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시, 세월을 낚는 여유로움 아닌 처절한 일상의 탈출구
그걸 왜 해?: 낚시
기암절벽인 갯바위 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허진웅 제공 |
모두가 잠든 새벽 1시. 갯바위 낚시를 준비하는 한 작장인이 낚시 짐을 챙긴다. 낚싯대는 당연히 챙겼고, 구명조끼 챙겼고, 미끼, 뜰채, 도시락, 물, 커피 등…. 혹시 빠트린 게 없는지 신중하게 다시 한번 짐을 살핀다. 그런데 그때, 그의 눈에 노트북이 들어왔다. 오늘은 월말 정산의 날. 너무나 낚시가 하고 싶어 휴가를 내긴 했지만 경험상 그날은 사무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날이다. 통화로만 업무를 챙길 수 있을까? 부장이 날 찾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그래, 먹고사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으니까. 그래, 챙기자, 노트북. 그리고 그날 그는 갯바위에 앉아 파도와 싸우며 온종일 일만 하다 돌아왔다고 한다. 이것이 그의 낚시 친구들 사이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추자도 낚시하다 노트북으로 일한 자리”의 탄생 설화다.
나는 취미를 두 가지로 분류한다. 우선 남들에게 소개했을 때 부끄럽지 않고, 가족들도 좋아하며, 주변인들을 해롭게 하지 않는 평화로운 취미다. 예를 들면 식물 키우기, 독서, 영화 감상, 악기 연주 같은 것들. 자신을 지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하며, 삶의 여유도 느껴지며, 에스엔에스(SNS)에 올리는 사진도 자랑스러워지는 취미다. 다른 하나는 “내 취미는 ○○이야”라고 말하는 순간, 듣는 이를 기함하게 하는 것이다. 듣는 사람이 ‘그걸 왜 할까?’ 생각하게 하고, “취미가 뭐예요?”라는 질문을 들으면 말하기 망설여지는 취미. 예를 들면, 낚시, 오토바이 타기, 게임, 가방·신발·아이돌 굿즈 수집, 자동차 세차 동호회 같은.
낚시는 하고 싶고, 일도 해야겠고. 스스로 저 상황이 황당했던 주인공이 스스로를 사진으로 남겼다. 잘 보면 웃고 있는 그의 표정이 보인다. 조영우 제공 |
취미에 대해 말하기 부끄러운가? 아닌가? 그 기준으로 나는 지금껏 취미를 나누어왔다. 그리고 주변인들은 반대하고, 개인은 밝히기를 꺼리며, 말하는 순간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랑 같이 ○○해주지 않을래?”라고 진심을 담아 고백할 수 있는 취미야말로 재미있고, 중독적인 놀이라고 생각해왔다.
그중 내가 가장 사랑하는 취미는 낚시다. 정확히 말하면 밤새 운전해서 바닷가로 내려간 다음 새벽 5시쯤 배를 타고 섬의 갯바위로 나가서, 6시쯤 뜨는 해를 바라보며, 오늘은 어떻게 고기를 낚을까 고민하고, 해가 뜸과 동시에 몇년 동안 비상금을 모아 준비한 나의 찌와 채비들을 바닷가에 낭비하고, 약 8시간 후 다시 긴 운전을 하고 돌아오는 걸 좋아한다. 감성돔, 돌돔, 벵에돔, 참돔 같은 내가 낚고 싶은 고기를 잡는 일은 세번 출조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달을 준비한 낚시가 실패했을 때,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는 그 치욕스러운 느낌. 돌아오는 차 안에서 동료들과 나누는 반성의 시간. 그날 밤, 꿈에 나타나는 물고기들. 어쩌다 꿈에 그리던 고기가 잡혔을 때의 짜릿함. 이어지는 생선 손질, 회 뜨기. 그리고 낚시에 빠진 다른 친구들과 대화. 그 모든 것이 좋다. 지금까지 열거한 내가 좋아하는 일들에 대해 “그걸 왜 해? 고기도 못 잡는다며?”라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실제로 나는 고기를 못 잡아도 낚시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삶의 원동력이 된다.
세월을 낚는다는 말은 낚시를 안 해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도시의 중심에 살지만, 낚시할 때는 디엔에이(DNA) 깊은 곳에 새겨진 수렵 본능이 드러난다. 야생의 물고기를 굴복시켰을 때의 짜릿함은 세월을 낚는 여유로움과 거리가 멀다. 나와 같이 ‘미친 듯이 낚고 싶다-광낚회’의 일원인,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낚시 친구는 어느 날 갯바위 위에서 고기를 못 잡고 있을 때, 마치 인생 다 산 사람처럼 나에게 아주 쓸쓸하게 말했다. “형이 이제 나이가 들고 보니, 나에게 남은 건 낚시 이거 하나밖에 없다. 너는 아직 젊으니까 나중에 나이가 들더라도 형처럼 살지 말고….”
