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켓몬고 앞의 한국형
[김국현의 만평줌] 제49화
지난주 만평 <포켓몬고 대신 야쿠르트 아줌마>를 그릴 때만 해도, 그저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 토픽을 소개한다는 정도였다. 닌텐도 주가도 겨우 10% 올랐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지난 한 주 포켓몬고 이슈로 대폭발. 유일하게 포켓몬이 (지도는 빼고) 된다는 속초는 성지가 되어 버렸다. 오히려 외신에서 한국의 행태를 의아하게 생각하며 역으로 해외 토픽으로 소개할 상황이 펼쳐졌다. 출시도 안 되고 출시까지 우여곡절도 적잖을 것 같은 나라에서 벌써 난리가 났다니 신기한 일일 것이다.
국내 뉴스 지면상에서도 거의 알파고급 광풍으로 세력이 커져 버렸다. 본의 아니게 온 언론이 나서 제품 홍보를 해버린 셈이 되어 버렸는데, 꼭 일을 크게 만드는 반복적 패턴이 있다.
1. 왜 한국에선 나오지 않았습니까?!
2. 충분히 나올 수 있었습니다!!
3. 빨리 한국형을 준비합시다!!
사실 이 3단계의 한국형 성공 방정식은 한국형 삼륜차를 만들던 시절에는 꽤 요긴했었기에 좀처럼 우리의 행동 양식에서 털어내기가 쉽지 않다. 소비자로서 제품을 그냥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하고,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고, 국가 산업을 나서서 걱정한다.
그런데 21세기에 깊숙이 들어온 지금 사람들은 이 패턴에 슬슬 피곤해져 버렸다. 이번 포켓몬고는 2번에서 3번으로 채 가지도 못했는데 벌써 대중의 피로가 목격되기 시작한다.
어느새 ‘한국형’이란 수식어는 야유의 대상이 되었다. 그동안 열심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왔던 이들에게 행여 한국형을 앞에 붙인 기사라도 나가는 날에는 비아냥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다들 부러워하는 알파고도 포켓몬고도 둘 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자신만의 낭만을 찾아 꾸준히 매진해 왔던 개인의 ‘덕심’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리고 그런 인생을 건 ‘덕질’을, 창업을 통해 할 기회가 많은 동네에서 생겨났다. 위의 한국형 1-2-3 성공 방정식은 잘 기능하지 않음을 이제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속초의 여러 풍경은 있는 그대로 즐기고 싶은 이들과 있는 그대로 즐기도록 도와주는 이들의 소중함을 알려준 듯하다. 그렇게 즐기다 보면 그중 한 명은 자신만의 덕심을 키워 미래를 위한 덕질을 시작할 수도 있다. 기적은 그렇게 시작되곤 하는 것이다.