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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NAND 아파트? 반도체도 부동산 개발 성공 신화를 꿈꾼다.

3D NAND 아파트? 반도체도 부동

만약 아직도 여러분의 PC가 하드디스크로 부팅하고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SSD로 바꿔 보자. 왜 진작에 누군가 강하게 무조건 SSD를 쓰라고 이야기해주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차이는 크다.

 

따라서 SSD의 매력을 한 번 맛본 이들은 당연히 SSD를 재구매할 수밖에 없기에, SSD의 미래는 밝다. SSD도 결국 반도체, 그간 반도체 업계가 짭짤했던 이유는 이런 소비자 심리만 봐도 금방 읽을 수 있다. 게다가 모바일과 사물인터넷에는 플래시 메모리가 유일한 선택지다. 반도체 호황은 당연한 일이었고, 대한민국 전체 시가총액 중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비중이 커지면서 한국 경제의 상징적 견인차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어떨까? SSD의 공급 과잉으로 내년에는 기가바이트 당 단가가 0.08 달러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100GB면 8달러, 즉 200GB 정도의 표준적 용량을 2만 원 이하로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된다. 중국 정부가 확실히 밀어주며 반도체 굴기를 외치고 있고, 아무래도 소프트웨어 분야와는 달리 반도체 분야는 건설업의 분위기가 나기 때문에, 한 번 승자가 장기 집권하기 힘든 물량 공세의 산업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미 기술은 고밀도 대용량화로 치밀하게 진척 중이어서 성장세는 선형적이다. 이 상태만 계속 이어져도 불과 5년 뒤에는 수백 TB의 SSD가 시판될 듯하다. HDD가 여전히 쓰이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여전히 용량당 단가탓인데, 사정이 이렇다 보니 HDD 기업의 주가는 이미 내리막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SSD는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고속 성장 신화를 이룩했을까? 위에서 건설업의 분위기가 난다고 한 이유가 이 성장 공식에 있다.

 

인구밀도, 아니 정보밀도가 높아지면 메모리셀을 작게 만듦으로써 용량을 늘린다. 그렇지만 닭장 같은 쪽방 셀로는 전기적으로 불안하여 더는 감당이 안 된다. 물리적으로도 셀을 영원히 더 작게 만들기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셀 하나에 0과 1의 두 가지 값만 넣는 것이 아니라, 다단계의 값을 넣는 묘수를 동원한다. 회로란 ON과 OFF의 1비트가 상식이지만, 하나의 메모리 셀이 00, 01, 10, 11의 2비트 값을 갖게 해 본 것. 이제 같은 공간에 더 많은 정보가 거주할 수 있게 된다.

 

SSD를 사려고 보면 SLC, MLC, TLC라는 용어가 상품 정보에 기재되어 있곤 한다. 앞글자는 각각 싱글, 멀티, 트리플을 의미하는데, 하나의 메모리 셀에 기록하는 정보가 싱글, 즉 1비트인지, 멀티(2비트)인지 3비트의 트리플인지를 나타낸다. 3비트(000, 001, 010, 011, 100, 101, 110, 111)를 나타내려면 전압의 자잘한 변화로 8단계를 구분해야 하므로, 저항의 변화 등 미세한 노화현상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다. TLC 쪽이 쓰기 회수 제한이 더 쉽게 걸리는 건 이 때문이다. SSD에 쓰이는 NAND 플래시 메모리의 수명은 이렇게 결정된다.

 

이처럼 셀을 작게 만들고 또 여기에 여러 값을 갖게 하는 것은 전기적으로 불안한 상태, 이 불안함을 컨트롤러 등 내장 소프트웨어의 힘으로 어찌어찌 커버해 왔지만, 이 또한 한계에 봉착한다. 그렇다면 1층짜리 집을 복층, 아니 아파트로 만든다. 좁은 땅이지만 위로 올리면 셀 크기를 너무 작게 하지 않아도 되니 안정적으로 전기적 정보가 동거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삼성이나 하이닉스는 96층으로 경쟁에 앞서고 있는데, 누가 되었든 5년 뒤에는 500층까지 가리라는 전망이다.

 

이제 용적률을 한층 높였으니, 단위면적당 거주인원을 늘릴 차례다. 이제는 심지어 QLC(Quad Level Cell)라고 하여 4비트를 표현하는 것이 차세대 주자가 되려 하고 있다. TLC보다도 당연히 더 느리고, 쓰기 회수 제한도 쉽게 걸리는 등 성능은 더 떨어진다. 그럼에도 주거환경보다는 건축밀도를 높이려는 욕망은 멈추지 않는다. 도시 개발은 그런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시장의 상식은 SLC나 MLC를 TLC보다 선호하기에 원가절감이 다급한 제조사들은 답답하다. 인구가 팽창해 버린 지금, 모든 도시민이 1층 단독에 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신축 건물들은 층수가 올라가도 기자재와 설비가 좋아져서 대개 더 쾌적하다. 플래시메모리도 그런 모양이다.

 

한번 도시를 맛본 이상 시계를 되돌릴 방법은 없는 일, 정보 역시 초고층의 집단거주가 상식이 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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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hyun
채널명
김국현
소개글
줌닷컴, 조선일보, 한겨레 등에 글을 연재중이며 '오프라인의 귀환' 등 유수의 저서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