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ttage garden
힘든 노동일 뿐이었던 정원 일이 이젠 즐거움이 깃든 ‘풀멍’이 되었다. 박공지붕의 초록빛 외관이 매력적인 양평 전원주택의 새로운 정원은 해마다, 계절마다 다른 풍경과 이야기로 가족의 일상을 두드린다.
10년 만에 돌아온 집, 가족의 두 번째 정원
잔디밭인지, 잡초밭인지 싶던 정원. 꿈에 부풀어 마련한 세컨드 하우스에서 처음 몇 년은 풀 뽑느라 고된 새벽을 보냈다. 휴식과는 거리가 먼 전원생활에 지쳐갈 무렵, 가족은 결국 집을 떠났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다시 돌아온 가족에게 정원가 친구는 천천히 거닐며 즐길 수 있는 정원을 새로 만들어 주었다.
캐나디안 스타일의 목조주택은 페인트칠을 새로 하여 아주 산뜻한 분위기가 난다. 녹색의 집을 보고 있자니 따뜻하고 정겨운 정원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세컨드 하우스라 관리의 편의성은 물론 휴식과 힐링이 특히 정원의 중요한 요소였다. 메인 정원은 사계절을 담을 수 있게 구성하고, 입구에서 현관으로 이어지는 길은 푸른 잔디밭을 조성하기로 했다.
만병초, 가침박달나무를 중심으로 숙근샐비어, 정향풀, 에키네시아, 에린지움, 숙근제라늄, 실새풀 등의 그라스가 조화를 이룬다. 청보라색을 메인 컬러로 하여 다양한 높낮이가 리듬감을 주는 식재다. 4월 중순에는 가침박달나무의 흰 꽃이 눈부시고 5월이 되면 보라색 샐비어 꽃이 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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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 앞 정원. 자엽안개나무를 비롯하여 병아리꽃나무, 아미초, 러시안세이지, 알리움이 풍성하게 자라나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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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운데 선 소나무는 전체적인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여 그대로 두고, 벽돌길을 걸어 산책할 수 있게 사각형의 작은 정원을 조금씩 다르게 배치하여 길을 연장했다. 정원이 산책길에 접하는 면이 많을수록 더 많은 식물을 가까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처음엔 조금 휑한가 싶던 정원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커가는 식물로 채워졌고, 지켜보는 가족의 마음도 덩달아 기쁨으로 가득 차올랐다. 노동일 뿐이었던 풀 뽑기는 이제 휴식과 명상의 시간. 정원과 함께 가족도 매일 조금씩 성장한다.
사각형 작은 정원들의 배치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길이 정겹다. 크고 낮은 식물들이 풍성하게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아늑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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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 정원은 피톤치드 영향으로 식물이 자라기 쉽지 않은 소나무 아래를 피해 까마귀밥여름나무, 무늬병꽃나무, 작은 키의 자엽국수나무를 심었다. 가장자리엔 지피식물인 와인색 클로버가 번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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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과 노란색 꽃을 중심으로 연보랏빛 네페타가 가장자리를 채운다. 진노랑 톱풀과 흰 톱풀에 미역취와 좁쌀풀이 여름이 되면 무성하게 자리하여 수사해당화 주위에 가득히 핀다. 수사해당화는 4월에 핑크색 꽃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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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ur seasons _ 양평 정원의 사계절
이 정원의 가장 아름다운 뷰 포인트는 집과 마주 보고 있는 나무 벤치에 앉아 바라본 모습이다. 이른 아침이나 해 질 무렵, 향긋한 차를 마시며 벤치에 앉아 있으면 그 어떤 것보다 힐링이 된다고. 정원과 목조주택이 한데 어우러진 풍경 속에는 4개의 사각형 정원과 잔디밭 너머 자엽안개나무가 있는 작은 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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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체감 온도로 느끼지만, 정원에서는 사계절을 오감으로 오롯이 느낄 수 있다. 화사한 꽃들이 인사를 건네는 봄의 정원, 짙은 초록이 보기만 해도 싱그러운 여름 정원은 당연히 아름답다. 정원주는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화창한 날이면 다회(茶會)를 열곤 한다고. 정원의 가을과 겨울은 또 다른 울림을 준다. 불어오는 바람에 아스라이 흔들리는 억새, 마른 목수국 꽃 위로 살포시 내린 뽀얀 눈… 어디선가 보았던 멋진 사진 속 풍경이 바로 내 정원에 있다.
