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삼성’에 맞서…황유미씨 유족·반올림 투쟁 마침내 결실
[한겨레] 백혈병 발병부터 중재안 수용까지
2007년 진상규명 대책위로 시작
길고 치열한 법정 투쟁 끝에
2014년에야 ‘산재 인정’ 판결
조정위 꾸려 권고안 제시했지만
삼성이 거부해 개별보상 나서자
반올림은 1000일 넘게 천막농성
조정위 중재안 방식에 양쪽 동의
24일 서명하고 10월 최종안 예정
황유미씨는 2003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기흥공장에서 1년8개월가량 반도체 세정 작업을 했다. 그리고 스무살이던 2005년 6월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고 2007년 3월 세상을 떠났다. 유미씨와 같은 라인에서 일했던 이숙영씨는 서른살이던 2006년 백혈병 진단을 받고 그해 세상을 떠났다. 이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수많은 삼성전자 노동자들이 백혈병에 걸려 투병 중이거나 세상을 떠났다.
‘삼성 직업병’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 제기는 유미씨가 숨진 뒤인 2007년 11월20일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규명 및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가 출범하면서 시작됐다.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의 전신이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 앞에 펼쳐진 길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은 2009년 5월 유미씨를 포함한 5명의 산재 신청 사건을 불승인했다. 결국 사건은 법정으로 갔고,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행정법원은 2011년 6월 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 등 유가족 3명과 투병 중인 직원 2명이 낸 이 소송에서 유미씨 등 2명에 대해 산재를 인정했다. 이 판결은 2014년 8월 서울고법에서 확정됐다. 유미씨가 숨진 지 7년 만의 일이었다.
삼성전자도 산재를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결국 2014년 11월 반올림, 가족대책위(반올림과 입장이 다른 피해자 가족 단체)는 ‘삼성전자 사업장의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조정위)를 구성해 문제 해결을 논의했다. 김지형 전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았다.
8개월에 걸친 논의 끝에 조정위는 2015년 7월 조정권고안을 제시했다. 삼성전자가 1천억원 규모의 독립된 공익법인을 세워 피해자 보상과 재발 방지 역할을 하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같은 해 9월 이 조정안을 거부했고, 자체 보상위원회를 꾸려 피해자들에게 개별 보상하기로 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독립 법인’이 백혈병 등 직업병 피해를 접수하고, 각 사업장 등을 감시하는 권한을 가지는 걸 꺼렸다. 이에 반올림은 2015년 10월부터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1천일 넘게 농성을 이어왔다.
한동안 ‘개점휴업’ 상태였던 조정위가 다시 나선 것은 최근 일이다. 조정위는 지난 18일 제2차 조정을 시작한다며 삼성전자와 반올림 쪽에 공개 공문을 보냈다. 이번에 조정위는 양쪽에서 세부 합의안에 대한 의견을 받아 이를 조율하는 과거 방식이 아닌, 조정위원장이 ‘중재안’을 내는 방안을 제시했다. 조정위가 양쪽 의견을 종합해 사실상 강제중재안을 내겠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21일 이런 조정위의 중재안에 동의했다. 조정위와 삼성전자, 반올림은 24일 이런 중재 방식에 합의하는 서명을 할 계획이다. 조정위는 10월 초까지 최종 중재안을 내놓을 예정이며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이 중재안에 합의할 계획이다.
중재안의 큰 틀은 새로운 질병보상 방안, 반올림 피해자 보상, 삼성전자의 사과, 반올림 농성 해제, 재발 방지 및 사회공헌 등으로 이미 어느 정도 마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재안의 세부적인 내용을 정하고 조율하는 절차 정도가 남은 셈이다. 유미씨가 세상을 떠난 지 11년 만에야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 해결’이 느린 걸음으로 우리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임재우 정환봉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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