낚시꾼인 한 광고 감독의 사무실. 온통 낚시 장비로 꾸며진 그의 사무실을 보면 그의 인생에서 낚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김주원 제공 |
마치, 소설 <마지막 잎새>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쓸쓸한 눈빛과 대사들을 쏟아내던 그는 5분 후 거짓말처럼 고기를 낚았고, “아싸∼ 끼얏호!!! 인생 한방! 역시!!” 이런 상스러운 표현과 형형한 눈빛을 뽐내며 10년은 젊었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렇듯 자연과 맞서 싸우며 수렵의 본능을 자극하는 낚시라는 놀이는 중독적이며 원초적인 본능의 놀이이다.
가끔 다크서클이 한없이 내려와 있고, 추정건대 그 다크서클의 기간이 일주일쯤은 되어 보이는 회사 동료들을 만날 때, “너 요새 뭐 좋아해?”라고 나는 물어본다. 그러다 딱히 좋아하는 게 없다고 말하는 동료에게 “나랑 언제 낚시 갈래?” 하고 물어보기도 한다. 뭐가 재미있는지 한참을 설명하면서도 나의 취미 생활이 그의 문제의 답이 될 리 없다는 걸 나는 이미 안다. 그런데도 꾸준히 말한다. “낚시 아니더라도, 인생에 뭐든지 좋아하는 일 하나쯤은 갖는 게 어때?”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인생에 좋아하는 일 하나쯤 있으면, 사람이 숨을 쉬고 사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 가짓수가 너무 많으면 삶에 지장이 될 수도 있지만, 한가지 혹은 두가지 취미를 가져보는 건 정말이지 필요한 일이다.
수도권 직장인들의 경우 민물 붕어 낚시, 루어 배스 낚시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정도 낚시 경력이 쌓이면 다른 장르로 이동하거나, 한 장르의 명인의 길로 깊이 들어가기도 한다. 인조 미끼를 사용하는 루어낚시는, 서해의 광어·참돔 배낚시, 사람 없는 계곡을 향해 가는 쏘가리 계류낚시(시냇물에서 하는 낚시)의 과정을 밟는다. 민물낚시의 세계에서는 깊은 산속 이름 모를 늪지대를 찾아다니며 토종 월척을 노리거나, 가까운 유료 낚시터에서 떡붕어 마리 수를 즐기는 깊이로 빠진다.
낚시가 취미로 좋은 까닭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워낙에 깊고, 장르가 복잡하기 때문이다. 쉽게 싫증 나지 않고 긴 기간 수행할 수 있다. 단점은 주변에 하는 사람이 없으면 너무나 배우기 힘들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를 통해 배운다.
△추천 유튜브 채널
허기자 티브이(TV): 낚시 잡지 편집장 출신의 허만갑 기자가 운영하는 바다낚시 유튜브 채널. 낚시에 대한 깊은 지식을 바탕으로 낚시의 이론과 실제를 제대로 배울 수 있다. 아주 조리 있는 설명과 해박한 지식으로 낚시인의 이론적 무장을 돕는다.
아트오브피싱: 진상현 프로가 운영하는 바다낚시 유튜브 채널. 아주 멋진 풍광들을 그림처럼 담아내며 보는 것만으로도 시청자들에게 힐링이 된다. 진상현 프로는 낚시를 멋지게 하는 것으로도 인기가 좋은데, “가거라 이놈” 하면서 고기를 놓아주는 그의 모습을 보면 낚시가 꼭 고기를 잡아서만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박과장 티브이(TV): 채널 제목처럼 평범한 직장인 콘셉트로, 아내에게 거짓말로 낚시 용돈을 받아내는 에피소드와 기상천외한 엽기적 낚시 기법 등 낚시를 좋아하는 평범한 남자의 소소한 일상을 재밌게 보여준다. 새카매진 얼굴과 구수한 거제 사투리로 신나게 떠들다가 주변에 사람이 나타나면 부끄러워서 말을 못하는 게 박과장 티브이(TV)의 시청 포인트.
호사마 Hosama 티브이(TV): 젊고 훈훈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운영하는 민물낚시 채널. 민물낚시 특성상 호젓한 새벽의 조용한 호숫가에서 낚시를 많이 하는데, 부드러운 목소리와 풍경이 어울려 편안한 느낌을 준다.
이외에도 수많은 낚시 채널이 많겠지만, 이미 이 정도만 검색해도 유튜브의 알고리즘이 당신을 낚시의 세계로 초대할 것이다.
허진웅 이노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