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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M 탑재 맥 개봉임박?

루머 밀(Rumor mill)이라는 단어가 있다. 굳이 번역하면 소문 제조소, 그러니까 소문의 원천이라는 뜻인데, 애플 제품만큼 루머 밀이 활발하고 또 재미있게 가동되는 동네도 없다. 신제품에 대한 비밀주의야 많은 기업이 채택하고 있지만, 풍문 대잔치가 벌어지기 위해서는 그 기업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관심이라는 원자재가 충분히 공급되어야 비로소 루머 밀이 신나서 가동될 수 있다.


루머 밀 스타도 있다. 애플 업계 분석전문가인 밍치궈(Ming-Chi Kuo) 등은 수시로 언급된다. 소문의 원천을 말 그대로 찾아보자면 역시 공장과 물류, 그러니까 원자재의 흐름을 데이터상으로나 그리고 운 좋게 목격하게 된다면 소문의 굴뚝에 불을 지필 수 있다. 그리고 아무래도 정직원보다는 협력업체 쪽이 비밀주의에 대한 충성도가 약하니 공장과 물류를 의존하고 있는 중국 언저리에서 풍문은 시작되곤 한다.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게 된 요즈음, 근래 애플 관련 소문 명중률은 상당히 높다.


아이폰 소문이 역시 인기가 많지만, 맥에 대한 소문도 꾸준한 관심을 끈다. 일단 금주에 신형 키보드를 탑재한 맥북 에어의 신제품이 나온다는 소식이 있는데, 그보다도 이목을 집중하게 만드는 것은 ARM을 탑재한 맥이 12~18개월 이내에 등장하리라는 풍문이다. 애플은 맥에는 지금까지 다른 PC처럼 인텔 CPU를 써왔다. 반면 아이폰에는 자신들의 맞춤형 ARM CPU를 썼다. 이제는 아이폰에 쓰는 자신들의 A 시리즈 CPU를 탑재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다. 오래된 풍문인데 임박했다고 하니 아무래도 기계의 두뇌가 바뀐다는 느낌 때문인지 체감이 다르다.

애플의 CPU는 폰에서만 쓰기에는 너무 아까워

수중에 더 좋은 부품이 널려 있는데 이걸 안 쓰는 일은 어지간한 참을성이 없다면 하기 힘든 일이다. 애플은 근래에 그런 처지에 놓여 있다. 맥북 프로보다 아이패드 프로의 성능이 더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애플의 A시리즈가 이미 인텔의 노트북용 U시리즈보다 빨라지기 시작하고 있다. 게다가 스마트폰용 CPU이기에 배터리 효율도 더 높다.


사실 애플로서는 그간 몇 번이나 인텔과의 이인삼각 경기에서 스텝이 꼬였다. 게다가 인텔에 있어 애플은 큰 고객이지만 1등 고객은 아니기에 우선순위에서도 밀려 공급에서도 불이익을 받기도 했다. 자기들은 7나노 공정으로 들어선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14나노 CPU를 받아 써야 했던 날들이 서럽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소프트웨어에서 하드웨어까지 완전한 통제를 원했던 애플이다. 이제 올해 하반기부터 풀릴 5나노 공정의 A 시리즈 자사 CPU로 전 제품을 통일하고 싶은 욕구가 없을 리 없다. 때는 무르익었다.


그런데 인텔을 버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우선 맥의 충성 고객층이 개발자들과 같은 프로 계층이라서다. 맥은 애플 생태계뿐만 아니라 다양한 환경에서 일하는 생산자들의 표준 장비가 되어 있다. 꼭 인텔 CPU이어야만 가능한 일들이 없지가 않다.


하지만 이번 맥OS 카탈리나가 32비트 지원을 쳐내면서 많은 잡음이 있었지만, 과거에 머무른 사람들을 다 데리고 갈 수 없는 일, 또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자신을 얻었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인텔 CPU의 스펙트럼은 꽤 넓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노트북이 아닌 데스크탑, 예컨대 맥 프로에 들어가는 것 같은 초고성능 워크스테이션용 CPU까지 애플이 만들어야 한다면 그 부담은 예사롭지 않다. 애플은 이미 ARM사(社)에 특별한 의존 없이 더 뛰어난 CPU를 만들어내는 괴력을 보여주고 있고, 아무리 5나노 공정의 힘을 등에 업고 있다고 해도 아직은 미답의 길이다.

만약 ARM으로의 이주가 시작된다면 그 신호는 WWDC

또 다른 과제는 인텔용 소프트웨어를 ARM용으로 이식하는 일인데, 이건 경험이 있다.


맥도 처음부터 인텔은 아니었다. 2005년 이전까지만 해도 맥은 IBM, 모토로라와 AIM 연합을 꾸려 만든 PowerPC라는 두뇌를 쓰고 있었다. 오래전이지만 이미 개발자들은 PowerPC에서 인텔로 이주해 본 경험이 있다.


2005년 WWDC(애플 세계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스티브잡스는 오늘의 모든 데모가 실은 인텔 펜티엄4가 탑재된 맥에 의해서 구동되었다고 발표하며, 사람들을 충격의 도가니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이어서 그 인텔 맥 맛보기판을 1년간만 개발자들에게 999달러에 임대하기로 한다. DTK(Apple Developer Transition Kit)라 불리게 된 기계들이다.


정말 풍문대로 ARM으로의 이행이 임박했다면, 올해 WWDC에서는 개발자들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켜야 하는 해다. DTK든 가상화든 뭐든 개발자들이 직접 만질 수 있는 무언가가 등장해야 하는 시기다.


특히 CPU가 바뀌는 것과 같은 큰 변경에는 재컴파일을 하도록 해줘야 하는데, 모든 소스코드를 자신이 통제하는 경우라면 몰라도 대다수 앱은 다른 프레임워크나 라이브러리에 의존하고 있다. 이들 기저 부품들이 적절히 알아서 미리미리 지원되지 않으면 이도 저도 못하는 상황이 장기간 이어지게 된다. 따라서 최소한 6개월 이상, 이상적으로는 1년 이상의 여지를 주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낙오되는 오래된 빈티지 소프트웨어도 꽤 될 수밖에 없지만, 이는 어쩔수 없는 일이다.


루머 밀의 소문이 맞다면 ARM 맥의 소식은 불과 3개월 뒤면 듣게 될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올해 WWDC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여파로 온라인으로 제공될 예정인데, 아직 일정 등이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행간을 읽어 보니 무료로 누구나 참가할 수 있을 듯싶다.


어쩌면 12인치 맥북의 단종도 결국 이 신호탄이었을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궁금증은 많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2005년 같은 완전 이행은 쉽지 않아 보이는데, 맥OS도 멀티플랫폼 OS의 길을 걷게 할 생각일까? 당분간은 성능 중시형은 인텔, 휴대형은 ARM으로 양분화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개발자들이 뜬금없이 바빠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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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hyun
채널명
김국현
소개글
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