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계층과 출신의 사람들이 나란히 앉아 즐기는 레트로, 다이너
다이너 /unsplash |
먼 타지로 여행을 떠난다. 한참 여행을 즐기던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왠지 팬케이크가 먹고 싶을 때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한 번쯤 찾아가 볼 만한 곳이 있다. 또 날씨가 한없이 푸르다가 해가 지면서 노을이 예쁘게 걸릴 즈음, 드라이브를 하다 문득 차를 세우고 들어가고 싶은 곳이 있다. 어딘가에는 흔한 빵집만큼 널려 있는 곳이라 할 수도 있지만 미국의 옛날 영화나 드라마 같은 장소를 가 보고 싶을 때 생각나는 곳이 '다이너(diner)'다.
미국 전역은 물론 캐나다, 서유럽 일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작고 저렴한 레스토랑인 다이너는 캐주얼하고 마치 화려한 빛깔의 사탕이나 솜사탕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가 특징이다. 웨이터가 직접 서빙하는 부스가 있고, 요리사가 직접 서빙하는 기다란 좌식의 카운터가 결합된 곳이 많다. 많은 다이너들은 영업시간이 길고, 고속도로변이나 교대 근무가 많은 지역의 경우 24시간 영업하는 곳들도 많다.
캠핑카 같은, 자그마한 다이너 /flickr |
파트타임 기자 겸 조판공(활자를 사용하여 활판을 조판하고 인쇄 과정을 다루는 사람)으로 일하던 월터 스콧이란 남성은 1858년경 바구니에 담긴 파이와 달걀, 샌드위치와 커피를 야간 근무자들과 고객들에게 판매하며 수입을 보충하고 있었다. 1872년, 이 사업이 크게 번창하자 스콧은 인쇄 일을 그만두고 신문사 밖에 주차되어 있던 마차에서 밤에만 음식을 팔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스콧의 판매 방식을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수익성이 좋은 장사라는 판단이 뜨자 거리에는 점점 음식을 판매하는 마차를 끄는 상인들이 많아졌고, 시간이 지나 마을과 도시에서는 마차의 영업시간을 제한하는 조례가 생겼다. 이어 점심을 제공하는 마차도 인기를 끌며 동시에 구식 마차는 전기로 움직이는 전차로 바뀌었다. 대체된 차량들 중 상당수는 마차를 저렴한 비용을 들여 음식점으로 개조했다.
당시 '다이너'는 지역 사회의 '기름진 숟가락'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을 얻었다. 기름지고 주로 튀긴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이라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또 심야 시간대에 손님들이 몰려 생기는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다이너 영업이 금지되기도 했다. 초기 많은 식당들은 낡고 버려진 차를 개조해 다녔고, 허름한 전차의 저렴한 음식과 노동자들의 많은 방문으로 인해 좋은 평가를 듣진 못했다.
철도 차량을 개조한 다이너 /flickr |
다이너는 산업 지역 근처에 위치해 몇 안 되는 종류의 요리를 제공하는 작고 저렴한 곳들이 많았다. 초창기 다이너는 작은 푸드 트레일러나 기차들을 개조했다. 특히 도시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고 저렴한 식사를 제공하는 탓에 근로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다이너는 전형적인 미국식 식당이라 불린다. 초창기 식당 중 일부는 철도 차량을 개조해 구조를 간소화하고 내부 설비도 그대로 유지한 곳들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 다이너는 꽃 상자와 화려한 무늬의 벽지를 추가하고 음식을 가정식이라 광고하며 여성들에게도 어필했다. 1920-1940년대까지 '런치 카'로 알려진 다이너들은 마치 현대의 이동식 주택처럼 공장에서 조립식처럼 제작되어 설비만 연결하면 현장에서 배달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초기의 많은 다이너들은 일반적으로 철도 차량이나 트럭에도 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좁은 경우도 있었다. 공간이 작으니 비교적 작고 저렴한 부지에 많이 설치되었다. 원래 한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사업체였지만 현재는 체인점으로도 발달한 곳이 많다.
