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사계절 정원 : Garden for My Bucket List
꽃들이 가득한 정원과 함께하는 인생 제2막. 경사진 대지를 따라 생긴 계단, 항아리 분수와 장미 정원이 산책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인생의 버킷리스트, 나를 위한 정원
30년 가까이 치과의사의 삶을 살아온 정원주. 그녀는 평생 버킷리스트 1순위로 꼽았던 나만의 정원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은퇴를 선언한다. 해운대 바닷가 광안대교가 보이는 멋진 풍경보다 흙을 만지며 손수 가꿀 수 있는 정원이 있는 삶이 훨씬 소중했다. 부산 기장군, 점 찍은 대지에 터를 닦고 집 지을 준비를 하며 매일 설렜다. 어서 건물을 짓고 꿈에 그리던 정원을 만들고 싶었다.
주택의 대문. 대지의 경사와 단차를 극복하기 위해 주차장에서 대문으로 향하는 계단이 생겼다. 출입구 계단 옆에는 단차를 활용한 화단을 마련해, 이웃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웰컴 가든이 되어준다. |
남편의 오랜 로망이었던 넓은 잔디밭과 항아리 분수가 있는 앞마당. 오랜 세월의 흔적이 정겨운 항아리에 모터를 설치해 만든 분수는 잔잔한 물소리로 마음을 안정되게 한다. 곁에는 벤치를 두어 작은 쉼터를 만들었다. |
경사진 땅에 약 1m의 옹벽이 있고, 그 위에 다시 경사가 생긴 대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진입로 주차장에서 대문으로 가는 길에 나지막한 계단이 생겼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드넓은 잔디밭이 펼쳐지며 정면에 아담한 항아리 분수가 자리하는데, 이는 남편의 로망을 반영한 것이다. 경사진 앞마당에는 낮은 단차를 두는 동시에 화단석과 같은 톤의 판석을 깔아 산책로를 만들었다. 덕분에 넓은 정원을 구석구석 걸으며 다양한 풍경을 마주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한쪽 잔디밭에는 둥근 시멘트 볼을 조형물로 배치하여 손주들이 놀러왔을 때 놀이터 역할을 겸할 수 있도록 했다. 담장은 높지 않고 정원의 식물들이 잘 보일 수 있는 디자인으로 골랐다. 동네 사람들과 담장 너머로 얼굴을 마주 보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말이다. 정원에서 땀 흘리며 코로나 시기의 어려움도 잘 넘어서고 있다는 그녀. 이제는 치과의사보다는 정원사라는 타이틀이 잘 어울리는 듯하다.
꿈꾸었던 식물이 가득한 정원. 6~7월 초여름에는 모감주나무의 노란 꽃이 정원을 환하게 밝힌다. |
정원주는 버킷리스트였던 정원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이루어가고 있다. 손주들이 와서 신나게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소망도 일상이 되었다. |
집은 가장 높은 대지에 자리하고, 나지막한 높이의 두 단으로 나뉜 앞마당은 멀리 산과 하늘을 배경 삼아 시원한 풍경을 선사한다. 계단석 근처에는 크고 작은 식물 화분을 조화롭게 배치했다. 긴 담장을 따라 이어지는 화단에는 파니쿰, 마타리 등의 주위에 자엽안개나무, 가침박달 등의 관목이 정원의 중심을 잡아준다. / 하늘에서 내려다본 주택과 정원의 모습. 산책로와 화단 등 잘 정돈된 정원 레이아웃이 한눈에 들어온다. |
GARDEN DESIGN 대지의 경사를 활용한 정원 만들기
주택 신축과 정원작업이 함께 진행될 때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이에 맞추어 정원 계획을 조정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정원은 처음 대지 상황은 단차가 없는 평지였으나, 주택을 시공하기 직전 옆집과의 건물 높이가 심하게 차이가 나는 것을 고려해 대지를 1m 정도 높이는 토목공사가 진행됐다. 이에 따라 정원 계획도 방향이 수정되었다. 단차를 활용하여 석축을 추가로 쌓고 정원을 조성하게 되어 더욱 다양하면서도 입체감 있는 정원이 탄생했다. 덕분에 주차장에서 대문으로 이어지는 계단 옆 입구 정원, 정원에서 포치로 이어지는 낮은 계단에 생기는 정원 등 다양한 식재 공간이 생겨 식물을 다채롭게 심을 수 있게 됐다. 대문 밖 주차장에서부터 이어지는 석축과 화이트 컬러의 펜스, 주택의 어울림은 유럽 정원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대문 안의 양쪽에 생긴 화단. 오른쪽에는 섬개야광나무를, 왼쪽에는 무늬쥐똥나무와 홍매자를 심었다. |
단차가 생긴 곳에 계단을 만들고, 옆에는 엣지를 둘러 계절감을 주는 관목을 심었다. |
주차장 앞 벽을 따라 생긴 긴 화단. 펜스 너머 정원과 연결감을 주었다. |
SKETCH
파니쿰 헤비메탈(Panicum virgatum ‘Heavy Metal’) 겨울까지 직선으로 뻗은 줄기를 유지하며 은청빛이 매력적이다. 소금기 있는 토양에서도 잘 자란다.
