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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돌도 키운답니다

SBS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배우 임원희가 애완돌인 '돌돌이'와도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의 애완돌은 작은 밀짚모자를 쓴 앙증맞은 모습이다.


이 애완돌은 우리가 키우는 반려견처럼 함부로 만지는 것이 아닌, 훈련법도 따로 있다. 실제로 애완돌 훈련법도 설명서에 써 있으며, 그는 애완돌을 볼 때마다 자라는 것 같다며 아낌없는 애정을 드러냈다. 

우리가 키우는 여러 반려동물이 있지만, 요즘 보면 딱히 동물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돌을 키운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때다. 사실 자신이 키우는 대상이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애완돌을 키우며 내가 즐겁고 위안을 받는다는 의미는 똑같으니 말이다.   

평범한 돌에 유머와 센스를 더해 탄생한 애완돌

 

다양하게 꾸민 애완돌 /flickr

1990년대, 학생들을 강타한 것이 있었다. 바로 호출기처럼 생긴 '다마고치'다. 이 작은 기계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작은 기계 안에서 키우는 동물을 보고 자랐던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 애완돌을 마주한다면 다마고치와 비슷한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다. 물론 1970년대는 지금보다 조금 더 원시적이었다. 그 해는 바야흐로 애완돌의 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펫스톤, 애완돌이라 불리는 이 특별함을 만든 발명가 게리 달의 이야기는 어찌 보면 흥미진진하다. 

살아생전, 인터뷰 중인 게리 달 /NBC NEWS 유튜브 캡쳐

달은 캘리포니아에서 프리랜서 광고 카피라이터로 일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어느날 친구들과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어떻게 하면 돈을 빨리 벌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기르는 반려동물의 말썽에 대한 주제로 바뀐다. 너도나도 개와 고양이들이 가구를 망가뜨리는 것부터 시작해 먹는 것, 아픈 것 등등 엄청난 뒷바라지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을 즈음 달은 이런 말을 꺼낸다. 애완돌은 그 어떤 것도 걱정하거나 신경쓸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그는 병원에서 날아오는 진료 청구서도 필요 없으며, 가끔 돌에 끼는 이끼를 긁어내는 것 빼고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돌이기 때문에 뭘 먹이거나, 산책하거나, 목욕하거나, 손질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아프거나, 말을 듣지 않거나, 죽을 걱정도 없다. 이것은 아주 재미있는 말이었고, 거의 농담에 가까웠다. 당연히 아무도 그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달은 진지했다. 달은 이들에게 애완돌이 완벽한 파트너가 될 것이라 장담했다.

이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된 애완돌로 그는 대박을 치게 된다. 달은 집에 가 2주 동안 애완돌에 대한 사용 설명서를 완성한다. 설명서에는 애완돌을 다루는 가장 좋은 방법, 이 애완돌이 갖고 있는 재주, 애완돌이 갖고 있는 영원한 수명 덕분에 사람에게 충실한 동반자로 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여러 사항들을 상세히 기술했다. 이 매뉴얼은 마치 누가 봐도 돌을 거의 실제 반려동물이라 생각하고 그에 따라 쓴 말장난과 개그처럼 보였다. 이런 매뉴얼 외에도 달은 공기 구멍을 뚫어놓은 작은 상자를 떠올렸다. 이것은 초창기 맥도날드의 해피밀 용기와도 많이 닮았다. 

애완돌 패키지 /flickr

달은 미국 새너제이에 있는 한 건축용품점에 가 꽤 비싼 돌 하나를 발견한다. 크기도 균일하고 둥근 회색의 조약돌로, 로사리또 해변에서 온 돌이었다. 그가 이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진지하게 발명에 노력을 쏟은 이유는 그 당시 그의 불안정한 재정 상황 또한 한몫했다. 어쨌든 돈을 벌어야 했던 달은 그의 동료인 조지 코클리와 존 해거티를 투자자로 들였다. 여담으로 코클리가 당시 약 10,000달러를 투자했는데 정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 법한 돌을 판매하려고 거액의 돈을 투자한, 한마디로 마냥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달은 매뉴얼과 돌을 상자에 넣고 포장했다. 사실 대부분의 애완돌은 둥글고 매끄러운  그냥 돌이었다. 돌이 유명해진 게 아닌, 포인트는 돌을 싼 포장에 있었다. 소비자들은 이 애완돌을 구매했을 때 돌을 사는 것이 아닌, 일련의 개그와 유머가 섞인 '아이디어'를 사는 것과 다름없었다. 애완돌은 사람들이 지역 펫샵에서 햄스터나 거북이를 구매할 때 딸려오는 상자와 비슷한 상자에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돌을 포함한 이 패키지 전체를 좋아했다. 

