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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무시하는 나이 많은 팀원이 어려워요”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클리닉


Q 부서장에서 좌천 발령된 팀원 A


나이 어린 팀장인 나에게 유독 까칠


A ‘왜 날 무시해?’란 감정에 매몰되진 않았나


나의 불안과 그의 경계심을 돌아보자



한겨레

클립아트코리아

한겨레

Q 작가님, 안녕하세요. 저는 회사에서 작은 팀의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몇 달 전에 저보다 5살가량 나이도 많고 직급도 높은 A가 제 팀원으로 왔습니다. A는 사실 원해서 우리 팀에 온 것이 아닙니다. 회사 내 인력 감축의 여파로 우리 부서에 좌천되듯이 왔습니다. 팀보다 더 큰 단위 부서의 부서장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아무런 보직 없이 제 밑의 팀원으로 왔습니다. 저는 사람과 잘 지내는 스타일이라서 처음에는 잘 지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사람과 지내며 너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저의 유일한 스트레스라고 할까요. 나이와 직급도 한참 어린 팀장인 저에게 다른 부하 직원처럼 깍듯하게 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저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가 시키는 일이나 보내는 메일에 따지듯이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고 마치 본인이 팀장인 듯이 행세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저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느낌도 받고요.


A가 저를 무시하고 저를 괴롭히기 위해서 고의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몇 년간 큰 팀의 팀장을 하다가 버릇이 돼서 본인이 의식도 하지 못한 채 지시하는 듯한 말투를 쓰는 걸 수도 있겠죠. 저를 경쟁자로 생각해서 저에게 까칠하게 구는 건가 별의별 생각을 다 해봤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사실 여부를 떠나서 제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것이 핵심이겠죠. 한번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것이 다 신경 쓰이고 확대해석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참고로 A에 대해서는 ‘말을 기분 나쁘게 한다’는 사람들의 평가가 있는 건 사실이고, 본인 자신도 ‘내가 말 못되게 하는 것은 나도 알아’라고 할 정도입니다.)


A가 우리 부서에 오고 나서 저는 회의를 줄였고 같이 식사하는 시간도 많이 줄였습니다. A를 보는 것 자체가 불쾌합니다. A와 따로 얘기해본 적도 있습니다. 제 말에 토를 다는 것 같아 제가 많이 당황스러우니 조금만 저를 배려해달라고도 말했습니다. 알겠다고 하더니 얼마 안 가서 결국 원상태가 되더군요.


사실 저는 한 달 후면 다른 부서로 가 업무가 바뀌는 것으로 우리 부서의 부서장과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부서장만 아는 비밀입니다. 팀원들은 아무도 모르고요. 한 달만 참으면 됩니다. 그런데도 저는 A를 보는 것이 너무 불편합니다. 저도 살아야 하기에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A가 저에게 자격지심이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5살 어린 팀장한테 하나하나 업무 지시 받기 싫어 투덜거리는 모습에, 본인도 힘들겠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남들은 한 달만 참으면 되는데 뭐가 문제냐고도 합니다. 어떤 상담사는 저에게 이상한 사람한테 왜 신경 쓰느냐고 합니다. 다 맞는 말입니다. 제가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존중받고 배려받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있었나 하는 자책도 듭니다. 제가 A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팀원들이 알까 두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렇지 않은 척 합니다. 제 마음은 괴롭고 괴롭습니다. 나보다 나이 많은 팀원 괴롭힘에 고통스러운 팀장


A 저도 당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적이 있어요. 한 달도 쉰 적 없이 회사생활을 했던 제가 팀장으로 있었던 팀에, 저와 같은 시기에 일을 시작하고 나이도 동갑이지만 한동안 회사에 소속되지는 않은 채 프리랜서 생활을 오랫동안 했던 친구가 팀원으로 오게 된 거죠. 팀의 기자가 쓰는 기사를 모두 검토하고 수정을 지시하는 업무를 맡고 있던 저 역시 그 팀원과의 관계가 너무나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분명히 뭔가 거슬리는데 그걸 대놓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지나치자니 ‘나를 무시하고 싶어서 저러나?’ 하는 생각으로 빠져들어서 괴로웠어요. 저의 13년 직장생활 중에 아마 가장 힘든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할 정도로 말이죠. 그래서 당신의 고민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실 이런 일은 애초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인력 감축이라는 건 조직이 위기 상황에 있다는 건데, 그런 다급한 상황 속에서 조직은 팀장 자리에 있는 당신을 섬세하게 지켜주진 못했네요. 하지만 바로 여기에서부터 당신의 고민과 괴로움이 시작된 것은 아닐까요. ‘어떻게 이런 식으로 조직 구성을 할 수가 있지? 이런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야!’라는 생각으로 말이죠. 인력 배치가 일방적으로 팀장인 나에게 부당한 일이라는 생각이 먼저 일어나고, 뒤이어 A가 혹시라도 나에게 불편한 상황을 만들지 않을까 주시하는 마음이 올라왔을 것입니다. 물론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회사에 다녔겠지만 마음속으로는 두려움과 긴장이 분명 있었죠. 아니나 다를까 내가 두려워했던 일종의 ‘하극상’같은 장면들이 일어나니, 당신은 어쩌면 그때 마음속으로 확신했을지 모릅니다. ‘역시 내 예측이 맞았어’라고요. 그때부터는 어떻게 될까요? 이제 그 사람의 문제점을 열심히 찾기 시작하고, 그냥 앉아만 있어도 그 사람이 밉게 보이는 상태가 됩니다. 내 마음에서 나는 피해자이고, 그는 가해자가 되었거든요.


