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일 넘쳐나던 ‘태극기 마케팅’ 실종
[한겨레] “과거 정부 ‘태극기 게양 협조’…현 정부선 없어져”
노골적 홍보 대신 SNS 활용 ‘바이럴 마케팅’ 선회
현대카드, 주미공사관 매입과정 지원 뒤늦게 밝혀져
GS25 독립운동가 도시락·스타벅스 광복절 텀블러 인기
몇년 전만해도, 삼일절·광복절 등 국경일 즈음해서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건물 외부에 대형 태극기를 걸었다. 이른바 ‘태극기 마케팅’이었다. 2015년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의 초대형 태극기는 그 자체로 제법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건물 외벽의 태극기가 사라지고 있다. 지난 삼일절에도 주요 유통업체는 태극기를 활용하지 않았다. 여러 분석이 나온다. 2015년엔 광복 70주년이라는 대형 이벤트가 있기도 했지만, 업계는 ‘정부의 요청’이 사라진 탓이 가장 크다고 본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전 정부에선 국경일을 앞두고 당국이 관계자들을 불러 태극기 게양 등 애국심 고양을 위해 기업이 협조해줄 것을 당부했었다. 하지만 이번 정부에선 이런 관행이 사라졌고, 자연스럽게 태극기 마케팅도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광복절 역시 대형 백화점·마트 모두 태극기 마케팅을 하지 않기로 했다.
태극기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기업의 애국심 마케팅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애국심 마케팅은 여전히 유효하다. 예컨대 독립운동 지원 사실이 회자되면서 기업 이미지가 올라간 경우도 많다. 활명수로 유명한 동화약품은 일제 강점기 시절 약품판매 수익으로 항일단체인 대동청년당을 결성한 바 있는데, 이 사실은 광복절이 돌아오면 항상 에스엔에스(SNS)에서 화제가 된다.
기업들이 이제 주목하는 것은 ‘태극기’가 아니라 사람들의 ‘입’이다. 에스엔에스를 통한 ‘바이럴 마케팅’에 더 힘을 쏟고 있다. 노골적인 홍보가 아닌, 넌지시 메시지를 전하고 소비자들이 알아서 입소문을 내주는 것이 효과가 크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지난 6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진과 함께 글을 남겼다. 지난 5월, 미국 워싱턴 디시(D.C.)에서 113년 만에 재개관한 주미공사관과 관련해 현대카드가 ‘보이지 않는 손’ 역할을 했다는 내용이다. 주미공사관은 대한제국이 최초로 서구권에 설치한 외교시설이라 의미가 있는 곳이다.
개인이 소유했던 이 건물은, 한국 정부가 매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카드 쪽은 우리 정부가 매입한다는 사실을 일부러 숨긴 채 민간업체 자격으로 이 건물을 가계약한 뒤, 본 계약을 한국 정부가 하는 방식으로 소유권을 넘겨 받았다. 해당 글에는 이를 칭찬하는 누리꾼들의 댓글이 달렸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부동산 수수료 3억원도 회사가 부담했다. 기밀작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비밀스러운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회사는 이런 사실을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하지 않았고, 정 부회장이 개인 에스엔에스를 통해 직접 밝혔다. 애국심 마케팅에서 질적 변화다.
최근 편의점 지에스(GS)25는 국가보훈처와 함께 ‘독립운동가 기억하자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편의점에서 파는 도시락에 독립운동가 100인의 이름을 부착하고 있다. 현재 이 도시락은 에스엔에스에서 입소문이 퍼지고 있는데, 애초 회사는 “에스엔에스를 통해 광복절 의미를 공유하자는 것”이라고 취지를 밝히기도 했다.
스타벅스코리아도 에스엔에스 덕을 톡톡히 본다. 광복절 때마다 텀블러 등 기념품을 한정 제작하는데, 인기가 높아 매장 앞에 길게 늘어 선 구매행렬이 에스엔에스에서 수없이 공유된다. 판매 수익은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장학금 등으로 활용된다. 오히려 애국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는 게 인기 요인이다. 기념품 디자인은 언뜻 보면 광복절과 연관이 없어 보일 정도로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또 다른 이유다. 스타벅스코리아 관계자는 “올해도 광복절을 맞아 한정 텀블러를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정국 이순혁 기자 jg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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