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큐레이션의 세계, 사람과 식물을 연결하다 - 식물 큐레이터 이주연
식물과 공존하는 법에 관해 이주연 식물 큐레이터와 이야기를 나눴다
도시인의 라이프 스타일에서 식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최근 집에서 식물을 키우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플랜테리어’에 입문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온라인을 통해 식물을 구매할 수 있는 판로 또한 다양하게 확대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식물에 대한 접근성이 비교적 높아졌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식물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결과적으로 마음만 먹으면 다양한 경로를 통해 손쉽게 식물을 집에 들일 수 있으나 우리는 궁극적으로 식물에 관한 자신의 취향을 파악하는 방법에 대해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식물을 기르는 일이 번거롭고 때로는 매우 어렵다고 여기는 시선도 있어 선뜻 집에 들이기 어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 브랜드 '심다' 작업실 내부 전경 /윤미지 기자 |
생각보다 더 다양한 식물의 형태들 /윤미지 기자 |
식물 큐레이션은 이러한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볼 수 있다. 식물에 관심은 있지만 어떤 식물이 자신의 취향에 적합한지 알 수 없을 때나 혹은 공간에 어울리는 인테리어 식물을 찾을 때 쉽게 결정이 내려지지 않는다면 식물 큐레이터의 도움을 받아보는 것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1호 식물 큐레이터이자 브랜드 ‘심다’를 운영하는 이주연 대표를 만나 식물 큐레이션의 세계에 관해 이야기해 보았다.
이주연 식물 큐레이터/ 본인 사진제공 |
브랜드 '심다' 작업실 전경 /윤미지 기자 |
식물 큐레이션 브랜드 '심다' /윤미지 기자 |
‘식물 큐레이션’이 조금씩 대중에게 알려지는 추세입니다. 대표님께서 1호 식물 큐레이터라는 소식을 들었는데요. ‘식물 큐레이션’에 대해 자세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큐레이션이라는 단어의 의미부터 천천히 생각해보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울 거예요. 내가 생산하지 않은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추천하는 형태의 일이잖아요. 저는 그중에서도 식물을 다루고 있어요. 하지만 단순히 식물을 추천하는 데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공간과 사람을 고려해서 그 결과를 토대로 식물과 연결하는 일을 한다고 보면 더 정확할 것 같아요.
어떤 것들을 고려하는지 궁금하실 것 같은데요. 먼저 식물을 두려는 공간의 채광 시간, 온도, 분위기와 식물을 들이려는 사람의 취향, 성향, 느낌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다음에 어울릴 수 있는 식물을 추려서 알려드립니다.
공간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식물이라고 해서 그 이유만으로 식물을 들이기는 어렵죠. 마음에도 들어야 하고, 라이프 스타일에도 맞아야 식물과 오랜 시간을 함께 잘 지낼 수 있습니다. 식물 큐레이션을 통해 그 고민을 대신해드리는 역할이라고 보면 좋겠네요.
식물 큐레이션은 사람과 식물을 연결하는 일이다 /윤미지 기자 |
식물마다 이름표가 붙어 있어 방문객이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다 /윤미지 기자 |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식물들. 식물 큐레이션에서는 공간의 채광, 온도 역시 고려해야 할 요소이다 /윤미지 기자 |
식물 큐레이터로 활동하시게 된 배경에 대해서 궁금합니다
식물 관련된 일은 아니지만, 이 일을 하기까지 정말 다양한 일을 했습니다.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영어 선생님을 했고, 국회에서 일도 했었고, 영어 통·번역 일도 했었어요. 그러다가 결혼을 했는데, 신혼집에서 신혼 선물로 받은 식물을 키우는 것에 너무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식물을 정말 잘 키워보고 싶은데, 생각보다 더 어렵더라고요.