TIP 1. 관목과 초화류를 함께 배치하기
정원에 식물을 배치할 때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관목’의 활용이다(중간 크기 이하의 나무를 관목이라고 하며, 다 커도 2m 내외로 자란다). 이 정원에서 관목은 각각의 사각형 정원에서 시각적인 포인트 역할을 한다. 아직 식물들의 키나 덩치가 크지 않은 이른 봄의 정원에서 작게는 70~80cm, 크게는 2m 내외의 키를 가진 관목은 형태적으로 포인트가 되어줄 뿐 아니라 이른 봄부터 꽃을 피워 정원에 계절감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TIP 2. 6월 정원 관리
장마가 오기 전에 아직 뿌리가 여린 잡초를 제거해 주면 여름 잡초 관리가 훨씬 쉬워진다. 영국의 첼시 플라워쇼가 열릴 무렵인 5월 말~6월 초, 숙근초(다년초, 여러해살이풀)를 50% 이상 잘라주는 ‘첼시찹(Chelsea chop)’을 해주면 식물이 너무 크거나 쓰러지지 않게 하며, 꽃을 한 번 더 볼 수도 있다. 고온다습한 장마철 이후 정원 관리를 위해 필요한 작업으로, 톱풀, 숙근제라늄, 샐비어, 알케밀라 등에 적용하면 여름 이후 꽃을 두 번 볼 수도 있다.
SKETCH
자엽국수나무(Physocarpus opulifolius ‘Diabolo’) / 고광나무(Philadelphus schrenkii Rupr)
(왼쪽) 자주색 잎을 가진 2m 전후로 자라는 관목. 잎이 진 겨울에 수피(bark, 樹皮)도 아름답다. / (오른쪽) 양지에서 잘 자라는 관목. 봄에 피는 작고 흰 꽃은 청순한 느낌을 주며 벌들이 좋아하는 꽃이기도 하다.
솔정향풀(Amsonia hubrichtii) / 뱁티시아(Baptisia australis)
(왼쪽) 연한 푸른색 꽃도 예쁘지만, 단풍 든 잎이 매우 아름답다. 꽃이 진 후 윗부분을 잘라주면 가을에 단정함을 유지한다. / (오른쪽) 약 120cm까지 자라는 콩과식물. 인디고블루 컬러의 꽃이 핀 후 잎을 잘라주면 단정한 외형을 유지한다.
자엽병꽃나무(Weigela florida ‘Foliis Purpureis’) / 아스트란시아(Astrantia major ‘Roma’)
센트란투스(Centrantus ruber ) / 루비솔체(Knautia macedonica )
PROCESS
1_오랫동안 방치된 잔디와 철쭉을 포크레인으로 제거하고, 지면을 평평하게 고르는 작업을 한다.
2_산책길과 정원 영역을 분리한 후, 마사토를 깐다. 철제 프레임은 벽돌을 지지할 수 있도록 고정한다.
3_땅 높이를 정리한 다음, 산책길에 고벽돌을 건식으로, 패턴을 만들며 깐다.
4_식재 과정이 완료된 모습(2020년 5월). 계획한 대로 식물을 배치하고, 다양한 방향에서 확인한 후 땅에 심는다.
테라스에서 주택 입구를 향해 바라본 모습. 현관으로 향하는 부분은 잔디밭으로, 나머지는 산책길과 사각형 정원으로 레이아웃을 구성했다. 입구쪽 진입로 정원에는 주차장이 인접하여 무성한 잎으로 가림막 역할을 해줄 식물이 필요했다. 이에 철쭉을 선이 예쁘게 전정하여 심고, 무늬쥐똥나무와 조팝으로 가장자리를 둘러쌌다. 여름이 되면 무성해지는 목련나무 아래 반그늘에는 하야초, 호스타, 노루오줌, 긴산꼬리풀 등이 자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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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가 김원희 _ 엘리그린앤플랜트(Elly Green n Plants)
사계절 아름다운 자연주의 정원을 지향하며 개인 정원뿐만 아니라 공공정원, 상업공간 등 다양한 정원·식물 작업을 한다. 개인과 단체를 대상으로 정원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정원가 ‘피트 아우돌프’에 관한 영화 <Five Seasons>를 한국에 처음 소개하기도 했다. 2018년 일본 세계가드닝월드컵에서 '최우수디자인상'(최재혁 작가와 협업)을 수상했고, 2019년부터 매년 첼시 플라워 쇼에 프레스로 참석하여 다양한 정보 제공과 강의를 하고 있다.
www.instagram.com/wonheekim33
구성_ 조고은 | 사진_ 변종석
ⓒ월간 전원속의 내집 2021년 6월호 / Vol.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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