여러 애완돌 /flickr

애완돌이 탄생한 시기는 베트남전이 끝나고, 워터게이트 사건과 닉슨 대통령의 하야 등으로 미국 사회 전체가 집단적인 공허함과 허탈감을 느끼던 시기였다. 나라 전체의 분위기는 다운되어 있었고, 마약 중독이 사람들 사이에서 판을 쳤고 경제는 침체됐다.

이 때가 애완돌이 등장하기에 적절한 시기였다고 달은 생각했다. 달은 애완돌이 가진 유머 요소가 한껏 가라앉은 사람들에게 통할 것이라 판단했다. 혼란으로 가득했던 시기의 애완돌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탈출구 역할을 한 것이다. 애완돌은 8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gift show' 박람회에 소개되었고 달은 사람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달은 이 기프트 쇼가 일반적인 장난감 시장보다는 훨씬 더 진입하기 쉬울 거라 생각했다.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일단 미국의 유명 백화점인 니만 마커스(Neiman-Marcus)가 500개의 애완돌을 주문했다. 달은 집에서 만든 애완돌에 관한 보도자료와, 애완돌에게 둘러싸인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냈다. 미국의 시사잡지 뉴스위크는 이 기묘한 물건에 대한 기사를 썼고, Al Bolt의 "I in Love With My Pet Rock"이라는 노래도 나왔다. 달은 이 일을 두고 니만 마커스는 소매업자들에게 신뢰를 주었고, 뉴스위크는 우리에게 언론의 신뢰를 주었다고 말한다. 

토토로에 나오는 캐릭터를 그려넣은 애완돌 /flickr

애완돌이 불티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하며 곧 수요는 공급을 앞질렀다. 대부분의 가게 선반 위에서 애완돌은 흔히 볼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까지 게리 달은 약 2.5톤의 애완돌을 판매했고 미국의 모든 일간지의 3/4이 이 애완돌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몇 달만에 백만 개의 돌이 3.95달러(한화 약 4,600원)에 팔린다. 처음 약 1달러에 이 돌을 팔겠다고 결심했던 게리 달은 순식간에 백만장자가 되고 1만 달러를 투자했던 코클리는 약 20만 달러를 벌게 된다. 

유명해지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골칫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일명 "짭" 애완돌이 시장에 넘쳐나기 시작한 것이다. 달이 실제로 돌에 무슨 특허를 따로 낼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원조 애완돌 외에 수십개의 기업이 애완돌 복종 수업, 애완돌 장례 서비스 등 부수적인 재미를 더해 앞다투어 판매를 하게 된다. 크리스마스가 지난 이후 달은 관리 능력은 떨어지지만 반려동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발렌타인 선물로 애완돌을 선물하세요'라는 슬로건을 다는 등 여러 노력을 했지만 이미 애완돌은 유행이 된 후였다.

1976년 2월까지 판매량은 점점 줄긴 했지만, 그는 갖고 있는 돈으로 캘리포니아주 로스 가토스에 'Carry Nations'이라는 바를 열고 광고 분야에서 계속 일을 했다. 부자가 됐다고 해서 편해진 것도 아니었다. 여러 소송과 협박 등이 그를 위협했기 때문에 그는 몇 년간 인터뷰도 피해야 했다. 달은 1988년 한 인터뷰에서 "가끔 나는 그것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이 조금 더 소박해졌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라고 전했다. 

이 애완돌의 이름은 '밥'일까 /flickr

발명가를 지망하는 사람들, 모든 사람들이 애완돌을 발명하게 된 달의 비밀을 알고 싶어했다. 그러나 달은 이 성공에 마법 같은 공식은 없었다고 전한다. 달은 애완돌을 두고 '운명적인, 행복한 사고'라 말했다. 그는 기가 막혔던 타이밍 이외에도 몇 가지 중요한 요소들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마케팅에 대한 지식, 언론의 관심, 성공을 위한 그의 열정 등을 그는 언급했다. 이 모든 것이 있고 나서야 자신이 신뢰를 갖고 일을 진행했다는 것이다. 그는 뭔가를 만들 때 열정을 가져야 하고, 성공할 준비가 언제든 있어야 하고, 도약할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무런 관심도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애완돌에 대한 달의 말은 꽤 재미있다. 애완돌은 알레르기도 없고, 짖지도, 물지도 않고, 심지어 아무데나 배변도 하지 않는다. 크게 짖는다고 이웃에게 한소리 들을 필요도 없고, 정말 오랜 시간 그냥 놔두기만 해도 된다. 당시 애완돌은 같은 시기 판매되었던 반려동물보다도 훨씬 저렴했기 때문에 인기가 많았던 것도 있다. 달은 단순히 돌을 판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센스를 덧붙였다. 애완돌은 부드러운 종이로 만든 침구, 손잡이가 달린 상자, 그리고 '진정한 혈통을 가진 애완돌'이란 설명이 적힌 메모 위에 사뿐히 놓였다. 

