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잊혀질 권리
[김국현의 만평줌] 제40화
잊히다가 이미 피동이므로, “잊힐 권리”가 맞는 문법이라고 하지만, 잊혀질 권리가 왠지 귀에 더 익는다. 어쨌거나 한참을 시끄러웠던 이 권리. 정부가 이 권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
이 잊힐 권리의 원조는 유럽. 어떤 남자가 자기 흑역사가 구글에서 검색되지 않게 해달라 했다. 자기 이름을 검색하니 잊고 싶은 과거 신문 기사만 쏟아져 나온 것. 이렇게 남이 나의 과거에 대해 쓴 글로 인해 오늘의 내가 괴롭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 바로 잊혀질 권리의 원조다.
이 요청은 유럽에서 받아들여져 권리가 되었는데, 유럽은 과거 전란시 벌어진 인종차별의 뼈아픈 역사적 기억 때문에 프라이버시에 굉장히 민감하다. 이 사건 후 한국에서도 이 권리를 수입해야겠다는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한국은 이미 이런 권리의 선진국이다. 세계 최강 수준의 명예훼손도 있고 또 유례없는 임시조치로 블라인드 처리를 할 수도 있고, 심지어 개인정보보호법도 무소불위의 힘을 지니고 있다. 그 유럽의 사내처럼 법원에 호소하다가 오히려 전세계적 유명인이 될 필요도 없이, 한국의 높은 분들은 알아서들 조용히 잘도 지운다. 다 되게 되어 있고 안되면 명예훼손으로 협박하면 된다.
따라서 여기에 유럽식 잊혀질 권리까지 덤으로 얹혀지게 되면,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협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철권으로 과거를 쉽게 지우는데 권리가 모자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미국의 입장이 한국에 더 필요하다.
이미 올해 한국은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10계단 다시 하락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그 비결은 명예훼손 등의 공포로 자기검열을 시키기 때문이다.
그런 걱정이 내심 마음에 걸렸는지 이번 정부의 가이드라인은 제3자가 아닌 자기 자신이 올린 정보에 대한 것에 국한되었다. 세계를 시끄럽게 했던 그 ‘잊혀질 권리’와는 사뭇 다른 한국형이었다. 그런데 왜 만들었는지는 잘 모르겠는 지경이다. 무언가 만들기는 만들어야겠는데 내심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하여 자기 계정도 스스로 찾을 줄 모르게 된 안쓰러운 상황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되어버렸다.
시민단체들은 한시름 놓은 듯해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원글 폭파’의 신공을 발휘할 수 없게 된 수많은 경우, 또는 댓글 폭파까지 하고 싶은 경우, 약은 이들에 의해 아주 유용하게 활용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사업자는 귀찮게 되었다. 계정은 모르지만 그래도 자기 글이라고 막무가내로 주장하는 진상 고객을 위해 졸지에 콜센터 직원을 늘려야 할 상황이 벌어질 것 같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