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수수료 0원…서울시 ‘착한 페이’ 실험 성공할까
서울페이 올해 안 도입 공식 발표
소비자→판매자로 계좌이체 방식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 줄어들듯
소득공제 40%, 체크카드보다 높지만
소비자 이용늘릴 유인책 더 필요
2019년 어느 날, 김결제씨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스마트폰을 꺼내 식당 큐아르(QR)코드(정보무늬)를 찍었다. 결제금액을 입력하라는 문구가 뜬다. 8천원을 입력하고 결제 요청을 누르자 결제 확인 메시지가 뜬다. 계좌에서 8천원이 음식점 주인 계좌로 바로 이체된 것이다. 신용카드나 체크카드와 비슷한 결제 방식이지만, 중대한 한가지 차이가 있다. 이 음식점의 주인이 카드나 결제 플랫폼에 내야 하는 수수료가 0원이라는 점이다.
‘서울페이’가 도입되면 예상되는 풍경이다. 카드 결제 수수료 부담으로 고통받는 자영업자들을 위한 ‘결제 수수료 0원’의 실험이 시작됐다. 서울시는 소상공인들의 카드 결제 수수료 부담을 낮출 수 있는 대체 결제수단인 이른바 ‘서울페이’ 도입을 25일 공식 선언했다. 부산, 인천, 전남, 경남 등의 지방정부도 도입 의사를 밝혔고, 중앙정부 역시 2020년까지 서울페이 시스템을 전국으로 확산시키기로 했다. ‘착한 결제’가 신용카드로 대표되는 기존 결제 관행에 변화를 일으킬지 기대를 모은다.
서울시는 이날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중소벤처기업부를 비롯해 부산, 인천, 전남, 경남 등 지방정부와 신한·국민·하나은행 등 11개 시중은행, 카카오페이 등 5개 민간 결제플랫폼 사업자와 업무협약을 맺고 ‘소상공인 수수료 부담 제로 결제서비스’를 올해 안으로 도입하기로 했다. 서울시가 첫발을 떼고 부산 등 4개 지방정부도 올해 안으로 각 지역페이 시범 운영에 나선다. 이는 박원순 서울시장이 6·13 지방선거 과정에서 내놓은 공약이다.
서울페이는 핀테크(금융과 기술을 결합한 서비스)를 활용해 스마트폰으로 판매자 큐아르코드를 인식하면 소비자 계좌에서 판매자 계좌로 돈이 이체되는 직거래 결제 방식이다. 쉽게 말해 소비자가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은행 계좌에서 가게 주인 계좌로 바로 입금하는 구조다.
다만, 계좌이체는 은행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송금받는 이의 계좌번호를 적고 통장 비밀번호, 보안카드 번호 등을 입력하는 번거로움을 거쳐야 하나, 서울페이는 소비자가 판매자의 큐아르코드를 찍고 금액을 입력한 뒤 결제 요청만 하면 된다. 거꾸로 기프티콘 등을 쓸 때처럼 판매자가 매장 내 결제 단말기(POS)에 있는 큐아르 리더(인식기)로 소비자 스마트폰 앱의 큐아르코드를 찍어서 결제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서울페이를 위한 별도의 앱은 없다. 소비자들은 카카오페이나 네이버페이 등 시중에 나와 있는 간편결제 앱을 그대로 이용하면 된다.
소비자 계좌에서 판매자 계좌로 직접 돈이 이체되다 보니 “신용카드 결제 과정에서 소상공인들이 물어야 했던 카드 수수료는 사라져 0%대의 수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 서울시의 설명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민간 결제플랫폼 결제 수수료와 은행 계좌이체 수수료가 발생하지만, 이날 협약으로 민간 결제플랫폼 사업자와 은행은 소상공인 가맹점 결제와 관련한 사용 및 계좌이체 수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이런 서울페이가 안착된다면 소상공인들이 카드 수수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지금과 같은 결제 구조에선 소상공인들의 카드 수수료는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을 가져간다.
서울시가 지난 4월 발표한 ‘소상공인 신용카드 수수료 실태조사’를 보면, 자영업자들이 부담하고 있는 카드 수수료는 영업이익의 적게는 3%에서 많게는 50%까지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편의점의 경우, 평균 연매출은 6억7900만원에 영업이익은 2900만원이었는데, 카드 수수료가 900만원에 달했다. 카드 수수료가 영업이익의 30%에 이를 정도다.
서울페이의 성공 모델은 중국의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인 알리페이다. 알리페이는 중국 최고의 간편결제 서비스로 손꼽힌다. 서울시 자료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중국의 알리페이 사용자는 5억2천만명으로, 결제서비스 점유율은 54%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중국 내 알리페이 사용금액도 1경6700조원에 이르렀다. 김태희 서울시 경제기획관은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폰 보급률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서울페이가 국내 시장에 확산될 잠재력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서울페이에 교통카드 기능을 넣고 각종 공공 문화체육시설 할인 혜택 등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시가 지급하는 온누리상품권, 공무원 복지포인트 등도 서울페이로 사용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다. 기존 신용카드 사용에 익숙한 시민들을 서울페이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인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서울페이와 같은 소상공인 전용 결제시스템이 전국에서 호환성을 갖출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를 위해 ‘모든 은행·간편결제앱의 사용 가능’, ‘공통 큐아르코드 활용’, ‘결제 수수료 제로에 근접’이라는 세가지 도입 원칙을 확정해 이날 발표했다.
중기부는 이런 원칙에 따른 결제시스템 도입을 위해 금융위원회와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한국은행, 금융결제원, 민간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법·제도적인 애로사항이나 불합리한 규제 등의 해결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정부는 소상공인 전용 결제시스템의 사용대금에 대해 40%의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방안을 확정한 바 있다.
김경욱 박순빈 기자 da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