떠나보내는 식물이 생기는 게 괴로웠고, 특히 식물은 일반 쓰레기로 분류되는 거라 큰 나무들이 죽었을 때는 그 처리 과정부터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결국 제대로 된 관리를 위해 30년 가까이 식물 가게를 운영해 온 외숙모의 도움을 받게 되었어요. 외숙모의 노하우를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집에 있는 식물에 귀 기울이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떠나보내는 식물이 하나둘 줄어들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저처럼 식물에 대한 고민을 안고 사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평소에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이나 좋은 것들을 주변과 나누기를 좋아하는데 마찬가지로 식물에 대해서도 제가 알게 된 정보들을 나누고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식물과 사람을 연결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키가 큰 식물의 모습 /윤미지 기자 |
브랜드 ‘심다’ 홈페이지를 통해서 식물 큐레이션을 신청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심다’를 통해 식물 큐레이션을 신청하면 어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나요
우선 식물 큐레이션을 의뢰하면 설문지 링크를 보내드려요. 거기에는 크게 ‘공간의 상태’를 묻는 습도, 온도, 채광에 대한 항목이 있고요. ‘좋아하는 식물’에 관한 질문도 있는데 잎의 종류, 식물의 키, 잎이 나는 모양 등에 대해 의견을 체크합니다. 이 외에도 의뢰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확인하는데 식물을 키워본 경험이다 여유 시간, 식물과의 추억 등을 체크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분과의 상담을 거치면서 만들어 낸 질문들인데요. 답변하시면서 내가 원하는 식물이 무엇인지도 알 수 있게 됩니다. 생각보다 처음 식물을 들이시려는 초보자분들이 식물 취향을 찾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 사항들을 정리해서 작업 진행을 원하시는 분에 한해 어울리는 식물과 화분을 추천해주고 더 심도 있는 상담을 이어가게 됩니다. 상업공간이나 단독주택 등 변수가 많은 곳은 직접 방문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항목을 체크하며 자신의 식물 취향을 알 수 있다 /윤미지 기자 |
식물 잎의 모양에 따라서도 개인의 취향이 나뉠 수 있다 /윤미지 기자 |
최근에 반려 식물 키우기에 관련해서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취미클래스를 통해 ‘식물 큐레이션 클래스’를 진행하고 계신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수업인지 궁금합니다
살아있는 식물을 온라인 수업으로 풀어내는 것이 참 어려움이 많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일찍이 좋은 제안을 주셨지만, 선뜻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오래 고민 끝에 문의가 늘어나서 클래스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분갈이를 알려드리는 수업이 아니라, 식물 생활의 시작을 돕기 위한 클래스를 준비했어요. 펀딩 플랫폼 와디즈를 통해 선보였던 식물생활키트를 가지고 분갈이를 하는 방법부터, 처음 키우기 좋은 식물들을 내 공간에 맞춰 고르는 법을 수업했습니다. 이외에도 사실 식물들의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이를 나누어서 살펴보고, 식물을 대하는 태도나 물주기, 식물과 함께하는 생활을 위한 전반적인 준비와 정보를 준비했습니다.
콘텐츠가 식물이다 보니, 페이퍼를 활용하거나 제 얼굴이 나오는 강의보다는 온라인이지만 그래도 식물을 많이 담아 보는 재미를 느끼실 수 있게끔 노력하고 있어요. 하지만, 직접 영상을 찍고, 편집도 하고, 수업 내용을 담아내는 모든 과정이 낯설고 어려운 건 사실이에요. 그래도 이렇게 열심히 식물을 담고, 보여드리다 보면 수업 끝엔 수강하신 분들이 식물과 의사소통 할 수 있으실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수업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종류 만큼이나 키우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윤미지 기자 |
식물을 기르는 방법 만큼이나 중요한 식물을 대하는 태도. 잘 자란 식물은 생기를 뿜어낸다 /윤미지 기자 |
식물을 큐레이션 하실 때, 주로 어떤 것에 주안점을 두시나요
공간을 가장 우선으로 보지만, 공간에 맞는 식물이라고 해서 취향을 무시해서는 안 되겠죠. 식물을 들이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보고 싶은지, 꽃이 피었으면 좋겠는지, 뾰족 잎 혹은 둥근 잎을 좋아하는지, 이파리가 위로 자라면 좋겠는지 등 식물이 가진 특성을 파악하고 나의 식물 취향을 생각해보세요. 이게 어렵다면 ‘핀터레스트’나 ‘인스타그램’ 같은 플랫폼을 활용해 보는 것도 좋아요. 봤던 식물 사진 중에 마음에 드는 식물 3~5개를 모으면 본인이 어떤 식물 유형을 좋아하는지 파악할 수 있을 거예요.
다양한 형태의 식물들 /윤미지 기자 |
자신의 취향을 알기 위해서 많은 식물을 보고 사진을 저장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윤미지 기자 |
가장 애정을 느끼는 식물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결혼 후에 신혼 선물로 식물을 받으면서 제 식물 생활이 시작됐다고 앞서 말씀드렸는데요. 그때 선물 받은 식물 중 하나가 ‘떡갈고무나무’였습니다. 떡갈고무나무를 키우면서 희로애락을 겪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분명 선물 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쉬운 실내 식물이라고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저한테는 너무 어렵더라고요. 잎이 까매지고, 떨구고, 노랗게 되고. 정말 다사다난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떡갈고무 나무를 집안에서 이리저리 옮겨보기도 했고요. 물주기도 늘렸다가 줄였다가 하면서 잘 길러보려고 노력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근데 아무것도 몰라서는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어느 정도는 정보와 습득이 필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그때 체감했어요. 그렇게 책을 사서 읽고, 인터넷도 찾아보고, 전문가분들께 조언도 구하면서 드디어! 떡갈고무나무의 새순을 볼 수 있게 되었어요. 그 기쁨을 아직까지 잊지 못해요. 아마 그 기쁨으로 식물 일을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그래서 여전히 저는 떡갈고무 나무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답니다.