마치 고속도로의 휴게소 같은 느낌이다 /flickr |
대공황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식당 업체와 고객들은 미국 북동부에 많이 위치해 있었다. 대공황 기간 동안 다이너 산업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다이너들은 원래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외식업에 진출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경제가 민간 생산으로 활발해지고 교외 지역이 호황을 누리며 다이너는 시민들에게 매력적인 소규모의 비즈니스로 바뀌었다.
자연히 다이너에 대한 수요는 엄청나게 커졌다. 미국인들은 돈을 써서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것을 누리고, 결핍을 채우고 싶어 했다. 또한 전쟁 이후 많은 군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다이너에 대한 수요가 커진 것도 있었다. 이 기간 동안 다이너는 소도시를 넘어 교외의 고속도로변으로 퍼져 나갔다. 1960년대 미국에 자동차 전용도로인 고속도로 시스템이 생기면서 이동하는 여행객들이 식사를 위해 고속도로변에 있는 다이너에 들르기 시작하며 다이어는 호황을 누렸다.
화려한 모습의 다이너 /unsplash |
많은 지역에서 1970년대 다이너는 패스트푸드점으로 대체되었지만 뉴저지, 뉴욕, 펜실베니아 일부 지역에서는 주인이 독립적으로 소유해 운영하는 다이너들이 남아 있다. 1970년대 이후 새로 지어진 다이너들은 일반적으로 훨씬 더 큰 건물들이 많다. 긴 카운터와 작은 부스 몇 개를 갖추었던 단일 모양의 다이너는 이제 호화로운 벽지와 크리스탈 샹들리에, 조각상 등을 추가로 설치해 화려하게 꾸미기도 한다.
딸기 스무디와 감자튀김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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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너에 간다면 사람들은 제일 하고 싶은 게 무엇일까? 아마 다이너에서 파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할 것이다. 사실 다이너에서 먹는 음식은 다른 곳에서 먹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기름기 많은 숟가락이라 불렸던 다이너는 많은 요리를 개발해 왔지만 가성비라는 원칙은 계속해서 지켰다. 다이너에서 파는 음식은 햄버거, 감자튀김, 클럽샌드위치 및 기타 간단하고 저렴한 음식을 제공한다.
아침 식사를 만드는 모습 /unsplash |
다이너에 가면 흔히 먹는 음식들 /unsplash |
아침에는 오믈렛, 와플, 팬케이크, 프렌치토스트 등 아침 식사 메뉴를 제공한다. 커피와 저렴한 와인, 손으로 직접 만든 밀크셰이크 등을 판매한다. 미국, 미시간 및 오하이오 밸리의 다이너는 그리스 요리들이 많고, 인디애나와 아이오와에는 돼지고기 안심을 곁들인 샌드위치를 판매하는 곳이 많다. 치즈 스테이크 샌드위치는 펜실베니아에서 주로 판매하며 뉴저지에는 햄과 계란, 치즈가 들어간 샌드위치가 많다.
이렇듯 각 지방의 다이너마다 제공하는 음식들도 조금씩 다른 곳이 많다. 투명한 진열장 안에는 주로 파이와 치즈 케이크를 넣어 둔다. 햄버거든, 샌드위치든, 파이든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여행객들은 레트로하면서도 알록달록한 이 다이너 안에서 싸구려 감자튀김이든 저렴한 아이스크림이든 하나씩 놓고 그저 여행을 즐기거나 수다를 떨고 싶은 것이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y)"에 나온 다이너 /flickr |
다이너는 여러 대중문화에도 영향을 주었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When Harry Met Sally)"에 등장하는 다이너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가 되었고, 가수 톰 웨이츠의 첫 번째 라이브 앨범 "Nighthawks at the Diner"에는 다이너의 음식과 밤 문화에 대한 노래가 수록되어 있다.
