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테크 밸런타인데이?
[김국현의 만평줌] 제78화
오늘은 밸런타인데이.
서양에서는 사랑을 확인하는 의미에서 보통 남자가 먼저 선물이나 장미를 건네는 것이 일반적인데, 동양에서는 어째 여자가 남자 직장 동료에게 의리로 초콜릿을 주게 되어 버린 이상한 하루. 그다지 친하지 않은 부장님에게 꼭 초콜릿을 줘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자괴감이 사회적으로 충만해졌는지, 얼마 전 한국에서는 스트레스받는 직장인을 위해 부장껌, 사장껌이 시판되었다고 한다.
밸런타인데이에 여자가 선물을 주게 된 계기는 고도성장기 일본에서 ‘여성의 자기표현’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이런 행사로 정착하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어쨌거나 그 과정에서 제과업계의 전략과 전술이 충분히 발휘되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정확히 한 달 뒤로 설정된 화이트데이는 비교적 그 역사가 명확한 현대적 상업 활동인데 일본의 사탕과자공업협동조합에 공식 홈페이지까지 있다. 1978년 총회에서 의결, 1980년 1회 화이트데이가 선포(?)된 것. 업계 협회의 친목 활동도 열심히 하면 이렇게 역사를 쓸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사례다.
사랑과 IT는 잘 안 어울리는 것 같은데, 꼭 그렇게만 볼 것도 아닌가 보다. 밸런타인데이는 달력상에서 어중간한 곳에 있기에 잘만 활용하면 중요한 판촉 찬스로 활용될 수도 있다. 핑크로 도배된 애플의 밸런타인 특설페이지 등을 보면 누구에게 무엇을 팔아야 하는지 모두 매번 아이디어를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도의 경우 이번에 4년이 돼가는 아이폰5S를 특별가에 판매한다고 한다. 어쨌거나 현지 실정에 맞게 모처럼의 ‘데이’를 잘 활용하려 애쓰고 있는 모습이 보이긴 하지만, 이런 판촉은 그다지 낭만적이지 않다.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IT 제품들은 의외로 많을 수 있다. 거꾸로 같은 초콜릿이라도 테크놀로지의 쿨함으로 포장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두 아이디어를 내보자.
방금 생각난 아이디어인데, USB 선풍기처럼 USB에 꽂아서 데워 먹을 수 있는 퐁듀 세트는 어떨까? 3.5인치 하드디스크 모양의 덕용 초콜릿은 어떨까?
비웃는 소리가 들리지만, 이런 망상도 정말 실행하면 비즈니스가 된다. 키보드 모양의 와플은 넥슨 컴퓨터 박물관의 시그니처 메뉴다. 또 이런 키보드 와플을 직접 만들 수 있는 틀은 해외에서도 시판 중이다. 어디가 원조인지는 잘 모르겠다. 해외의 제품은 박물관 개장 이후인 2014년 킥스타터 출품작이지만, 처음 아트 프로젝트로 등장한 것은 2007년. 하지만 이 둘은 엄연히 달라서 넥슨의 것은 키보드가 튀어나와 있고, 시판 중인 것은 그 부분이 들어가서 소스를 담을 수 있다.
어느 쪽이든 밸런타인데이의 브런치로 제격이다.
...그리고 바로 검색해 보니 USB 퐁듀는 이미 세상에 나와 있었다. 사랑과 IT는 뜻밖에 잘 어울리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