누구라도 힘들 상황인 것은 맞아요. 그러나 조직의 일원으로서 일한다는 것이 본래 이렇게 다양한 국면을 포함합니다. 조직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고정적인 월급과 다양한 업무 경험, 좋은 상사나 동료, 팀원과의 관계를 경험할 수 있지만 또한 조직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부당한 인사, 무능력한 상사, 눈엣가시 같은 부하 등을 감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인력 감축도 일어나지 않고, 내 팀원들은 다 나에게 깍듯하고, 내가 추진하는 업무는 언제나 잘 풀리는 상황은 모든 직장인의 꿈이겠죠. 하지만 그런 행복이 조직에서 이뤄지는 일은 아주 드물어요. 당신 또래의 직장인들을 한 번 둘러보세요. 조직에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행복한 얼굴로 대답하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보세요. ‘일 때문에 힘든 것보다, 사람 때문에 힘들다’며 모두 자신의 힘든 점을 이야기할 거예요. 조직에서 버티는 모두가 상황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이런 어려움을 겪어요. 지금까지 이런 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면 그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지 그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당신이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하는 건 바로 모든 것을 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나를 무시하고 괴롭히려고 저러나?’ ‘나를 경쟁자로 생각하나?’ ‘왜 나를 인정하지 않지?’라는 생각들이요.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오직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거든요. 전자는 자신을 존중하는 삶이지만, 후자는 심리학에서 ‘개인화’라고 부르는 개념입니다. 오직 자기 생각에만 빠져버리고, 그래서 감정적인 결정이나 충동적인 선택을 하게 될 수 있죠. 혹은 당신의 마음은 ‘투사’에 가까울 수도 있습니다. 내가 A를 싫어하지만 그 마음을 인정하긴 힘들 때, 우리는 ‘A가 나를 싫어하는 게 틀림없어’라고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죠.


상사에게 이야기해서 부서를 옮기기로 한 것은 당장은 최선의 선택이었겠지만, 그 부서가 당신의 커리어에 좋은 영향이 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지금의 이 결정에 대해 또 자책하게 되지 않을까요? 옮긴 부서에서 만난 상사나 동료와 어떤 식으로든 불편함이 생기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삶의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개인화’를 하게 되는 것이 나의 패턴이라면, 이번 기회에 나의 개인화와 투사를 조금이라도 내려놓는 연습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당신이 만날 수많은 A를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당신 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대로 버거운 몇 달이었겠지만, 아주 잠시만이라도 A의 처지를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부서장을 맡았다가 갑자기 좌천당하고 다섯 살이나 나이도 어리고 직급도 낮았던 누군가를 팀장으로 대우해줘야 하는 A의 처지요.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 되면, 구겨지고 상처받은 자존심과 싸우며 속으로 울며 출근을 할 것입니다. 까칠하고 지시적인 말투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 건, 그렇게 해서라도 ‘나 아직 죽지 않았어’라고 말하고 싶은 그의 애달픈 자기보호였는지도 모릅니다. 고용불안정의 시대, 기약 없는 팬데믹의 시대, 마음을 돌보며 조직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모두가 자신의 머릿속 불안과 싸우며 삶을 이어나가고 있어요. 그동안 힘들었던 당신도, 당신이 미워했던 A도 각자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내 마음 속 불안과 경계심에 대해 차분히 돌아보고, 모든 사람에게 항상 인정받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A의 처지에 대해서 생각해주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새로운 부서에서의 시간은 좀 더 편안하길 바랍니다. 작가


곽정은 작가가 상담을 이성 관계, 사랑, 연애뿐만 아니라 ‘관계’ 전반으로 확장합니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여러분이 맺는 수많은 관계에서 고민이 생겼다면 이제 ‘곽정은의 단호한 관계 클리닉’의 문을 두드려 주세요. 물론 이성 관계, 연애 고민 상담도 진행합니다. 사연은 200자 원고지 5매 가량(A4 용지 1/2)으로 갈무리해 보내주세요! 보낼 곳 : esc@hani.co.kr">es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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