에드워드 호퍼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 /flickr |
에드워드 호퍼의 역작이라고 하면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을 단연 꼽을 수 있다. 호퍼가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작품으로, 늦은 밤 한 '다이너'의 대형 유리창을 통해 바라보는 네 명의 사람들을 묘사했다. 식당에서 나오는 빛은 어둡고 황량한 도시의 풍경을 비추고 있다. 호퍼는 그림에서 보이는 외로움과 공허함에 대해 "특별히 외롭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만 무의식적으로 대도시의 외로움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호퍼는 들어가는 문이 보이지 않는 식당이 놓인 거리의 한 가운데에서, 작품을 보는 사람들을 다이너에 존재하는 각각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위치에 놓았다. 남자와 여자는 무슨 관계인지, 이들은 어디에서 왔는지, 이들은 어디로 갈 것인지, 등을 돌리고 있는 남자는 누구인지, 웨이터는 왜 어딘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지에 대한 여러 의문을 떠오르게 만든다.
식당을 채운 형광등은 이 그림의 유일한 빛으로, 가로등이 없는 거리를 비춘다. 이 빛은 양쪽 창문을 통해 어두운 밤거리로 쏟아져 들어온다. 호퍼는 식당 안 남자와 여자에게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앵글은 정면과 옆모습을 같이 쓰고 있으며 그 어떤 인물도 옆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서로 멀어 보이고, 단절된 느낌을 주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은 인간 실존주의와 외로움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림에 나오는 다이너는 실존했는지, 아닌지 아무도 모른다 /flickr |
이 장면은 호퍼가 살덤 맨해튼의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한 다이너(현재는 철거되고 없음)에 영감을 받은 것으로 추정한다. 호퍼 자신도 이 그림을 두고 '두 거리가 만나는 그리니치 빌리지의 한 레스토랑을 암시한 것'이라 말했다. 그는 해당 모습을 단순화하고, 레스토랑을 더 크게 만들었다는 말을 남겼는데 이 언급으로 인해 호퍼의 팬들이 원래 식당의 위치를 찾아 헤매기도 했다.
팬들은 호퍼의 말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호퍼는 실제 레스토랑을 '암시'한 것이며, 그림의 모습 또한 '단순화'했다는 것이다. 호퍼가 그린 것과 동일한 다이너의 모습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했다 해도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증거는 없다고 말한다. 미디어 속 다이너가 반짝반짝하고 화려한 사탕 같은 색을 가진 것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에드워드 호퍼의 '다이너'는 전쟁 중인 미국의 현대적이고 도시적인 삶을 상징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남았다는 점이 특별하다.
다이너에 모여 있는 사람들 /unsplash |
미국의 다이너에 대한 관심은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 상당수의 빈티지 다이너들이 철거 위기에 처했지만 다행히 미국과 유럽의 새로운 장소로 이전하기도 했다. 다이너 제조 업체들은 복고풍, 레트로 스타일로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일부 박물관에서는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다이너를 영구적으로 전시하거나 음식 서비스를 위한 장소로 활용하기도 한다. 다이너를 보존하는 것과 함께 다이너 문화를 보존하고 홍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이들은 생각한다.
지금의 다이너는 다양한 계층과 출신의 사람들이 모여 편안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즐기는 장소로 남아 있다. 다이너의 장점이라고 하면 누구나 들어가서 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내 옆에 앉은 사람이 교수일 수도 있고, 노동자일 수도 있다. 메인주 포틀랜드 부두에 있는 '베키스' 다이너의 점주는 "우리 카운터에는 어부와 선장, 대학교수, 편집증적 정신분열증 환자 등이 나란히 앉아 있다"며, "그들은 서로 이야기하고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한다. 우리는 모두 가족이라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이너를 찾는 손님들 /pixabay |
다이너는 미국인들에게는 마치 집과 같은 공간이다. 24시간 영업하는 다이너들은 사람들의 친목 도모와 함께 직장인이 야근을 할 때 언제든지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선거 기간 동안 후보 의원들은 유권자들을 만나기 위해 지역 다이너에 들르는 경우도 있다고. 기본적인 메뉴는 전국 어디에서나 먹을 수 있지만 지역의 특색 있는 요리들 또한 다이너에서 먹을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적은 비용으로 많은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밤늦게 찾아가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저렴한 장소, 다이너는 사람들에게는 만남의 장소이자 언제 가든 반가운 모임의 장소라 할 만하다.
[핸드메이커 김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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