상자에는 이런 주의사항도 있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상자에 공기 구멍이 있어 애완돌은 질식할 염려가 없어요'라는 아주 진지한 주의점이 적혀 있다. 달은 여기에 거의 40페이지에 달하는 매뉴얼을 포함시켰다. 모든 반려동물들의 주인들은 책임감이 있어야 했고, 이들이 반려동물을 제대로 돌보고 있는지에 대한 확인이 필요했다. 애완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애완돌의 보살핌, 그리고 훈련'이라는 매뉴얼은 애완돌이 적절하게 관리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평범한 돌 같지만, 다룰 땐 주의해야 한다 /flickr

그렇다면 애완돌에 대한 매뉴얼을 한번 알아보자. 이 설명서에는 애완돌에게 할 수 있는 행동과 함께 정말 개그를 치는 것 같은 말들과 여러 삽화가 들어 있다고 한다. 

첫번째, 상자에서 돌을 꺼냈을 때 돌이 흥분한 것처럼 보이면 오래된 신문지 위에 놓아라. 돌은 이 종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 수 있으며, 더 이상의 지시는 필요없다.

두번째, 배움, 복종이라는 능력을 보여준 돌만이 애완돌이라는 명칭을 쓸 수 있다. 

세번째, 매일 두 번씩 15분의 훈련 시간을 가져라. 애완돌의 주의력은 짧기 때문에 30분 이상은 권장하지 않는다. 

네번째, 애완돌을 부르면 오게 하기 위해 가능한한 멀리 막대기나 공을 던져라. 그리고 똑같이 가능한한 멀리 애완돌을 던져라. 물론 애완돌이 막대기나 돌을 가져오는 경우는 없지만 참고하는 것도 좋다. 

이 매뉴얼에는 말 그대로 말장난 같은 많은 명령들이 들어 있다. '짖어', '기다려', '앉아' 같은 명령어는 오히려 쉬운 편에 속하며, '악수', '일어서', '이리와'라는 명령어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어쨌든 포함되어 있다. 

애완돌을 만드는 아이들 /flickr


개성있는 애완돌들 /flickr

애완돌의 날을 아는가? 미국 현지시간으로 9월 5일이며, 이날 사람들은 밖으로 나가 애완돌로 삼기에 적합한 돌을 찾는다. 공예품 상점에 가 돌을 꾸밀 수 있는 용품들을 살 수도 있다. 누구든지 자신만의 애완돌을 가질 수 있다. 사람들은 애완돌을 자신만의 느낌으로 꾸며 SNS에 공유한다. 또 전세계 사람들이 자신만의 애완돌을 어떻게 꾸몄는지를 구경할 수도 있다. 다양한 디자인, 온갖 무늬로 치장한 애완돌을 본다면 또 다른 영감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게리 달은 2015년 만성 폐쇄성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난다. 당시 그의 나이는 78세였다. 그가 애완돌을 처음 만들었을 때만 해도 단순히 장난감 같은 이 물건이 지금까지도 상징적인 물건이 되고 사람들의 놀이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달은 지금까지 사람들이 애완돌을 애지중지 키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놀라워하면서도,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위로가 되어주는 존재라면 무엇이든지 반려가 된다

 

어떤 무언가를 옆에 두는 건 행복한 일이다 /SBS 공식 유튜브 캡쳐

애완돌을 키우는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돌에 이름을 붙이고 중요한 곳에 놓아 둔다.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 나오는 배우 임원희도 자신의 애완돌에 '돌돌이'란 이름을 붙였다. 혼란한 시기, 사람들은 애완돌로 인해 그 커다란 농담의 일부가 되고 싶어했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즐겼다. 1970년대 애완돌은 사람들에게 있어 정신적 휴식과도 같았다.

달은 애완돌이 앞으로 많은 시간 동안 사람들의 헌신적인 친구, 또는 동반자가 될 것이라 말한다. 반려동물이 떠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직설적으로 말한다면 돌은 죽지 않으므로, 둘이 헤어질 염려는 없다는 것이다. 애완돌은 항상 주인이 원할 때 옆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고 그는 전한다. 내 반려가 동물이든, 파충류이든, 식물이든 곤충이든 상관없는 시대에 무생물인 돌이 된들 어떠하랴. 자신이 얼마든지 애정을 쏟을 수 있고 그로 인해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 애완돌의 가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애완돌 패키지 /체스피스 

요즘은 내 애완돌에 이름을 직접 지어주고 주문도 할 수 있다. 애완돌이 사는 집, 품질보증서, 가이드북, 둥지 등이 상자에 오롯이 들어 있다. 상처가 생기지 않게 뽁뽁이에 둘둘 싸여 있는 나만의 돌을 마주하는 묘한 순간을 직접 체험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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