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 은행들이 도산했다. 대마불사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미국 재무부는 금융위기 중 기업을 구제할 때 사회 전반에 도덕적 해이가 퍼지지 않도록 채무를 조정했다. 개인이나 기관투자자가 우량 회사채를 안전자산으로 여길 수 있으나 국가가 준비자산을 적립할 때 매입을 고려할 수 있는 회사채는 많지 않다. 미국 국채 매력을 높이는 요소다.
선진국은 금융위기 이후 통화 조작으로 자국 환율 평가절하에 나섰다. 환율 절하는 실질 금리가 낮은 상황에서 손실 위험을 높일 수 있다. 달러화 가치는 양적완화에도 안전자산 선호로 상승했다. 미국 국채가 안전하다는 인식은 더 강해졌다.
그래픽2. 국채 발행 규모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에도 채무 관련 위기 크게 겪지 않아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 국가다. 다른 나라에서 자본을 수입하고 있다는 의미다. 경상수지 흑자는 반대로 자본을 수출한다는 뜻이다.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로 산출량에서 소비를 차감한 저축이 투자보다 작다. 미국을 대표적 소비 국가로 꼽는 이유다. 미국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2000년부터 2017년까지 9조달러에 달한다.
중국은 반대다. 중국은 대표적 경상수지 흑자 국가다. 저축이 투자보다 많다. 일본, 독일 등 선진국과 중국 등 신흥국이 미국에 자금을 수출하고 있다. 중국 누적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000년부터 2017년까지 3.2조달러다. 중국은 1994년 이후 매년 경상수지 흑자를 달성하고 있다. 흑자 규모는 중국이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해 미국과 교역을 본격화한 2005년 이후 급증했다. 중국은 선진국으로부터 민간 자본 유입이 많았으나 공적 기관 자금 유출이 이를 크게 상회한 관계로 자본 수출 국가가 됐다. 미국 국채 매입으로 준비자산을 늘린 결과일 가능성이 높다. 중국 등 신흥국이 미국 국채 매입을 계속하는 한 미국 소비 팽창은 지속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에도 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크게 노력하지 않았다. 버냉키 전 Fed 의장은 신흥국의 투자 대비 높은 저축이 국제 금융 시스템을 왜곡하고 있다고 에둘러 생각을 드러낸 바 있다.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 원인을 신흥국 저축 과잉에서 찾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 경상수지 적자는 채무 위기만 없다면 국민 후생 증대에 우호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수지 적자 축소를 명분으로 무역 분쟁을 일으켰을 때 세계 경제학자들이 의아한 반응을 보였던 이유다.
그래픽3. 미국과 중국의 누적 경상수지 추이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경상수지 적자에 따른 핫 머니 유출 문제는 기축통화를 가진 미국에 해당하지 않는다. 경상수지 적자는 자본수지 흑자와 동의어다. 미국은 외국으로부터 조달한 자금으로 우주항공, 생명공학, 첨단 군수 무기 등 고부가가치 산업에 재투자할 수 있었다. 미국이 국가 경쟁력을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었던 원천은 기축통화 달러다.
신한금융투자 투자전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