파니쿰 스쿠아(Panicum virgatum ‘Squaw’) 늦여름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며 가을 정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보통 그라스류는 건조에 강하고 관리가 편하다.
스키자키리움(Schizachyrium scoparium ‘Jazz’) 키 70cm 내외로, 8월부터 피는 자줏빛 회색 꽃이 다음 해 2월까지 은빛으로 변하며 볼거리를 준다.
오이풀(Sangquisorba officinalis) 늦여름 정원에서 1.8m까지 자라며 자주색 꽃이 그라스 등과 잘 어울린다. 너무 높게 자라지 않도록 5월 말경 줄기를 잘라준다.
추명국(Anemone hupenhensis) 늦여름부터 꽃이 피어 첫 서리까지 볼 수 있다. 반 그늘 정도가 가장 좋은 환경이며 일조량이 많으면 수분을 신경 써야 한다.
꼬리조팝(Spiraea salicifolia) 일반 조팝보다 키가 커 1~2m까지 자라는 관목. 6월경부터 연분홍 원추 모양의 꽃이 새로운 가지에서 피어나 존재감을 준다.
PROCESS
1_기존 대지보다 높이를 약 1m 돋아 터를 잡고 주택 건물을 앉혔다. 이 때문에 넓은 마당에 경사가 생겼다.
2_주차장에서 대문으로, 정원에서 포치로 이어지는 길에 계단이 만들어지고 이를 활용한 정원이 다양하게 생겼다.
3_대문으로 가는 계단 옆에는 입구 정원을 만들어 정원주가 원했던 수사해당을 심었다. 오수관은 식물이 자라면서 가려준다.
4_대지가 높아지면서 대문 옆에도 작은 사각 화단이 생겨 주차장 벽의 긴 화단과 연결감을 준다.
가침박달나무, 자엽국수, 꼬리조팝 등의 관목과 오이풀, 부처꽃 등의 초화류, 그라스류가 조화를 이루는 사계절 정원. / 안쪽 마당에는 벽돌로 박스형 화단을 여러 개 만들어 채소밭, 장미 정원 등 다양한 테마의 작은 정원을 만들 수 있도록 했다. |
정원 한편에 둥근 조형물을 배치했다. 산책의 볼거리가 되어주기도 하고 잠시 걸터앉을 쉼터, 손주들의 놀잇감이 되어준다. |
정원디자이너 김원희 _ 엘리그린앤플랜트(Elly Green n Plants)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주의 정원을 지향하며 개인 정원뿐만 아니라 공공정원, 상업공간 등 다양한 정원·식물 작업을 한다. 개인과 단체를 대상으로 정원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정원가 ‘피트 아우돌프’에 관한 영화 <Five Seasons>를 한국에 처음 소개하기도 했다. 2018년 일본 세계가드닝월드컵에서 ‘최우수디자인상’(최재혁 작가와 협업)을 수상했고, 2019년부터 매년 첼시 플라워 쇼에 프레스로 참석하여 다양한 정보 제공과 강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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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_ 조고은 | 사진_ 변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