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카가 이렇게 좋은데도 우리가 디카를 사는 이유
스마트폰은 참 많은 것을 무너뜨렸다. 여기저기 피해자가 하도 많아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처참하기로 치자면 디카 산업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업계 규모는 2010년의 최전성기에 비해 5분의 1 수준으로, 2010년 전 세계의 출하 대수는 1억 2천만 대였는데 2017년에는 2,500만대에 불과했다. 그 중 특히 똑딱이라고 불리던 콤팩트 카메라 시장은 90%가 증발해 버렸다. 사실 탁월한 휴대성 및 인공지능 보정, 네트워크 친화성 등 폰카가 지닌 우월성을 생각해 볼 때 아직도 똑딱이 디카를 사는 이가 있다는 것이 놀랍기는 하다.
하나의 산업은 추억이 되고 있다. 1995년 세계최초의 액정탑재 양산형 똑딱이 QV-10을 만든 카시오는 2018년 디카 산업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도 사진을 많이 찍고 있다. 그 수요를 다른 소지품이 채울 뿐이다. 라이카가 화웨이와 손을 잡는 시대, 가장 매력적인 사진 기능을 애플과 구글이 만드는 시대, 사진 촬영 체험의 근본적 변화를 뜻밖의 이들이 만드는 시대가 되었다.
소니는 애플과 구글에 이미지 센서를 납품하고 미러리스에 집중한 결단 덕에 다른 일본 가전업계와는 달리 서바이벌에 성공했다. 카메라는 이제 반도체 산업이자 소프트웨어 산업이 되어 가고 있다.
카메라는 원래 '결정적 순간'을 담기 위한 도구였다. 그 단어의 주인공이기도 한 전설적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사진은 영원을 밝혀준 바로 그 순간을 영원히 포획하는 단두대다”라고 말했는데, 그는 신체 일부가 된 수동 라이카로 그 순간을 포획했다. 셔터를 눌러 빛을 필름에 허락하는 그 순간을 사진작가는 기다리는 마음으로 준비한다.
하지만 이제 카메라는 쏟아지는 영원을 담기 위한 센서가 되었다. 카메라는 늘 열려 있다. 한때는 CCTV를 사생활침해 및 1984적 감시사회의 첨병으로 백안시한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시민안전을 지켜주는 파수꾼으로 여기는 듯 누구도 곳곳에 달린 CCTV를 거북해 하지 않는다. 이미 차마다 달린 블랙박스에 저장되는 일상의 용량은 점점 늘어난다.
이처럼 촬상소자에는 늘 세상이 들어오고 있다. 셔터를 눌렀을 때만 진실의 순간이 포착되는 것은 아니다. 이 트렌드는 DSLR에서 미러리스로 대세가 넘어가게 했다. 미러리스 카메라는 사람의(그리고 이제는 동물의) 눈동자를 검출해 쫓아가며 오토포커싱을 한다. 처음에는 광학식 뷰파인더가 아닌 전자 파인더가 장난감 같아 보였지만, 이제는 오히려 전자 파인더로 실제 색감이나 핀트 등을 확인하는 편이 정확해 보인다. WYSIWYG적이다. 사진으로 나중에 내게 남는 것은 내 눈으로 본 것이 아닌 반도체가 본 것이니, 반도체를 통해 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반도체는 이미 이처럼 세상을 우리 대신 보고 있다.
미러리스는 미러가 움직일 필요가 없고, 요즈음 모델은 아예 셔터 커튼마저 사라져 셔터음도 없다. 지금까지는 셔터음 때문에 찍을 수 없었던 공연이나 정숙 스포츠(사격이나 골프 등)도 취재할 수 있게 되니 신규 구매의 명분도 된다.
기계에서 움직이는 부분이 사라지니 연속촬영 면에서도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그 장점은 유튜브 등 새롭게 수요가 늘고 있는 비디오 촬영 기능으로도 이어진다.
그런데 이 정도는 맹렬한 속도로 진화 중인 폰카로도 충분하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햇살이 강한 야외에서는 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싶고, 사진 찍는 자세를 취해 보고 싶기도 하다. 설정에 맞게 렌즈 교환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요즈음 폰은 그럴까봐 여러 개의 렌즈를 전부 준비해 뒷면에 박아 넣기도 하는데, 언젠가 곤충의 눈처럼 진화된 폰을 만지게 될까 두렵기도 하다.
폰카 대신, 묵직한 렌즈로 방금 교환한 디카를 들면 자세도 마음가짐도 달라진다. 정말 소중한 장면을, 때로는 인생의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디카를 손에 쥐면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창피함을 무릅써도 될 것만 같다. 우리는 그렇게 폰카가 아닌 디카와 함께 순간을 기록하는 일에 조금 더 진지해진다.
하지만 지갑을 열기 전에 생각해 볼 일이 있다.
인생은 뷰파인더 속에 존재하지는 않는다. 이천만 화소의 촬상소자에 신경 쓰느라 정작 내 시신경에는 추억이 별로 남지 않곤 한다.
“평생 결정적인 순간을 찍으려 발버둥 쳤지만 삶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역시 앙리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