떡갈고무나무. 이주연 식물큐레이터는 떡갈고무나무를 관리하며 자신의 첫 식물 생활의 문을 열었다 /윤미지 기자 |
반려동물이라는 단어는 대중적으로 익숙하지만 ‘반려 식물’은 최근 들어 많이 쓰이는 말이거든요. 식물을 가까이서 두고 함께 공존하는 것에는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저는 식물을 키우고, 배우고, 사람들에게 소개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것, 성취감, 자신감을 찾아 온전히 ‘나’로 존재하는 힘을 찾았어요. 사람이 좋아하는 걸 하다 보면 얻게 되는 감정들 같은데요. 저에게 그 매개체가 식물이었던 거죠.
비단 식물이 저한테만 그런 존재는 아닐 거예요. 초록이 주는 기쁨은 무한하다고 생각합니다. 식물 생활을 하며 식물의 말에 귀 기울여 보세요. 식물을 읽고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평온함이 찾아올 수 있답니다.
식물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안함을 얻을 수 있다 /윤미지 기자 |
젊은 세대 사이에서 ‘행잉 플랜트 인테리어’가 유행이더라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팁을 주실 수 있으신가요
행잉 식물들이 또 색다른 매력이 있죠. 상당 부분의 행잉 식물들이 물관리도 쉽고, 해가 많이 들지 않는 곳에서도 잘 사는 종류가 많아 상대적으로 부담을 적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 특히 식물끼리 높낮이를 두고 인테리어를 하고 싶은 분들에게 행잉 플랜트만큼 기특한 식물도 없을 겁니다.
최근 방송에서도 소개된 적이 있었는데, 큰 식탁 위에 조명들과 함께 연출하니 식물의 초록빛이 조명과 어우러져 또 다른 빛을 내는 역할을 해주더라고요. 반려동물이 있는 곳에도 공중에 걸어두면 반려동물이 식물을 만질 위험도 적으니 한 번 욕심 내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물을 주실 때에는 보통 흙에 심겨있기보다 나무껍질 등에 심겨있는 경우가 많아요. 물을 잘 흡수하지 않는 특징이 있으니, 물 줄 때가 되면 화분 채로 물에 담가 15분 정도 물을 충분히 빨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색다른 매력을 가진 행잉 플랜트 인테리어 /윤미지 기자 |
행잉 플랜트 인테리어를 다양하게 시도해 볼 수 있다 /윤미지 기자 |
도시인들의 라이프 스타일에 점차 식물이 차지하는영역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그 요인은 무엇일까요
코로나 19의 영향을 무시할 순 없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식물 생활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어요. 특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초록이 주는 안정감에 대해서 갈망이 있는 것 같아요. 도시, 회색빛에 익숙한 일상에 생기를 불어 주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일상이 주는 소중함을 누리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우리의 일상에 식물이 스며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서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식멍(식물을 멍하게 쳐다보는 행동)을 하며 물을 마시다가 식물에도 한 모금 나누어 주고, 봄바람이 좋을 때는 식물도 산책을 시킬 겸 창문을 살짝 열어둔 후 외출하고, 봄비가 내리는 날엔 식물에 봄비를 맞춰주기도 하는 등 아주 소소한 일상들이요. 특히 식물에 봄비는 보약이거든요.
식물은 살아있지만 소리 내어 말을 하지는 않죠. 그 점도 도시인들에게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소음에 지치고, 지친 내 마음 들어줄 곳 없는 도시 생활에서 식물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식물과 함께하다 보면 어느새 식물이 나에게 말을 걸어 주기도, 또 원하는 것을 말하기도 하는데요. 갑자기 식물과 대화하고 있는 본인의 모습을 보게 될 수도 있어요.
이 모든 과정을 저희는 ‘식물 생활’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식물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식물 생활’을 하는 사람이기도 해요. 차이가 느껴지시나요? 말 그대로 식물과 같이 ‘사는’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죠. ‘식물을 키우는 것’에서 ‘식물 생활을 하는 것’으로 점차 트렌드가 변화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시인의 라이프 스타일에서 점점 식물이 차지하는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윤미지 기자 |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을 시작한 지는 5년 차가 되었고, 벌써 양재동 화훼시장 안에 사무실을 연지도 1년이 되어갑니다. 특히 요즘은 운이 좋게도 좋은 기회들을 많이 얻어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식물이 물과 영양분을 먹고 잘 소화 시켜 쑥쑥 자라주는 것처럼, 주어진 일들을 꼭꼭 씹어서 잘 소화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계획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많은 분이 식물을 더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도록 식물과 관련된 콘텐츠, 초심자들을 위한 식물 생활 안내를 계속해서 이어갈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핸드메이커 독자분들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손으로 하는 아름답고 정직한 노동을 사랑하는 독자분들께, 식물의 잎을 가꿔주는 즐거움을 식물 생활로 시작해보시라고 추천합니다. 건강한 나와 식물을 위한 식물 생활을 시작해보세요. ‘식물을 사는 행위’에 만족하지 않고 ‘식물과 함께 사는 생활’을 심다가 응원합니다.
핸드메이커 윤미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